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덕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
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
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
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
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
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
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시집 <신발론> 2005년 문학의전당
<<시에 대한 느낌 나누기>>
박종인(시인)
-이 시는 바람난 남편과 집 나간 아들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로 인하여 정신적 압박을 받는 여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혼 경력이 있어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것인지 이혼을 생각하는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기막힌 삶을 살아온 것만은 분명하지요.
-가방은 제목에서처럼 실재의 가방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합니다. 도장 찍힌 이혼서류, 부릅뜬 눈알, 가출한 아들, 잔소리하는 시어머니가 담겨 있을 때는 문자적 가방이 아니고 여자를 가리킵니다. 여자의 과거 혹은 상처가 담긴 조각난 마음이겠죠.
-여자의 아픈 상처가 가슴을 후빌 때 정말로 접시를 던지는 모양입니다.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나 바람난 남편을 북엇국 끌이기 위해 마른 명태를 패듯 접시를 집어던지는 일로 치료한다고 할까요? 접시를 던지고 깨어진 접시조각을 주워담는 자기분열적인 광기의 행위를 그리고 있습니다.
-접시를 던지는 것은 여자의 답답한 심사를 달래는 해소법 또는 탈출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깨어진 접시를 주워담을 때는 문자적 가방이 될 것입니다만 그 가방에 깨어진 접시 조각만 담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아픔을, 상처 난 과거를, 우울한 심정을 주워담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금이 간 거울 역시 여자의 삶을 뜻하거나, 좋지 않은 마음상태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어쩌면 이혼 서류와도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뒤축이 닳았다는 것은 살아온 날이 중년을 넘었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허술한 쓰레기봉투가 나오는 것은 분리수거가 시작된 근간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현재의 시점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오만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 여자는 남편에게 배신당하고서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고 자기 자신만 믿게 됩니다.
-바람을 피우고도 눈알을 부릅뜨고 큰소리치는 남편,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해대는 시어머니, 그런 환경이 싫어서인지 가출하고 없는 아들, 낙이라고는 찾아 볼길 없는 이 여자는 가부장적인 시대의 희생물입니다.
-우리의 어머님들은 그런 서글픈 삶을 감내해 왔습니다. 이조시대 남성중심 사고의 잔여물이라고 할까요? 지금 신세대들은 많이 달라져 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가방 혹은 여자를 통해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 때문에 꾹꾹 눌러 참다가 가슴에 피멍이 맺힌 지난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합니다. 참 많은 생각을 자극하는 좋은 시입니다. -문향 朴宗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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