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벽희운 선사⑩ - 삼계는 없다
진리의 삶을 실천하려면
상대적 편견서 벗어나야
又云 善惡都莫思量 當處便出三界 如來出世 爲破三有 若無一切心 三界亦非有
황벽 선사가 또 말씀하였다. “선과 악을 모두 생각하지 말라. 그 자리가 곧 삼계를 벗어난 곳이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신 것은 삼계를 깨트리기 위함이다. 만약 일체의 마음이 없다면 삼계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해설 : 육조 혜능 선사가 오조 홍인 선사에게 법을 인가 받고 그 신표로써 발우와 가사를 받아서 대중들 모르게 한밤중에 그 회상을 떠났다. 아침이 되자 오조 스님 회상에서는 법의 상징인 발우와 가사가 없어진 것을 알고 소동이 일어났다. 대중 가운데 보이지 않는 사람은 오직 방아를 찧던 노행자 뿐이었다. 평소에도 심상치 않게 여기던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오조 선사에게 법을 인가 받고 가사와 발우까지 가지고 도망간 것을 알았다. 모든 대중들이 뒤쫓아 가서 빼앗아 오기로 하고 찾아 나섰는데 마침 도명(道明)이라는 스님이 혜능스님의 뒤를 쫓아왔다. 혜능스님은 가사와 발우를 바위위에 올려놓고 나서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법은 가사와 발우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노행자의 위엄과 덕화가 도명스님을 압도하였다. 도명스님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도저히 가사와 발우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득 “저는 가사와 발우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깨달음의 법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혜능스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설한 법문의 내용이 곧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하라. 즉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라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일 생각하는 것이 선과 악이며, 나와 너며, 좋고 나쁨이며, 옳고 그름이다. 항상 상대적인 편견과 치우친 생각뿐이다. 상대적인 편견과 치우친 생각으로는 일체 사물과 사건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며 훌륭한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참되고 바른 이치, 즉 진리의 삶을 실천할 수 없다. 진리의 삶을 실천할 수 없으면 욕망의 경계와 물질의 경계와 그 이외의 일체의 경계들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항상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헤매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황벽 선사도 혜능 선사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진리를 아는 분들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선과 악, 나와 너라는 상대적인 편견을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 황벽희운 선사⑪ - 무심하면 경계가 없다
又云 凡夫皆逐境生心 心遂厭 若欲無境 當忘其心 心忘卽境空 境空卽心滅 若不忘心 但除其境 境不可除 只益紛擾 故萬法唯心 心亦不可得 復何求哉
황벽 선사가 또 말씀하였다. “범부들이 모두 경계를 쫓아 마음을 내서 마음이 드디어 기뻐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만약 경계를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잊어라. 마음을 잊으면 곧 경계가 텅 빈다. 경계가 텅 비면 곧 마음이 소멸한다. 만약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만 그 경계만 제거하면 경계를 제거할 수 없어서 다만 더욱 어지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오직 마음이요 마음도 또한 얻을 수 없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해설 :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경계가 마음에 들면 기뻐하고 경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슬퍼도 하고 화도 낸다. 오로지 경계의 좋고 나쁨을 따라서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그러므로 죄는 경계에 있고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고 나쁜 경계를 없애려면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없애야한다. 만약 마음만 없애면 경계는 저절로 없어진다. 그래서 경계가 없어지면 마음도 또한 없어진다. 그런데도 마음을 없애지 아니하고 다만 그 경계만 없앤다면 경계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어지럽고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온갖 존재는 오직 마음이며 그 마음이란 것도 실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런데 더 이상 무엇을 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