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祖 夜多 見波修般頭尊者 常一食不臥 六時禮佛 淸淨無欲 爲衆所歸 祖將欲度之 先問徒衆曰 此行頭陀 能修梵行可得佛道乎彼衆曰我師精進如是 何故不可 祖曰汝師 與道遠矣 設若苦行 歷於塵劫 皆妄之本也 衆曰尊者 蘊何德行 而譏我師 祖曰我不求道亦不顚倒我不禮佛 亦不輕慢 我不長座 亦不懈怠 我不一食 亦不雜食 我不知足 亦不貪欲 心無所希 名之曰道 波修聞已 發無漏智 付法偈曰言下合無生 同於法界性 若能如是解 通達事理竟 祖說偈已 不起于座 奄然歸寂
제20조 사야다 존자는 바수반두 존자가 항상 하루에 한 번만 식사하고 눕지 아니하며, 여섯 번 예불하고 청정하게 살아, 아무런 욕심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의 귀의하는 바가 되는 것을 보시고, 장차 그를 제도하고자하여 먼저 그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의 스승이 하는 여러 가지 두타행(頭陀行)이 능히 훌륭한 수행이긴 하나 그것으로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이 말했다. “우리 스승의 정진이 그와 같은데 무슨 까닭으로 불도를 얻을 수 없겠습니까?”
사야다 존자가 말하기를,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멀다. 설사 고행을 수억 년을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허망의 근본이다.”
제자들이 말하기를, “존자는 무슨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들의 스승을 비방하는가?”
사야다 존자가 말하였다. “나는 도를 구하지는 아니하나 또한 잘못되지도 아니하며, 나는 예불을 하지는 않으나 또한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도 하지 않으나 또한 게으르지도 않는다. 나는 일중식(一中食)은 아니하지만 또한 잡식도 아니 한다. 나는 만족을 알지 못하지만 또한 탐욕하지도 않는다. 마음에 바라는 바가 없는 것을 일러서 도라 한다.”
바수반두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나서 무루의 지혜를 발하였다. 그래서 법을 부촉하면서 게송을 설하였다.
“말을 듣자 곧바로 무생의 이치에 계합하니 법계의 성품과 같도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사리를 통달하여 마치리라.”
사야다 존자가 게송을 설해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문득 적멸에 드시니라.
인연에 따라 물 흐르듯이
사는 것이 도인의 삶이다
해설 : 사야다 존자가 말한 여기의 이 가르침은 선어록에서 매우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도인의 삶이라거나, 또는 불교적 수행생활이라거나 하는 문제에 대한 참되고 바른 견해를 피력한 말씀이다. 바수반두 존자는 평소에 철저한 계율과 두타행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이 불도를 얻는 참되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행으로 인하여 인도사회에 소문과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사야다 존자의 안목으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바르게 가르치고자 그의 제자들에게 비난을 한 것이 곧바로 바수반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말을 전해들은 바수반두는 단박에 도의 눈이 떠지고 지혜가 밝아졌다. 마치 밥을 떠다 나른 숟가락은 앎이 없는데 그 밥을 받아먹은 사람은 배가 부르고 원기가 충만하여진 것과 같이 되었다.
이를테면 도를 구한다는 것은 전도되지 않으며 바르게 산다는 뜻이다. 예불이란 평소에 사람들을 존경하고 섬긴다는 뜻이다. 늘 앉아서 눕지 않는다는 것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뜻이다. 일중식이란 아무 때나 함부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인연을 따라서 물이 흐르듯이 순리대로 사는 삶이 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영가 증도가>에서 ‘공부가 다 끝나서 아무런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의 삶이란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또한 진실한 생각을 구하지도 않는 것이다(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라고 한 것과 같다. 참으로 바르고 옳은 삶을 명쾌하게 밝혔다고 하겠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불교신문 2510호/ 3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