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
이원은 3년 만에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다. “그 동안 슬픈 마음으로 결핍된 것을 향했다면, 이제는 어떤 상황과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려고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 화장실 문틈으로 변기가 보였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 불편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변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어서” 다시 문을 열곤 했다. 자기의 몸을 부여잡고 치열한 명상을 하는 모습이 꼭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같았다.
그래서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맨몸을 들여다봤다. “발은 몸의 것인데 발자국은 왜 길에 찍히는 것인가”를 “비명은 몸의 것인데 왜 몸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다가 두 발이 “반가사유상의 명상으로 끓기도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원씨는 “이 시를 쓸 무렵에 경계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세계에 경계를 그어놓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무생물과 생물,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 처음에는 경계로 인해 어긋나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경계에 스미는 걸 보게 됐다”고 했다. 경계로 인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고, 만나고, 닿는 것에 대한 사유가 시에 그대로 녹아든 이유다.
두 세계가 경계를 두고 맞닿아있는 건 불편한 일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경계도 세계도 지워보려고 했지만 다 사라져도 최소한의 것은 남는 것 같았다. 그는 “최소한의 그것은 고독, 명상의 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을 이리저리 굴리다 ‘일요일의 고독’ 연작이 나왔다. 이씨는 “우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것들 속의 고독을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이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의 고독이 아닌 일요일의 고독에 천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평일 내내 시끄럽다가도 일요일만 되면 낯설도록 폐허처럼 보인 여의도의 고독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고독을 두고 슬픈 감정을 덧칠하지 않는다. 오히려 “뼈의 안쪽에서 뼈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고독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일요일의 고독 2’)는 건조한 고백을 툭 던져놓는다. 최소한의 것이 어쩌면 우리를 지탱하게 하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힘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계숙 심사위원은 “시인이 겪는 고통이 바닥까지 가서 너무나 투명한 고통,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가서 나오고 있는 고독을 그려낸다”며 “정말 맨살 탁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이라고 평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세계문학으로 등단.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
어느 날 화장실 문틈으로 변기가 보였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 불편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변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어서” 다시 문을 열곤 했다. 자기의 몸을 부여잡고 치열한 명상을 하는 모습이 꼭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같았다.
그래서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무릎에 앉아 자신의 맨몸을 들여다봤다. “발은 몸의 것인데 발자국은 왜 길에 찍히는 것인가”를 “비명은 몸의 것인데 왜 몸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다가 두 발이 “반가사유상의 명상으로 끓기도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원씨는 “이 시를 쓸 무렵에 경계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세계에 경계를 그어놓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무생물과 생물,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 처음에는 경계로 인해 어긋나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경계에 스미는 걸 보게 됐다”고 했다. 경계로 인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고, 만나고, 닿는 것에 대한 사유가 시에 그대로 녹아든 이유다.
두 세계가 경계를 두고 맞닿아있는 건 불편한 일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경계도 세계도 지워보려고 했지만 다 사라져도 최소한의 것은 남는 것 같았다. 그는 “최소한의 그것은 고독, 명상의 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을 이리저리 굴리다 ‘일요일의 고독’ 연작이 나왔다. 이씨는 “우리는 언제나 시끄러운 것들 속의 고독을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고독은 고요 속의 고독”이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의 고독이 아닌 일요일의 고독에 천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평일 내내 시끄럽다가도 일요일만 되면 낯설도록 폐허처럼 보인 여의도의 고독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고독을 두고 슬픈 감정을 덧칠하지 않는다. 오히려 “뼈의 안쪽에서 뼈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고독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일요일의 고독 2’)는 건조한 고백을 툭 던져놓는다. 최소한의 것이 어쩌면 우리를 지탱하게 하고, 끝까지 견디게 하는 힘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계숙 심사위원은 “시인이 겪는 고통이 바닥까지 가서 너무나 투명한 고통,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가서 나오고 있는 고독을 그려낸다”며 “정말 맨살 탁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이라고 평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세계문학으로 등단.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
일요일의 고독-4
꽃봉오리가 맺힌 곳이 고요하다
하늘 밖은 둥글고 흙 속은 웅성댄다
수백 개의 창들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내부는 창만 바꾸고 있다
차 한 대가 그늘로 들어온다
그늘은 시간을 직선으로 자른다
밀려드는 햇빛에 허공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딸각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가 멈추어선다
무용수의 세워진 발 끝
길 너머에 붉은 해가 투명하게 잠기는 바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