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수행장

[스크랩] 2007년 2월12일 초발심자경문 제8강, 발심수행장1-夫諸佛諸佛이~

시치 2009. 4. 8. 00:41
 

-초발심자경문 제8강, 발심수행장1-


發心修行章(발심수행장) 

                   海東沙門 元曉 述(해동사문 원효 술)


夫諸佛諸佛(부제불제불)이 莊嚴寂滅宮(장엄적멸궁)은

於多劫海(어다겁해)에 捨欲苦行(사욕고행)이요


衆生衆生(중생중생)이 輪廻火宅門(윤회화택문)은

於無量世(어무량세)에 貪慾不捨(탐욕불사)니라


無防天堂(무방천당)에 少往至者(소왕지자)는

三毒煩惱(삼독번뇌)로 爲自家財(위자가재)요


無誘惡道(무유악도)에 多往入者(다왕입자)는

四蛇五欲(사사오욕)으로 爲妄心寶(위망심보)니라


人誰不欲歸山修道(인수불욕귀산수도)리오마는

而爲不進(이위불진)은 愛欲所纏(애욕소전)이니라


然而不歸山藪修心(연이불귀산수수심)이나

隨自身力(수자신력)하야 不捨善行(불사선행)이어다


忽至百年(홀지백년)이어늘 云何不學(운하불학)이며

一生(일생)이 幾何(기하)관대 不修放逸(불수방일)고

離心中愛(리심중애)를 是名沙門(시명사문)이요

不戀世俗(불연세속)을 是名出家(시명출가)니라


行者羅網(행자나망)은 狗被象皮(구피상피)요

道人戀懷(도인연회)는 蝟入鼠宮(위입서궁)이니라


雖有才智(수유재지)나 居邑家者(거읍가자)는

諸佛(제불)이 是人(시인)에 生悲憂心(생비우심)하시고


設無道行(설무도행)이라도 住山室者(주산실자)는

衆聖(중성)이 是人(시인)에 生歡喜心(생환희심)하나니라


반갑습니다,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마침 친불회 법우님들도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멀리 호주에서 방송을 늘 듣다가 오늘은 인연이 되어서 이 자리에 함께 동참하신 원일거사님도 끼어있습니다.

지난시간까지는 초발심자경문 중에서 계초심학인문을 배웠고, 오늘부터는 발심수행장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마침 처음 시작하는 날이라서 다행입니다.


발심수행장은 우리나라의 고전 중에서도 아주 명문으로 손꼽히는 글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저자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원효스님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효스님에 대해서는 우리 불자님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라 길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원효스님은 617년에 태어나셔서 686년에 열반하신 분입니다. 신라를 대표하는 아주 위대한 큰스님이라고 불교사에서는 말하지만, 사실은 한국불교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불교사, 또는 세계사에 뛰어난 사상가, 성자로 추앙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아주 훌륭하신 분이지요.

불교의 역사 중에서는 인도에 용수보살이 계시다면 중국에는 천태 지자스님이 계셨고 한국에선 원효스님을 꼽습니다.

불교 역사 전반을 걸쳐서 보면 물론 인도에는 부처님의 훌륭한 제자들이 많았고 또 많은 저술을 남기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중국도 물론입니다.

불교학을 통해서 불교가 세상에 기여를 했고 또 경전의 연구가 우선되지 아니하면 불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런 뜻에서 용수보살 같은 이는 불교사에 큰 공헌을 세운 분이고, 또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중국에는 아주 뛰어난 큰스님들이 계셨지만 그중에서도 천태지자스님을 제일 첫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그래서 천태스님의 사상을 이어받는 천태종이라는 종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천태학이라는 학문이 천태스님을 통해서 창립이 될 정도로 아주 뛰어난 스님이셨지요.

거기에 버금가는 한국불교의 위대한 성자로는 반드시 그 첫손가락에 원효스님을 꼽습니다.

으레 원효, 의상 이렇게 합니다만 아무래도 원효스님을 더 쳐주지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은 동시대 분입니다. 물론 중국에 유학을 갈 때도 같이 출발을 했습니다. 의상스님은 나이가 조금 적으셨지만 동시대 스님이신데 두 분을 비교해보면 재밌는 생애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효스님은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이라고 하는 지금의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신기한 상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요.

