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⑥- 이수명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외 13편

시치 2011. 9. 20. 01:18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⑥- 이수명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외 13편

 

난해함, 그 힘든 정신노동 끝의 달콤함

이수명 시인에게 시란 “미지를 탐험하고 즐기는 작업”이다. 그는 “독자와 작품 사이에 내밀한 소통이 많이 이뤄질수록 치유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수명(45) 시인의 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령 ‘어느 날’은 “날이 차갑다/날이 또렷하다”고 했다가 바로 “날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로 점프한다. ‘체조하는 사람’은 어떤가. “체조는 심심하다/체조가 나에게 휘어져 들어올 때 나는 체조를 이긴다”니. 여러 번 입 안에서, 머리 속에서 곱씹어야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쉽지 않은 시다. 그런데 난해하다고 그냥 치워버리진 마시라. 노동의 대가는 분명 있다.

 “어렵지만 이지적인 시”라는 심사평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예심 심사위원 함돈균 시인은 “이지적이면서도 육체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뜬구름 잡는 난해함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어와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술래’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술래잡기의 기쁨이 준비돼 있는 시라고 할까.

 이 시인에게 예술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예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학문은 주장하고 선언해서 지식으로 인정받지만, 예술은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죠. 모르는 길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이상이나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은 당대에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여졌던 시인이에요. 하지만 후대에 와선 즐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시대와 감각의 변화가 포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힌 거죠. 영원히 해독할 수 없는 시라는 건 없어요.”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도 그런 ‘비밀’을 건드린 시다. 그는 “굉장히 빨리 써 내려갔던 시다. 그래도 내 시 중에 쉬운 편이라고 해서 골랐다”며 웃었다.

 그는 삶에서 가끔 마주치는 섬광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잡아내길 즐긴다. 포착한 이미지와 순간의 상념을 옮긴 시어는 독창적이다. “건물을 올려다본다/(…) 공란이 많아서 울고 싶었다”(‘이 건물에 대하여’), “내가 베어 물었을 때 너는 썩으려 한다/단 한 차례의 생애에서 우리가 의인화되는 순간이다”(‘의인화’), “내가 너를 흘러나오는 피처럼 곤란하게 해줄 것이다”(‘대위법’) 등의 표현에서 ‘육체성’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숨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글쓰기를 했다”던 이 시인은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서울대 국문과 졸업 후 몇 년 동안 문학과 멀어졌다가 이상의 ‘절벽’과 재회한 걸 계기로 17년간 꾸준히 낯선 언어와 은밀히 소통해왔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이수명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

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

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이수명=1966년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근간)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붉은 담장의 커브』등.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