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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비스님의 直指 〈36〉제22조 마나라 존자(摩拏羅尊者)-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굴러다녀

시치 2009. 12. 10. 16:09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굴러다녀

〈36〉제22조 마나라 존자(摩拏羅尊者)



第二十二祖 摩拏羅尊者가 偈曰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제22조 마나라 존자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은 온갖 경계를 다 따라 굴러다니나

굴러다니는 그곳은 실로 깊고 그윽하여라.

흘러가는 그곳을 따라서 본성을 알면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네.

 
  
흘러가는 곳을 따라 본성 알면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네

 

해설 : 마라나 존자는 제21조 바수반두 존자의 제자다. <전등록>에 의하면 그는 나제국(那提國)의 상자제왕(常自在王)의 아들이었다. 30세가 되었을 때 바수반두 존자를 만나 출가하여 법을 전해 받고 서인도로 가서 교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월씨국에 인연이 있어서 오게 되었으며 제자가 될 학륵나(鶴勒那) 비구를 만났다. 학늑나 비구에게는 평소에 500마리의 학이 늘 따라다니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 이에 학륵나 비구가 마라나 존자에게 물었다.

“저는 무슨 인연이 있어서 학의 무리들을 만났습니까?”

“그대는 4겁 중에 비구가 되어서 용궁에 공양을 받으려 가려하는데 그대의 제자들이 모두 따라가려 하였다. 그 때에 그대가 관찰하니 500명의 제자에게는 한 사람도 훌륭한 공양을 받을만한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이 항의하기를, ‘스승님께서 항상 설법하시기를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법에도 평등하다고 하시더니 이제 그렇지가 않는데 무슨 성인이신가?’하였다.

그래서 그대는 그 제자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그 후 그대는 생을 거듭하면서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교화를 할 때에 그 500제자들은 복덕이 부족하므로 새의 종류가 되었느니라. 지금도 그대의 은혜에 감화되어 학의 무리가 되어 따라다니느니라.”

“어떤 방편을 써야 저들을 해탈케 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 최상의 법보가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었다가 미래의 사람들을 교화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은 온갖 경계를 다 따라 굴러다니나 굴러다니는 그곳은 실로 깊고 그윽하여라. 흘러가는 그곳을 따라서 본성을 알면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네.”라고 하였다. 이 게송을 학들은 모두 울면서 떠나갔다.

이 게송은 뜻이 매우 깊고 훌륭하여 역대 조사스님들이 즐겨 이야기 한다. 우리들의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이 경계를 만나면 그 경계를 따라 흘러 다닌다. 하늘을 보면 하늘을 따라가고 산을 보면 산을 따라간다. 물을 보면 물을 따라 흐르고 꽃을 보면 꽃을 따라 흐른다. 이것이 사람의 삶이다. 어떤 대상과 경계를 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하는 일에 마음이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목석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 따라 흐르는 곳곳에 모두 이 마음의 존재가 있으며, 마음의 존재란 무상심심미묘하며 불가사의하다. 실로 깊고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현묘(玄妙)하고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 경계를 따라 흐르는 그곳에서 그 현묘한 본성을 알면 비시분별도 없으며, 우비고뇌도 없으며, 나아가서 생로병사마저 사라져 버린다. 이것을 일러 해탈이라 하며, 대자유라 한다.

이 게송을 들은 500마리의 학들은 모두 학의 몸을 해탈했을 뿐 아니라 생로병사마저 해탈하여 진여법계에서 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학륵나 존자와 그의 500명의 제자들 이야기에서 기억해야할 점이 있다. 출가수행자는 생업이 없다. 오로지 신도들의 시주에 의해서 이 생명을 유지해 간다. 그런데 신도들의 시주를 얻어먹고도 충분히 녹일 수 있으려면 훌륭한 덕행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수행을 잘 하던지 봉사나 전법 포교에 진력을 하여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500마리의 학처럼 축생이나 조류의 신세가 되어 갚아야 한다. 그래서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녹이기 어렵다(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라고 하였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조계종 / 전 교육원장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文殊法供養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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