서동이라는 그러한 어릴 때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효스님은 열 살에 출가를 했습니다. 옛날 큰스님들은 늦게 출가를 해서 성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만 아주 어려서 출가를 해서 도를 이루신 그런 분들이 많지요. 불교에서는 동진출가를 알아줍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세속의 때가 묻기 전에 아주 맑은 영혼, 총명한 시기에 불교에 깊이 젖어들어 공부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효과가 크기 때문이겠지요.


원효스님도 열 살에 출가를 해서 천재성을 발휘했지요. 멀쩡한 스승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 당시 유명한 큰스님과 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34세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는데 의상스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서 요동까지 갔다가 그때 국경수비대[순라군]에 붙들려서 되돌아 왔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한 10년 쯤 국내서 공부하시다가 마흔 다섯 살 나이에 다시 의상스님과 당나라 유학의 길에 나섰습니다. 그때는 해로로 가기로 작정을 하고 백제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라고 하는 곳에 도달하는데 항구에 당도했을 때, 날이 너무나 어둡고 비바람도 치고 해서 어느 움막 같은데 들어가 잠을 자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


자다가 목이 말라 더듬더듬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만져보니 바가지가 있고 거기에 물이 마침 담겨있어서 그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는 잠이 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비바람은 치고 날은 어둡고 혹시 순라군巡邏軍에게 잡혀서 십년 전처럼 다시 되돌아가야 할 그런 처지는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두 스님이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저기 헤매다가 그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 몸이었겠습니까?

잠결에 하도 목이 말라 일어나서 손에 닿는 대로 그냥 더듬거려서 얻은 물 한 바가지를 아주 달게 마시고 잤는데 아침에 날이 밝은 뒤 자기가 마신 바가지물이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았더니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해골에는 아직도 물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시체도 있고 뼈도 있고 그래서 갑자기 놀라게 되지요.

지난밤에 마신 물이 벌써 소화되었을 법한 그런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구역질이 나고 크게 토했다는 것입니다.


토하다가 문득 깨닫기를, 어찌하여 어제 저녁에는 물이라고 생각해서 참 달게 마셨고, 오늘 아침에는 같은 물인데도 불구하고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구역질이 나고 토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이 한 마음의 조작이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도리임을 깨닫지요.

삼계가 오직 마음이고 만법이 오직 인식의 작용일 뿐이다, 그러니

마음 밖에 다른 법이 도저히 있을 수 없구나,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다면 무엇 하러 이 고생을 하면서 당나라까지 가서 법을 구한단 말인가?

그 어떤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심생즉心生則 종종법생 種種法生이라, 내 마음이 생기면 온갖 법, 범부의 법이든 성인의 법이든 일체 법이 다 내 마음에서 나고 내 마음에서 그것이 잦아들면 어떤 법도 다 소멸한다,

심생즉心生則 종종법생 種種法生하고 심멸즉心滅則 종종법멸 種種法滅이라, 어떤 이치, 어떤 좋은 것도 다 사라지게 되어있다고 하는 그런 이치를 그야말로 통절하게 깨닫고는 그 길로 당나라 유학 가는 길을 포기했지요.

유학 가는 길에서 그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상스님은 그런 경험을 못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당나라 가는 배를 얻어 타고는 유학을 가게 됩니다.

한 사람은 유학을 가게 되고 한 사람은 유학의 길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렇지요.

두 분이 같은 신라라고 하는 조건 속에서 불교를 그동안 다같이 섭렵을 하고 공부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원효스님은 거기에서 돌아오게 되고 의상스님은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지요.

의상스님은 중국에 건너가서 화엄학의 대가인 지엄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의상스님은 부석사에 자리를 잡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원효스님은 백제에서 신라로 돌아와 경주에 그대로 머물면서 당신의 깨달음에 의해서 가름침을 펴고 저술도 많이 하게 되지요.

저술면에서 보더라도 원효스님은 백여 경에 240권이나 된다는 그런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저술이 많습니다.

의상스님은 유학을 하시고 정통파로서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술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의상조사 법성게가 남아 있어서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원효스님은 그렇게 사시다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게 돼서 설총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유교의 시조로 추앙되며 그야말로 아주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그런 성자를 낳게 되지요.

그러나 원효스님은 파계한 승이 되어 가지고 머리를 길러 복성거사, 소성거사라며 스스로 거사라는 이름을 자청하면서 그렇게 거사의 몸으로 설법도 하고 저술도 남기고 그렇습니다.

