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⑤- 이민하 ‘거리의 식사’ 외 14편

시치 2011. 9. 20. 01:15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⑤- 이민하 ‘거리의 식사’ 외 14편

고양이에게서 봤다, 새로운 소통의 길을

대표적인 난해파 시인 중 하나인 이민하씨.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돼 나오는 여러 단어들을 구축해 나가다 보면 처음 의도와 완전히 다른 시가 나오는데, 그런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이민하(44)씨는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외모나 행동거지가 어쩐지 고양이를 닮은 것 같다.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하고만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것처럼 차분하고 낮게 말한다. 어렵기로 소문나 진작에 ‘미래파’로 분류된 특유의 시편도 어쩌면 고양이처럼 숨기고 위장하는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이씨는 2년 전 봄 우연찮게 고양이와 친해지게 됐다. 골목에 사는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들인 게 계기다. ‘설탕’이라고 이름 지어주고 정을 붙였다. 한 번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나니 다른 길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인 신사동 주택가에 사는 이씨는 자신의 고양이는 물론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함께 돌본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동네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다. 고양이 사랑에 관한 한 원조 격인 선배 시인 황인숙씨가 울고 갈 정도다.

 이런 고양이 사랑은 미당문학상 후보작들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모조 숲-길’은 고양이에 관한 시가 아닌데도 ‘손톱들이 돋았지만’ ‘목덜미’ ‘폭풍의 꼬리’ 등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여러 군데다. ‘검은고양이소셜클럽’은 본격적으로 고양이의 생태를 그린 작품. 거칠고 변화무쌍한 고양이의 모습이 실감난다.

 이씨는 “고양이에게서 새로운 소통 혹은 공존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과거 어둡게만 생각했던 인간 세상에도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생각해도 시가 좀 밝아진 것 같다”고 했다. 시의 작법까지는 아니겠지만 고양이로 인해 시의 내용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거리의 식사’는 이씨의 후보작 중 가장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어렵지 않게 ‘죽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연, ‘하나의 우산을 접고/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네 번째 연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은 이씨 특유의 말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씨는 “죽을 때 혼자가 아니라 누구든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좀 위안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 한 순간에 써 내린 시”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후 이씨와의 저녁자리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 많이 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끊임 없이 떠들어댔다. 화제? 물론 고양이 얘기였다. 고양이 습성의 놀라운 점, 고양이와 친해진 사연, 고양이와 쥐에 얽힌 얘기….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민하=1967년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