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

무비스님의 直指<113〉■ 석공혜장 선사 ② - 소를 잘 기르다 ■ 약산유엄

시치 2011. 4. 16. 15:20

무비스님의 直指<113〉■ 석공혜장 선사 ② - 소를 잘 기르다 ■ 약산유엄 선사 -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直指 연재(불교신문)
文殊法供養會 | 조회 72 |추천 0 |2010.10.31. 12:19 http://cafe.daum.net/yumhwasil/8ROv/116 

〈113〉석공혜장 선사 ② - 소를 잘 기르다

소는 자기 본성대로 살뿐이다

 

 

後在頭會下 一日頭問曰 汝在者裏 作甚 答云 我在者裏 牧牛 頭曰 汝作生牧 曰一落草去 驀鼻曳將回 頭曰善牧善牧

그 뒤에 암두 선사의 회하에 살았는데 하루는 암두 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저는 여기에서 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르는가?”  “한 번 풀 속에 떨어지면 코뚜레를 잡고 끌고 돌아옵니다.”  “소를 참 잘 기르는구나.”

 

낙초위구 심우도 십우도

‘여법한 수행 과정’ 비유

 

해설 :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소를 기르는데 비유하여 설명하는 예가 많다. 석공혜장(石鞏慧藏) 선사가 한때는 암두전활(頭全豁) 선사의 회하에서 살았는데 암두 선사가 예의 마음 다스리는 일을 물었고 석공 선사는 흔히 표현하는 대로 소를 기르는 일로써 대답한 것이다.

즉 “소가 한 번 풀 속에 떨어지면(落草) 코뚜레를 잡고 끌고 돌아옵니다”라고 하여 소를 잘 기른다는 인증을 받았다. 풀 속에 떨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낙초위구(落草爲寇)라는 말이 있는데, 즉 양민(良民)이 산으로 들어가 도적 패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잘못된 길을 가거나 가서는 안 될 길에 들어선 것을 말한다. 수행자로서 만약 법답지 못하거나 수행자답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생각이 움직이면 곧 바로 마음자세를 바로잡아 여법한 길을 가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는 뜻이다.

심우도(尋牛圖)에는 처음으로 잃어버린 소를 찾아서 풀을 뜯어 먹이는데 소는 소대로 마음대로 날뛰고 사람은 그 소를 말을 잘 듣는 고분고분한 소로 애를 써서 길들여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심우도나 십우도(十牛圖)가 모두 마음을 찾아 여법한 인격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소가 풀을 뜯든 곡식을 먹든 소는 자기의 본성대로 살뿐이다.

 

■ 약산유엄 선사 -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藥山 一日坐次 石頭見之 問曰 汝在者裏 作甚 師曰一切不爲 頭曰伊則閑坐也 師曰 若閑坐則爲也 頭曰 汝道不爲 且不爲甚 師曰 千聖亦不識 頭以偈讚曰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行 自古聖賢猶不識 造次凡流豈易明

약산 선사가 어느 날 좌선을 하고 있는데 석두 선사가 보고는 물었다. “그대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가하게 앉아있는 것이로구나.” “만약 한가하게 앉아 있다면 그것은 곧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니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천 성인들도 모르는 일입니다.”

석두 선사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그동안 함께 살아도 이름도 알지 못하였는데 마음대로 가지고서 이렇게 작용하는구나. 자고로 성현들도 오히려 알지 못하였는데 경솔하게도 범부의 무리들이 어찌 쉬이 밝히겠는가?”

 

해설 :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선사는 여의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의주를 감상하면서 조용히 앉아 있는데 귀찮게도 석두 선사가 “무엇을 하는가?”하고 물었다. 여의주 놀이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아무리 따져 물어야 일천 성인들도 모르는 경지인 것을. 그로 인하여 아주 절창의 게송 하나가 탄생하였다.

“오랜 세월 이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으나 그 이름을 모르네.”

그야말로 무어라 이름 할 수 없고 모양 그릴 수 없다는 말 그대로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유자재하게 보고 듣고 울고 웃으며 작용하여 왔다. 이 도리는 옛 성인들도 모른다.”

“실로 옛 부처님이 태어나기 전에 응연히 한 모양이 원만하였다. 석가도 오히려 모르는데 가섭 존자가 어찌 전해 받겠는가(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라는 말 그대로다.

“그런데 어찌 무지몽매한 범부가 쉽게 알 수 있으랴?”

성인도 범부도 오직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