원효스님의 저술은 많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기록에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은 10분 1도 남아있지 않지요. 그중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이라든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라든지 이런 것들은 참 아주 뛰어난 가르침이지요. 원효스님의 저술 중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또 화엄경에 대한 소초[華嚴經疏抄]를 썼던 그런 기록도 있고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의 내용이라든지 뭐 등등 팔만대장경을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래서 당신의 의견을 혹은 길게 혹은 짧게 해설을 하기도 하는 그런 업적을 남겼던 분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이 발심수행장도 그 분의 많은 저술 중의 하나인데 참으로 짧지요. 짧으면서도 아주 천하의 명문名文으로 한국의 고전 명문 중에 손꼽히는 그런 글입니다.


원효스님은 사실은 요석공주를 우정 찾아서 말하자면 결혼을 하고 설총을 낳았는데 의상스님 같은 경우는 당나라에 건너갔을 때 어떤 거사님 집의 선묘라는 따님이 정말 의상스님이 아니면 죽겠다고 할 정도로 아주 매달렸었지요.

그래서 의상스님이 한국으로 건너 올 때 끝까지 의상스님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어 스님이 타고 오는 배를 보호했고 그 용이 부석사까지 왔었다고 해서 부석사에도 모셔놓았지만 곳곳에 소위 선묘라고 하는 의상스님을 보호했던 처녀를 성인처럼 받들어 모시는 그런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도 두 분이 또 아주 대조적이에요.


원효스님은 또 당시에도 아주 빛난 분이고 지금도 역사에 빛나고 있지만 사실은 제자가 별로 없어요,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제자가 별로 없습니다. 원효스님의 저술은 전해졌지만 원효스님의 학덕이랄까 이런 것을 받들어서 제자로서 계속 이어온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의상스님은 당시에 10대 제자라고 하는 유명한 제자들이 있어서 전국에다가 화엄십찰이라고 하는 큰 사찰을 일으켜서 화엄사상을 폈던 그런 점들도 두 분이 아주 대조적이지요.

서로가 대조적인 면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경전을 통해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런 역사적인 인물과 그 인물들의 행적을 더듬어 봄으로서 불교를 이해하는 길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야말로 세계 사상사에 길이 빛나는 우리의 원효스님, 그 원효스님의 짧은 글이지만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을 이제 살펴볼 차례입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한 사람과, 또 출가하지 않고 사회에 있으면서도 수행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어 불교적인 관점에서 인생을 정말 의미 있고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내어 가지고 수행하는데 대한 글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해동사문海東沙門 원효술元曉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해동은 당시로서는 우리나라를 해동이라고 했지요.

사문은 스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원효元曉-으뜸가는 새벽이라, 첫새벽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게 한국 불교, 특히 신라불교의 첫 새벽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아주 대단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夫諸佛諸佛(부제불제불)이 莊嚴寂滅宮(장엄적멸궁)은

於多劫海(어다겁해)에 捨欲苦行(사욕고행)이요


아주 글이 아름답게 써졌습니다.

대저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이, 한 번 써도 되지만 두 번을 반복했지요. 이것을 익숙하게 읽다보면 저절로 곡조가 붙게 되고 왜 두 번씩  諸佛諸佛이라고 쓰게 되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말로는 어색하지만 소리 내서 글로 읽어보면 아주 근사한 글이에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하는 것은, 부처님, 깨달은 분이라고 하는 것은 ‘적멸의 세계를 장엄한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적멸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근본자리이지요. 근본자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텅 비었습니다.

우리 중생은 망상을 일으키고 탐진치 삼독과 온갖 시기, 질투, 음해를 일로 삼지만, 깨달음을 이루신 성인들은 지혜와 자비, 그리고 원력, 이런 것들로써 자기의 삶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중생이나 부처나 텅 비어, 없는 자리이지요.

백지와 같습니다. 백지와 같은 거기에 중생은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의 번뇌를 그려가고, 깨달으신 분들은 그 위에다가 온갖 지혜와 자비와 원력과 중생교화, 이런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해가는 거지요.

이것이 부처와 중생의 표면상 다른 점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표현은 다른 거지요.

적멸궁을 장엄한다는 것은 그런 말입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뜻은 아주 깊어요.

