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관련

[스크랩] *** 長恨歌 / 白居易 ~~~

시치 2007. 5. 16. 23:00

 長  恨  歌

  
                   白居易
   
 漢皇重色思傾國 御宇多年求不得 

 (한황중색사경국 어우다년구부득)
한나라 황제는 여인의 미모를 중히 여겨 절세미인을 바라왔는데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구하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 養在深閨人未識

  (양가유녀초장성 양재심규인불식)
양씨 가문의 딸이 있어 이제 갓 장성하였는데
깊은 규방에서 자라 세인(世人)들은 알지 못했다.

 天生麗質難自棄 一朝選在君王側

 (전생여질난자기 일조선재군왕측)
타고난 미모는 버려질 리가 없어
어느 날 아침 뽑혀 황제의 옆에 오게 되었다.

 回眸一笑百媚生 六宮粉黛無顔色

 (회모일소백미생 육궁분대무안색)
눈동자를 돌려 한 번 웃으면 온갖 매력이 넘쳐흘러
궁녀들이 치장한 모습도 빛을 잃었다.

 春寒賜浴華淸池 溫泉水滑洗凝脂

 (춘한사욕화청지 온천수활세응지)
봄날이 차가와 화청지(華淸池)에서 목욕함을 허락받아
온천물이 매끈한 살결을 씻었다.

 侍兒扶起嬌無力 始是新承恩澤時

 (시아부기교무력 시시신승은택시)
시녀들이 부축하는 아름다운 몸매는 하늘거리니
이것이 황제의 은총을 받기 시작한 때였다.

 雲鬢花顔金步搖 芙蓉帳暖度春宵
 
 (운빈화안금보요 부용장난도춘소)
구름같은 머리칼, 꽃같은 얼굴에 금비녀 흔들리며
부용무늬 휘장 안이 따뜻한 중에 봄날이 지나갔다.

 春宵苦短日高起 從此君王不早朝

  (춘소고단일고기 총차군왕부조조)
봄밤은 너무 짧으니 해가 높이 떠서야 일어났고
이후에 황제는 아침 모임을 거르게 되었다.

 承歡侍宴無閑暇 春從春游夜專夜

 (승환시연무한가 춘종충유야전야)
잔치 때 황제 모시고 시중 들어 한가할 때가 없었고
봄이 되면 봄놀이, 밤에는 혼자서 황제를 모셨다.

 后宮佳麗三千人 三千寵愛在一身

 (후궁가려삼천인 삼천총애재일인)
후궁에는 아름다운 삼천의 여인이 있었으나
삼천궁녀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金屋粧成嬌侍夜 玉樓宴罷醉和春

 (금옥장성교시야 옥루연파취화춘)
황금궁전에서 단장하고 애교로 밤새 시중을 들고
아름다운 누각에서의 잔치가 끝나면 취한 모습이 봄꽃 같았다.

 姉妹弟兄皆列土 可憐光彩生門戶

 (자매제형개열토 가련광채생문호)
형제자매들도 모두 영토를 하사받았고
부럽게도 그들의 집 문도 빛이 났다.

 遂令天下父母心 不重生男重生女 

 (수령천하부모심 부중생남중생녀)
그리하여 천하의 부모된 이들의 마음도
아들 낳기를 중히 여기지 않고 딸 낳음을 중히 여겼다.

 驪宮高處入靑雲 仙樂風飄處處聞

  (여궁고처입청운 선악풍표처처문)
여궁(驪宮)은 높아 푸른 하늘의 구름에 닿을 듯하고
선계(仙界)에서나 있을 듯한 음악이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들린다.

 緩歌慢舞凝絲竹 盡日君王看不足

 (완가만무응사죽 진일군왕간부족)
느린 노래, 고요한 춤이 관현악과 어우러지니
하루종일 보아도 황제는 지루한 줄을 몰랐다.

 漁陽瞽鼓動地來 驚破霓裳羽衣曲

 (어양비고동지래 경파예상우의곡)
어양(漁陽)의 북소리가 지축을 흔들며 몰려오니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은 놀라움 속에 중단되었다.

 九重城闕煙塵生 千乘萬騎西南行

 (구중성궐연진생 천승만기서남행)
구중궁궐에도 연기와 먼지가 피어 올랐고
황제 일행은 서남쪽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翠華搖搖行復止 西出都門百餘里

 (취화요요행부지 서출도문백여리)
황제의 깃발은 흔들리며 가다 서다 하는데
궁성에서 서쪽으로 백여리 되는 곳에 이르렀다.

 六軍不發無奈何 宛轉蛾眉馬前死 

 (육군불발무내하 완전아미마전사)
친위대가 출발하지 않으니 황제도 어쩔 수 없어
아름다운 그녀는 애절하게 말 앞에서 죽었다.

