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 류인서
중견 의사 모(某)씨의 수련의 시절 임상경험담을 일간지 칼럼에서 본 적이 있다
하루는 울며불며 엄마 손에 끌려온 꼬마 환자를 살폈는데 가슴에 제법 굵다란 종기가 있더라고, 젊은 의사 모씨, 누렇게 곪은 소녀의 젖꽃판을 손가락으로 힘껏 눌러 짰더니 저런! 팥알만한 젖꼭지까지 묻어나 얼결에 피고름의 솜뭉치와 함께 쓰레기통에다 버렸다나? 등줄기며 간담까지 서늘해진 그의 불면의 밤들, 꿈길에서조차 더러 유두 없는 처녀귀신에게 쫓기곤 했다는 것
인근 소읍에서 개업한 지 여러 해, 진찰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소녀티 갓 벗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지 불안이나 죄책감은 숨긴 채 청진기를 들이댄 그의 시선 끝에, 새순의 귀여운 젖꼭지가 잡히고 순간 감사와 흥분, 일종의 경외감까지 뒤엉켜 왈칵 눈물이 솟더라고
무엇이 어떤 신묘한 힘이 그녀 가슴에다 분홍 꽃눈을 다시 돋게 했을까 시간이 지닌 설명 불가능의 복원력, 소녀의 몸에 잠들어 있던 여자가? 그녀 자궁에 잠재태로 기다리고 있을, 태어나지 않은 아가의 무구한 작은 입술이?
우리 몸 안밖에서 일시에, 생명의 한 방향으로 집중해 떠다니는 알지 못할 힘의 총량, 그녀 몸과 그의 마음 대체 어느 부분이 어느 순간에 하나로 만나 그리 힘껏 밀어 내고 끄집어당겼을까 돋아 곱다랗게 꽃 피게 했을까
-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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