제불제불이 텅 빈 마음에서 정말 지혜와 자비와 원력과 교화와 선행, 이런 것으로써 각자 인생을 장엄해 가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지요.


그런 이후는

다겁해多劫海-오랜 세월 바다와 같이 멀고 먼 세월 속에서

사욕고행捨欲苦行-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하는 것이다,

고행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좋아서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런 것들이 다 고행이니까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하는 것이고,


衆生衆生(중생중생)이 輪廻火宅門(윤회화택문)은

於無量世(어무량세)에 貪慾不捨(탐욕불사)니라

이것은 법화경에 나오는 말이지요. 법화경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타는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큰 저택이 있는데 그 저택에 불이 났고, 그곳에서는 철없는 아이들이 언제 타 죽을 지도 모르고 불장난을 하고 뛰어논다는 거지요. 거기에는 건물들이 불에 타서 금방 넘어지고 있고, 온갖 험한 짐승들이 날뛰고 있나하면 독한 벌레들이 들끓고 있는 그런 모습을 정말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어떤 어렵고 험하고 추하고 모진 그런 면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법화경의 그 대목은 화택비유라고 해서 유명한 비유입니다.


輪廻火宅門(윤회화택문)은 於無量世(어무량세)에 貪慾不捨(탐욕불사)니라- 그런 불난 집속에서 윤회하게 되는 것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자기 욕심 버리고 고행을 해서 부처가 됐고, 중생은 탐욕을 부리면서도 그 탐욕을 버리지 않고 살아서 중생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적멸궁이라고 앞에서 말했듯이 텅 빈 마음자리 그것은 변함없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지요.


無防天堂(무방천당)에 少往至者(소왕지자)는

三毒煩惱(삼독번뇌)로 爲自家財(위자가재)요


막지 않은 천당에, 천당을 누가 못 오게 막아놓지는 않았지요?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못 오게 막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

三毒煩惱(삼독번뇌)로 爲自家財(위자가재)요- 탐진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독한 번뇌로써 자기 집의 재물을 삼았기 때문이고,

그런 말입니다.

삼독 번뇌로써 재물을 삼았지, 무슨 선행을 한다든지, 자선을 한다든지 아니면 지혜, 자비, 원력이라든지 아니면 남을 교화하겠다고 하는 교화에 대한 꿈이라든지, 희망이라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 자기 집의 재산을 삼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당에 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지요.


無誘惡道(무유악도)에 多往入者(다왕입자)는

四蛇五欲(사사오욕)으로 爲妄心寶(위망심보)니라


유혹하지 않는 악한 길에 많이 들어가는 것은, 악도에는 오라고 유혹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도 거기에 많이 가는 것은

四蛇五欲(사사오욕)으로 爲妄心寶(위망심보)니라- 네 가지 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 몸을 형성하고 있는 네 가지 요소를 말하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 요소와 다섯 가지 욕망으로- 불교에서 오욕할 때는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도 가끔 거론하지만 그것보다는 안신眼耳鼻舌身, 前 五根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만을 하는 입장을 오욕, 다섯 가지 욕망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육신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안신,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전부 그저 자기 몸에 달콤하고 좋다고 여겨지는 것만을 자꾸 욕심을 낸다는 거지요.

그것으로써 망령되이 마음의 보배를 삼았기 때문에

그래서 누구도 유혹하지 않는 악도에 많이 들어가게 된다고 했어요.


人誰不欲歸山修道(인수불욕귀산수도)리오마는- 사람으로서 누군들 산에 돌아가서 도를 닦고저,수도하고저 않으리오만은,

다 그렇지요. 절에 오면 중 하고 싶고, 수도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나지요. 그런 마음이 다 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누군들 산에 돌아가서 수도하고 싶어 하지 않으랴 만은


而爲不進(이위불진)은 愛欲所纏(애욕소전)이니라

그러나 선뜻 그렇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애욕소전이니라,

처음엔 일생 내내 살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지겨워서 하루도 못 있어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쓱 돌아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지겹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세속에는 마음으로부터 달콤한 욕심들이 있거든요. 뭐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고, 자신의 재산이 있고, 명예가 있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친구가 있고, 친구하고 놀 일도 많고...

이런 것들이 전부 애욕입니다.