 花鈿委地無人收 翠翹金雀玉搔頭

  (화전위지무인수 취교금작옥소두)
꽃비녀가 땅에 떨어졌으나 주워 가는 이도 없었고
취교(翠翹), 금작(金雀), 옥소두(玉搔頭)도 흩어졌다.

 君王掩面救不得 回看血淚相和流

 (군왕엄면구부득 회간혈루상화류)
황제는 얼굴을 가린 채 그녀를 구해 주지도 못하고
뒤돌아보며 피눈물만 흘렸다.

 黃埃散漫風蕭索 雲棧縈紆登劍閣

 (황애산만풍소삭 운잔영우등검각)
황토 먼지가 흩날리고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구름 속의 벼랑길을 구불구불 돌아 검각산을 올랐다.

 峨嵋山下少人行 旌旗無光日色薄

 (아미산하소인생 정기무광일색박)
아미산(峨嵋山) 아래에는 지나는 이도 별로 없고
깃발도 빛을 잃고 햇빛도 엷다.

 蜀江水碧蜀山靑 聖主朝朝暮暮情

 (촉강수벽촉산청 성주조조모모정)
촉나라 강물은 푸르고 촉나라 산도 푸른데
황제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녀를 그렸다.

 行宮見月傷心色 夜雨聞鈴腸斷聲
 
 (행궁견월상심색 야우문령장단성)
임시 궁전에서 달을 보니 달빛에 마음 아프고
비내리는 밤이면 방울소리에 애가 끊어졌다.

 天旋地轉回龍馭 到此躊躇不能去

  (천선지전회룡어 도차주저불능거)
정국이 급변하여 황제는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에 도달하자 주저하며 가지를 못했다.

 馬嵬坡下泥土中 不見玉顔空死處

 (마외파하니토중 불견옥안공사처)
마외파(馬嵬坡) 언덕 아래 진흙 중에는
아름다운 얼굴은 보이지 않고 헛되이 죽은 자리만 보였다.

 君臣相顧盡沾衣 東望都門信馬歸

 (군신상고진점의 동망도문신마귀)
황제와 신하는 서로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동쪽으로 성문을 보며 말에 길을 맡기고 돌아 왔다.

 歸來池苑皆依舊 太液芙蓉未央柳

 (귀래지원개의구 태액부용미앙류)
돌아오니 연못도 동산도 모두 변함이 없었다.
태액지(太液池)의 부용(芙蓉)도, 미앙궁(未央宮)의 버드나무도.

 芙蓉如面柳如眉 對此如何不淚垂

 (부용여면류여미 대차여하불루수)
부용은 그녀의 얼굴같고 버드나무는 눈썹같으니
이를 대하며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으리

 春風桃李花開日 秋雨梧桐葉落時 

 (춘풍도리화개일 추우오동엽락시)
봄바람에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는 날에도,
가을비에 오동나무잎이 떨어질 때에도.

 西宮南內多秋草 落葉滿階紅不掃

  (서궁남내다추초 낙엽만계홍불소)
서쪽 궁전과 남쪽 동산에 가을풀 무성하고
낙엽이 계단을 덮어 온통 붉어도 쓰는 이 없었다.

 梨園子弟白發新 椒房阿監靑娥老

 (이원자제백발신 초방아감청아노)
궁정 악사들도 백발이 자라났고
후궁의 궁녀들도 곱던 얼굴 늙었다.

 夕殿螢飛思초然 孤燈挑盡未成眠

 (석전형비사초연 고등조진미성면)
저녁 궁전의 반딧불이 날아들면 마음 쓸쓸하고
외로운 등불 심지 돋우다 불이 다해도 잠에 들지 못했다

 遲遲鐘鼓初長夜 耿耿星河欲曙天

 (지지종고초장야 경경성하욕서천)
종과 북은 더디게 긴 밤에 울고
반짝이는 은하수를 보는 중에 새벽이 왔다.

 鴛鴦瓦冷霜華重 翡翠衾寒誰與共

 (원앙와랭상화중 비취금한수여공)
원앙모양 기와에 서리 내리고
비취깃털 이불은 싸늘한데 뉘와 함께 잠들리.

 
 悠悠生死別經年 魂魄不曾來入夢 

 (유유생사별경년 혼백부증래입몽)
생사간 아득한 이별 후 몇 년이 흘렀지만
혼은 꿈 속에서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臨邛道士鴻都客 能以精誠致魂魄

  (임공도사홍도객 능이정성치혼백)
임공의 도사로 홍도에 온 나그네 있으니
정성으로 능히 혼을 불러 온다고 하였다.

