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추천,당선작 364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 / 강다솜

우리들에 관한 독서 외 4편/강다솜 1. 노포동역에 내리자 갑자기 짠내가 밀려와 숨을 몰아쉰다, 누군가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고양이가 자동차 아래 눈을 뜬 채 웅크리고 웅덩이에 고인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한 겹씩 흘러내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자꾸 불어나며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소근거린다 내가 태어나 처음 한 일은 달그림자를 끌어다 바다를 한 겹 한 겹 꿰매는 일이었어 사람들은 누구나 그 책의 활자이기 때문에 이따금 늦은 시각에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2. 지하철 한구석에서 고흐가 말했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밤하늘의 저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 안의 불이 꺼..

2021년 제 2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_차호지 / 창문(외 4편)

창문 오전이 다 가도록 누워 있었다 몸을 뒤척이고 이불을 걷어내고 다시 덮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깥에서 열차가 들어오며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천장에 창문 무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방 안에는 필요한 것이 모두 있었지만 한번 사용하고 난 것을 다시 사용할 수는 없어서 새것을 가지려 누군가 나가야 했다 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와야 했고 돌아오면 다시 누워야 했다 누워서 창문을 보다가 창문을 창문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묻고 아직 그래도 되겠지요? 그래선 안 된다고 대답한 사람이 창문을 찾으러 나갔다가 바깥에는 창문이 여러 개 있어 어느 것을 가져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며 무엇이 새것인 창문입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창문을 가리키며 이것이다 저것이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

202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당선작 _여세실 「후숙」 외 5편

후숙 흑백영화 속 주인공은 왜 자꾸 도시를 헤매는 걸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볏짚이 탄다 잉걸불이 인다 불씨는 자기를 새라고 불러주는 사람을 만나면 새라고 믿고 날아가, 연기를 꿰어 노래를 만들었다 찻집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면 공방이 나왔다 손으로 뜬 수세미와 골무를 보고 있었다 옷걸이 모양대로 빨래가 말라 있었다 부들부들했다 멀미가 났다 빚어서 만든 찻잔과 식기들 주인이 웃으며 바라봤다 다음 주에 전시회가 있으니 꼭 오라고 풀려버리고 난 후에도 스웨터의 모양을 기억하는 털실처럼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이 도시에서 약속을 하고 오후라고 말했다 비라고 말했다 수요일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창 너머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둠과 더 짙은 어둠이 빠르게 지나갔다 붓 끝을 털거나 손끝으로 밀어서 ..

제15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

제15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 안개제조공장 굴뚝에 사는 소녀를 아니? 외4편 / 정성원 일정한 무게를 가진 안개 폐가 부풀어 하늘로 붕붕 뜬다면 누구 배 좀 눌러주실 분? 허공에서 소녀가 뿜는 안개는 단조로운 모양이야 이를테면 안개공장장이 소녀로 가득 찬 옷장을 가졌다든지 한 명씩 꺼내 속을 갈라본다든지 겉은 늙고 속은 생생한 아이러니를 마주한다든지 옷장의 소녀가 갈라지는 건 단추야 그럼에도 심장이라 우겨볼까 상관없고, 소녀는 달마다 죽은 태양을 낳는다 죽은 태양에 뿌리내린 안개나무, 온기를 흡수하지 못한 꽃송이, 전단지가 소리 지르며 피어나는 계절에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수많은 실종이 만개하는 모습은 어떨 것 같아? 멈추지 않는 는개,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 멈추지 않는 노래, 상실은 자주 노래를 부르..

2020,문학과사회신인상

FRACTAL / 장미도 바이닐은 붉은 색이다 너는 신중히 지문을 고른다 그때의 PRM은 33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겹겹이 두터운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날에는 45가 되기도 했다 바 자리에서는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헤드 셸이 바이닐 위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처럼 어떤 마음은 물속에 손을 넣어 물거품을 만지는 것 같다 통유리 창 안으로 햇빛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나날이 익어가는 얼굴이 앉아 있다 밤이 오면 산은 하늘보다 어두워진다 경계를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왜 여기와 저기가 나뉘는 걸까 너는 빈 의자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만지면 무언가 생길 것 같은 예감 그런 것들은 오래전에 하수구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누군가는 수영을 한다 누군가는 뜰채로 죽은 벌레를..

2019년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 당선작 _ 코기토(외)/ 정사민

2019년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 당선작 _ 코기토(외)/ 정사민 *지면에 발표된 당선작은 5편이나 여기엔 3편만 게재함(옮긴이) 코기토 (외 2편)/정사민 ​   나의 친구, 미셸은 점토를 빚는다. 미셸은 온몸을 사용해서 점토를 빚는다. 육체의 운동성을 고스란히 점토에 새긴다. 그것이 점..

2019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_조용우「새로운 생활」

2019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_조용우「새로운 생활」 새로운 생활 조용우 문병을 다녀오는 길에 새 옷을 사기로 한다 벽장 속 셔츠들은 옷깃이 바랬고 오늘은 사야한다 새로운 흰 것을 여름의 아웃렛 비어있는 리넨들은 간소하고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권하고 너는 이제 그런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