자기가 가졌던 소지품이니 아주 아름다운 옷이며 값비싼 귀금속 등등이 살던 곳에 잔뜩 남아있고 또 자기가 살던 습관 그것도 역시 욕심이거든요.

그런 욕심에 얽힌 바가 되었기 때문에 출가입산도 못하고 절에 와 보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싶지만은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然而不歸山藪修心(연이불귀산수수심)이나-산에 돌아가서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하더라도,

꼭 무슨 산에 들어가야만 도를 닦는 것도 아니고 수행하는 것도 아니지요.

隨自身力(수자신력)하야 不捨善行(불사선행)이어다-자신의 힘을 따라서 선행하는 것을 버리지 말라.

그러니까 이건  출가한 사람들만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지요.

그동안에 우리가 공부한 계초심학인문은 처음 막 출가해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생활규칙을 주로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발심수행장은 글 내용으로 봐서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꼭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자기의 힘을 따라서, 또 인연을 따라서 선행을 많이 쌓으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忽至百年(홀지백년)이어늘 云何不學(운하불학)이며-문득 그만 백년에 이른다는 거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배우지 않는가?

우리 사는 일생이 설사 백년이라 하더라도 그것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데 어찌하여 공부하지 않는가?


一生(일생)이 幾何(기하)관대 不修放逸(불수방일)고-일생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닦지 아니하고 방일하는가?

그렇습니다. 일생 그래봐야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이런 저런 헛시간 다 빼버리면 정작 공부할 시간은 얼마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신 초롱초롱하고 의식이 좀 살아있을 때 그래도 뭔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되지요.

정말 누구에게 가서라도 나는 떳떳한 삶을 살았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을 지어야 되지 않겠나하는 가르침입니다.


一生(일생)이 幾何(기하)관대 不修放逸(불수방일)고-일생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닦지 아니하고 방일하느냐?


離心中愛(리심중애)를 是名沙門(시명사문)이요- (사문, 사문, 출가사문이라 하는데) 사문이란 마음 가운데 애착을 떠난 것, 이것을 이름하여 사문이라 한다는 거지요. 사문이 되고도 마음에 애착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사문이라 할 수가 없고, 세속에 있든 어디에 있든 어떤 물질이나 명예나 그런 속된 것들에 애착이 있으면 사문이 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 애착을 떠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不戀世俗(불연세속)을 是名出家(시명출가)니라-속된 일을 연연해하지 않는 것, 이것을 이름해서 출가라 한다.

설사 몸은 출가했다 하더라도 세속적인 가치관에 흔들리고 세속적인 인생관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출가라고 해봐야 이름이 출가인거지요, 그야말로 시명출가이지요.


行者羅網(행자나망)은 狗被象皮(구피상피)요- 행자, 수행하는 사람이 그물에 걸리는 것은(여기서 그물이라는 것은 애욕의 그물, 속된 가치관의 그물입니다.) 비유하건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덮어 쓴 것과 같다고 했어요.

개가 아무리 코끼리 가죽을 덮어쓴들 속은 개인데 하루아침에 코끼리가 될 수 없다는 거지요.


道人戀懷(도인연회)는 蝟入鼠宮(위입서궁)이니라- 도 닦는 사람이 회를 그리워  하는 것은, 여기서 회라고 하는 것은 이성을 그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늘 품고 있다면  위입서궁이라, 고슴도치가 쥐집에 들어간 것과 같다,

비유가 아주 재미있어요,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오지를 못하죠. 들어갈 때는 들어가지만 빠져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지요. 자신의 몸이 전부 침으로 되어 있어 그 침에 걸려 도저히 못 빠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行者羅網(행자나망)-수행하는 사람이 애욕의 그물, 욕심의 그물에 걸려있는 것은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형편없고, 또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이성을 그리워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가다 중간에 걸려서 가도 오도 못하는, 나아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어쩌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빠져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아주 뛰어난 비유이지요.


원효스님의 글은 우리나라 스님들의 글 중에서도 아주 뛰어나지요. 물론 안목도 출중해야겠지만 안목과 글솜씨까지 아주 제대로 갖춘 최고의 스님으로 원효스님을 꼽지요. 

그 다음 고려 말에서 조선초에 걸쳐서 사셨던, 본래 이름이 己和이신 함허 득통스님이 또 아주 뛰어납니다.