 爲感君王輾轉思 遂敎方士殷勤覓

 (위감군왕전전사 수교방사은근멱)
황제가 그리움에 잠 못 이루니
도사가 정성으로 그녀를 찾아 나섰다.

 排空馭氣奔如電 升天入地求之遍

 (배공어기분여전 승천입지구지편)
구름을 헤치고 바람을 타고 번개처럼 달려
하늘로 솟고 땅 속에 들어가 두루 찾았으나

 上窮碧落下黃泉 兩處茫茫皆不見

 (상궁벽락하황천 양처망망개불견)
위로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까지,
양 쪽이 아득하여 찾아볼 수 없었다.

 忽聞海上有仙山 山在虛無縹緲間

 (홀문해상유선산 산재혀무표묘간)
문득 바다 위에 신선하는 산이 있다 하는데
그 산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 其中綽約多仙子 

 (누각영롱오운기 기중작약다선자)
누각은 영롱하게 빛나고 오색구름 피어 나는데
안에는 아름다운 선녀가 여럿 있었다.

 中有一人字太眞 雪膚花貌參差是

  (중유일인자태진 설부작약참차시)
그 중 한 명의 이름이 태진(太眞)이라,
흰 피부, 고운 모습이 그녀와 다를 바 없었다.

 金闕西廂叩玉扃 轉敎小玉報雙成

 (금궐서상고옥경 전교소옥보쌍성)
황금궁전 서쪽 건물의 옥문(玉門)을 두드리니
소옥(小玉)을 거쳐 쌍성(雙成)에게 전하여졌다.

 聞道漢家天子使 九華帳裏夢魂驚

 (문도한가천자사 구화장리몽혼경)
한나라에서 온 황제의 사신이라는 말을 듣고
꽃무늬 휘장 속 혼이 놀라 깨었다.

 攬衣推枕起徘徊 珠箔銀屛迤邐開

 (남의추침기배회 주박은병이리개)
옷을 걸치고 베게를 밀치고 일어나 잠시 배회하는데
진주발과 은병풍이 점차 열렸다.

 雲鬢半偏新睡覺 花冠不整下堂來

 (운빈반편신수각 화관부정하당래)
구름처럼 올린 머리는 갓 잠에서 깨어나 한 쪽으로 몰렸고
꽃으로 장식한 관은 비스듬한 채로 방에서 내려왔다.

 風吹仙袂飄飄擧 猶似霓裳羽衣舞 

 (풍취선몌표표거 유사예상우의무)
바람이 불어 선녀의 옷깃이 펄럭이니
마치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를 추는 듯 하였다.

 玉容寂寞淚欄干 梨花一枝春帶雨

  (옥용적막누란간 이화일지춘배우)
아름다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눈물을 주르르 흘리니
배꽃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 하였다.

 含情凝제謝君王 一別音容兩渺茫

 (함정응제사군왕 일별음용양묘망)
정을 머금은 채 응시하며 황제에게 감사의 말 전하며 말했다.
“이별한 후 목소리와 모습, 둘 다 흐려졌어요.

 昭陽殿裏恩愛絶 蓬萊宮中日月長

 (소양전리은애절 봉래궁중일월장)
소양전에서의 은총이 끊어진 후
봉래궁에서의 나날은 길고 지루했어요.

 回頭下望人환處 不見長安見塵霧

 (회두하망인환처 불견장안견진무)
머리 돌려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니
장안은 아니 보이고 먼지와 안개만이 보일 뿐이라오.

 唯將舊物表深情 鈿合金釵寄將去

 (유장구물표심정 전합금차기장거)
다만 예전에 갖고 있던 물품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
자개함과 금비녀를 드리니 가져가십시오.

 釵留一股合一扇 釵擘黃金合分鈿 

 (차유일고합일선 차벽황금합분전)
금비녀 한 쪽과 함 한 쪽을 가지고자
비녀를 둘로 쪼개고 함도 나누었습니다.

 但敎心似金鈿堅 天上人間會相見

  (단교심사금전견 천상인간회상견)
우리 마음이 이 금비녀와 같이 굳세다면
하늘 위에서든 인간세계에서든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臨別殷勤重寄詞 詞中有誓兩心知

 (임별은근중기사 사중유서양심지)
이별할 때가 되어 간곡히 말을 전해주기를 부탁하였는데
말 중에는 둘 만이 아는 맹세가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칠월칠석장생전 야반무인사어시)
칠월칠석 장생전에서
깊은 밤 아무도 없이 단 둘이서 속삭였었다.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기를 원하며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하늘과 땅이 영원하다고 하나 다할 때가 있을 테지만
이 한은 길이길이 끊일 날이 없으리라.
  
