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곽실로
짐승들은 어둠이 다가오자
저마다 일상의 고단한 깃털을 내리고
동그랗고 포근한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언제나 빈손일 때는 깃털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동굴속의 암컷과 새끼들은
수컷 주둥이에 축 늘어진 영양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수컷입니다 콧잔등에 상채기만 얻은 패전의
하루였습니다
무척 무안해진 수컷은 한동안 말없이 머뭇대다가
괜히 새끼의 뒷통수를 후려칩니다
얻어맞은 수컷의 새끼는
컹 컹(니미 씨벌) 짖은 후에 저쪽으로 가 앉았습니다
냉냉한 저녁나절입니다
암컷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지난번의 사냥에서 먹다남은 사슴을 꺼내 옵니다
육덕 좋은 사슴살 향긋한 맛
식사는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짐승의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합니다
사슴살로 허기를 채운 수컷은 콧잔등의 상채기를 어루만
지며 밀림에서의 하루에 대하여
너스레를 떱니다
늪 지대 진창에 빠져 악어의 이빨에 맞섰다
굴참나무 숲 속에서 동서 남북을 잃어 나무 귀신이 될 뻔 했다
사자 다섯마리의 협공으로 세 시간 동안 싸웠다
새끼들은 애비의 쓸데없는 너스레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차례로 잠이 듭니다
수컷은 암컷에게 치근대 봅니다
여전히 화가난 암컷은 작은 소리로 컹컹거립니다
암컷은 뒤돌아 눕습니다
수컷은 한숨을 내쉬며 교미도 못하고 잠이 듭니다
밀림의 동굴 속,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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