그분의 글도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안에 설의說誼라고 하는 그런 글이 있는데, 금강경에 대한 다섯 분의 해석에 당신의 안목을 삽입시켜서 해설을 써 놓은 것이 있고 또 원각경설의와 영가집설의도 있습니다. 설의說誼라고 하는 이름을 빌어서 경전 해석을 많이 하셨지요.

그 함허 득통스님의 글이 원효스님과 막상막하라고 할 정도로 아주 뛰어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원효스님의 글은 아주 시원시원 할 줄 알았는데 너무 학자적인 입장에서 쓰신 글이라 정작 머리를 많이 써야 이해가 되는 그런 글인 반면, 함허스님은 선사의 기질로서 글을 썼기 때문에 쉽고 시원시원하게 되어 있는 점이 두 분 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대단히 특별한 그런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雖有才智(수유재지)나 居邑家者(거읍가자)는

諸佛(제불)이 是人(시인)에 生悲憂心(생비우심)하시고-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기는 있으나, 읍가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산다는 거지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깨달은 이들이 이 사람에 대해서 아주 슬퍼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낸다.

도시는 아무래도 번화한 곳이고 세속적인 문제들이 많은 곳이라 아무래도 거기에 끄달리고 휘말리기가 쉽지요.

그래서 특히 젊은 사람으로서 아직도 자기 수행이 전혀 안되어  있는, 여기서는 [발심수행장]이니까 마음을 내어 수행하려는 사람에게 일러주는 말이니까 더욱더 그렇겠지요.

그래서 산에 가서 살기만 해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훨씬 쉽지요. 처음엔 환경이 크게 좌우를 하니까요, 어쩔 수 없는 거지요.


그다음

設無道行(설무도행)이라도 住山室者(주산실자)는

衆聖(중성)이 是人(시인)에 生歡喜心(생환희심)하나니라- 설사 도행이 없다 하더라도 산에 거하는 사람은 여러 성인이 이 사람에 대해서는 환희심을 낸다.


아직 초보자가 도가 그렇게 있을 까닭이 없지요. 도에 대한 행이 설사 없다 하더라도 산에 가서 사는 사람은, 산에서는 보고 듣고 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산에 산다고 하는 것은 절에 산다는 것이고 오래된 사찰에는 으레 연세가 높고 학덕이 높은 스님이 계실테니까 보고 듣는 일상의 생활규범이라고 할까, 시간의 질서가 너무나도 잘 짜여 있어서 그대로 이 몸을 갖다 던져 넣기만 하면, 그 굴레 속에 던져 넣어 한 십년 잘 지나면 수행하는 몸가짐 마음가짐이 저절로 배게 되는 거지요. 환경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도 설사 도행이 없다 하더라도 산에 거하는 사람은 여러 성인이 이 사람에 대해서는 환희심을 낸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산중 큰절의 분위기와 또 시중에 사는 사람들의 보고 듣고 접하는 점들을 가만히 우리가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요.

제불과 중성, 모든 깨달은 이들이 도시에 사는 이 사람에게는 염려하는 마음을 내고, 도행이 없다 하더라도 산에 사는 사람에게는 온갖 성인들이 환희심을 낸다고 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수행이 되어 갈 테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환경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발심수행장이라고 하는 글을 통해 원효스님을 간단하게나마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스님이지요. 세계의 사상가 속에도 당당히 내놓을 만한 그런 분이니까요.

그리고 또 이분의 발심수행장이라고 하는 글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발심수행장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동참을 하셨습니다.

초연화님 尋牛行님 진공님 캔들댄스님 대원성님 돌뿌리(眞一)님 연기의도리와님 대복전님 백련화님 맑은날님 무량화님 청정월님 妙賢님 마니주님 대해월님 오봉님 묘하님 가람님 大德行님 미륵골님 해바라기님 청운화님 소리님 정안행님 있는그대로님 자혜성님 無影樹님 bohyun님 은아님 무아심님 우담화님 청비님 無相行님 尋牛婆님 항상(德出)님 은우님 선법행님 전산스님 正覺行님  환희지님 玄山님 법우성님 여연행님 법성화님 꽃물들다님 수경심님 발심화님 慈山스님 영축산나무꾼스님 선재행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서 법석을 빛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초발심자경문 제8강, 발심수행장 제1강 녹취:은우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은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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