빈=터럭발/賓
비=鼓/卑
영=[塋-土]/실사
초=심방변+肖
공=工+우부방
표=실사+票
묘=실사+目+少
경=戶/멀경몸/口
이=책받침+[拖-재방변]
리=책받침+麗
계=터럭발/吉
란=欄-木
제=目+弟
환=갓머리/[環-구슬옥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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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楊貴妃 墓

이 시는 杜甫의 '애강두'와 더불어 양귀비와 현종의 悲戀을 노래한 것 중 쌍벽을 이루며 당시
장안의 사람치고 몇 구절을 외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다고 합니다. 
제재는 현종(玄宗) 황제와 양귀비(楊貴妃)의 비련(悲戀)에 관한 것이며, 4장으로 되었다. 
제l장은, 권력의 정상에 있는 황제와 절세가인 양귀비의 만남과, 양귀비에게 쏟는 현종황제
의 지극한 애정 등을 노래하였다. 제2장에서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몽진하는 길에, 
양귀비를 어쩌다 죽게 한 뉘우침과 외로움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황제의 모습을 그렸다. 
제3장은, 환도 후 양귀비의 생각만으로 지새는 황제를 묘사한다. 
제4장에서는, 도사의 환술(幻術)로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 미래에서의 사랑의 맹세를 확인하게 
되었으나, 천상(天上)과 인계(人界)의 단절 때문에 살아 있는 한 되씹어야 할 뼈저린 한탄이 
길게 여운을 끈다.
이 작품에서는 변화무쌍한 서사(敍事)의 사이사이로 사랑의 기쁨, 외로움, 괴로움 등의 서정
(敍情)이 섬광처럼 번쩍이며, 외길 사랑으로 탄식만 해야 하는 현종이 새로이 창조되어 인간
으로서의 사랑의 비중을 역력히 상징한다. 
노래의 형식도 칠언(七言)이어서 유창하고 아름다운 가락이 감겨들며, 행마다 리듬이 박동하
고 때로는 각운(脚韻)을 바꾸어 가면서 장장 120행에 걸쳐 선율이 흐른다. 
'동자해음장한곡(童子解吟長恨曲)'이라는 말이 있듯 무수한 사람들이 이를 애창하였으며, 
시가와 소설과 희곡으로 취급되어 중국 근세문학사상 무한한 제재를 제공하였다. 
특히 《장한가전(傳)》은 이 시의 내용을 이야기체로 바꾸어 보라는 백거이의 권유로 진홍
(陳鴻)이 지은 전기(傳奇)소설이며, 양귀비의 입궐에서부터, 그녀가 죽은 후 현종의 명을
 받은 방사(方士)가 그녀의 靈魂을 만날 때까지를 《長恨歌》 그대로 답습하였다.

白居易(772~846)

 자가 낙천, 호 취음선생, 향산거사이다. 그는 영특하여 5,6세 때 이미 시를 지었다 한다.
 그러나 젊어서는 먹고 살기 위하여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사회 경험을 쌓으며 낮
은 백성들의 고난을 목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에게는 이들 백성을 위해서 일해야겠다는 큰 포부도 이뤄졌다. 
807년 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좌습유등을 역임했다. 
원화10년에는 그가 올바른 소리를 너무 하고 사회모순을 고발하는 시들을 많이 써서 여러사
람들의 비위를 건드려 강주사마로 좌천되었다. 원화 원년으로부터 좌습유로 있던 원화 6년까
지가 그의 시 창작의 황금기로 <산악부>,<진중음>등 대부분의 현실주의적 작품들이 이 시기
에 씌어졌다. 뒤에 충주자사가 되었다가 원화15년(820)에 조정으로 불려와 주객랑중,지제고
까지 되었다. 그러나 개성 원년(836)에는 태자소부로 풍익현개국후에 봉해졌고, 형부상서로
치사하여 대중 원년(847)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이 만년은 세상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실의를 보이며 날로 태도가 소극화하여
한적을 즐기는 경향으로 발전한다. 스스로 취음선생, 향산거사란 호를 쓴 것도 이 시기이다. 
그의 한적시에도 세상을 달관한 문호의 청정한 경지를 느끼게 하는 빼어난 작품들이 많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시집을 편집하면서도 시를 풍유,한적,감상,잡률의 네 종류로 분류하였다. 
이 중 감상은 서정시들이며, 잡률이란 그 밖에 남에게 지어준 것 같은 즉흥적인 작품들이다. 
백거이의 시는 두보보다도 더욱 철저히 사회 문제들을 파헤치고 있고 더욱 민중 생활에 접근해 있다. 
따라서 내용뿐만 아니라 시어에 있어서도 민중 용어에 가까운 평이한 표현을 쓰고 있다.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고,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琵琶行>,<長恨歌>,<유오진사시>는 불멸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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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af'e screen
글쓴이 : 草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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