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봉정암 가는 길/진각화님
인영印影
소년 시절에 본 것으로서 잊은지 이미 오랜 것이,
홀연히 노년老年의 꿈속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마치 물소의 뿔에 도장을 새겨 놓은 것 같아서 물소는 이미 죽었으나
인영印影은 오히려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배우는 자는 그 받아들이는 것을 신중히 해야 한다.
대체로 대경對境에 마음을 두지 않음을 거울에 물형이 비치는 것처럼 하여,
다만 나타나는 것을 보여 주는 데에 그친다면,
물物이 어찌 나를 얽어매어서 나의 가슴에 머물고 나의 꿈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少時所見 忘之已久 忽入於老年夢中 是何故 如影印角 犀已死而影猶存矣
是以學者愼其所受 夫對境無心 如境照物 但示現而已 則物何能累我而
留吾胸入吾夢哉
집착執着을 갖지 말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만사는 다 가상假相에 불과한 것이며 몽환夢幻일 뿐이다.
그렇건만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한다.
마음에 새기고 가슴에 간직한다.
그것은 마치 물소뿔에 도장을 찍어 놓으면,
물소는 죽어도 그 도장은 남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소년 시절에 본 것으로서 이미 오랫동안 잊었던 것이
노년의 꿈속에 홀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은,
그때 이미 소년의 마음에 도장이 찍힌 것으로,
자신은 이미 잊은 것 같았지만 실은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세상의 그 숱한 욕망과 경험과,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던 일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 간다면,
그 가슴은 낙서落書로 가득 채워진, 어지럽고 더럽혀진 헌 종이쪽 같을 것이다.
그 어디에 맑고 고요한 심경心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인식의 대상에 대하여,
맑은 거울에 물체가 비치듯 그야말로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심경을 가지라는 것이다.
맑은 거울이나 고요한 수면에는 무엇이나 거부됨이 없이 비친다.
오면 비치고 가면 사라진다.
이러한 명경지수의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의 어떤한 사물도 나를 얽매거나
꽉 잡고 늘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내 가슴에 머물러 있다가 꿈속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 그런 심경을 노래한 시詩 한 수를 옮긴다.
서호의 봄 물빛 쪽보다도 푸르구나.
흰갈매기 두세 마리 또렷이 보이더니
노 젓는 한 소리에 백로는 날아가고
석양의 산빛만이 빈 못에 가득하네.
西湖春水碧於藍 白鳥分明見兩三
撓櫓一聲飛盡 夕陽山色滿空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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