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관련

공문십철

시치 2006. 11. 8. 20:30
 

   공문십철

 

덕행 >으로 유명한 제자

 

1. 안연(顔淵)

 

이름은 회(回), 자(字)는 자연(子淵)

공자의 愛弟子로 평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에 관한 언급은 많지만, 그것을 종합해 보면 德目의 나열에 불과하다.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안연은 자신이 무언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단지 공자의 말에 동의 하거나 공자의 발언을 논평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자신의 생각이란 하나도 없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었느냐는 의문마저 들 지경이다.

공자 및 다른 제자들로부터 현명함과 유덕함을 칭찬받았지만 끝내 관직 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생 동안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 사실과 아울러 내성적인 성격이 그를 자신의 내부로 몰입시켰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궁핍 에 처해서도 변함없이 생의 기쁨을 잃지 않았다고 공자가 감탄하였지만 그러한 기쁨은 시간이 감에 따라 어 느 정도 기계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며, 지성도 능력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계속 자기보다 출세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시련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파멸시키는구나!"고 소리쳤다. .

 

 

2. 염옹(염雍)

자(字)는 중궁(仲弓).

출신은 천하지만 학행에 정통하고 박학하여 순자는 염옹을 높여 공자와 동열에 놓았다.

공자는 그를 국왕이 될 재목이라고 칭찬하였다.

 

 

3.민자건(閔子蹇)

이름은 손(損), 자(字)는 자건(子蹇).

공자보다 15세 아래다. 덕행에 있어 뛰어난 안연과 나란히 칭송되었다. 특히 그는 지극한 효성심으로 유명하여 중국 '24효' 하나로 꼽히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4. 염백우(염伯牛)

이름은 경(耕), 자(字)는 백우(伯牛).

안연에 비슷할 만큼 덕행이 높았다. 그러나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어서 공자는 "운명인가보다"하고 탄식하였다.

 

< 언어 >

 

5. 재여(宰予)

자(字)는 자아(子我)이며 노나라사람이다.

반항심으로 유명해진 사람으로 공자의 교훈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그것을 조롱하기까지 하였 으며, 화술이 좋은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공자는 [전에는 사람들의 말을 단지 듣기만 하곤 그들이 그것을 실행할 것으로 믿었으나, 지금은 말하는 것을 듣고 동시에 그 행동을 관찰한다. 재여와의 경험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는 또 공자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게을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여 는 노공과 대담한 적도 있다.

 

 

6. 단목사(端木賜)

端木은 복성(復姓)이며 자(字)는 자공(子貢), 위나라사람이다.

자로와 염구의 중용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으로 아첨하지 않고도 섬기는 사람을 기뻐게 할 수 있고, 원칙 을 포기하지 않고도 출세할 수 있는 재주를 가졌던 것 같으며, 외향적인 성격과 내성적인 성격을 겸비한, 그 야말로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유창하게 잘 하였고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 계씨의 종주가 외교회의에 그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경솔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論語}를 보면 공자와 매우 친한 사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이와 능력 탓도 있었겠지만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공자의 死後 자공이 상례의 주재자로 추대된 것 같다. 공자에 대한 그의 충성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두번씩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공을 보고 공자에 필적할 만하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 공은 극히 조용한 어조로 그런 말을 이해가 부족한 소치라고 설명하였으며, 특히, 자금에게는 바보라는 소리 를 듣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였고, 인류역사상 공자에게 필적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였다.

 

< 정치 >

 

7. 중유(仲由)

자(字)는 자로(子路)(계로(季路)라고도 함), 변(卞)나라 사람이다.

제자 중 최연장자로 공자의 제자라기 보다는 친한 친구요, 가장 엄격한 비판자 처럼 보인다. 그는 공자가 陳后 南子와 회견하였을 때 분개하였으며, 또 공자가 두번이나 邑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섬기려 고 생각하였을 때도 항의하였다. 그리고 자기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결코 약속을 다음날까지 미루는 일이 없었다. 고 한며, 자기의 결점을 지적해주면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성실하고 강직한 성격에 도 불구하고 자로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난 武人처럼 보인다. 공자 는 일국의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로를 추천하였고, [자로 같은 사람은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 다.]라고 말을 한 적도 있다.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때문에 예의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으며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자로는 그럴수록 자기자 가진 특성을 자랑하는 버릇이 더 욱 커져다. 기원전 481년 공자와 자로가 노에 돌아왔을 때, 자로와 염구의 차이를 뚜렷하게 부각시킨 사건이 발생하 였다. 이웃나라인 소주의 한 城邑을 다스리는 관리가 노에 와서 그 성읍을 노에 병합시키는 대가로 자기에게 일정한 보장을 해달라고 제의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일은 흔히 있었던 것이며 그런 협정은 맹약을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특색은 그가 결코 맹약은 하지 않겠다고 한 점이다. 자로 는 그 소주인과 만나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季康子는 염구를 보내 그를 설득하였다. [이것이 어째서 그대 에세 수치가 되는 일인가? 그는 대국의 맹약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그대의 말 한마디를 신용하고 있지 않은 가?]라고 염구가 묻자, 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노가 소주와 전쟁을 한다면 나는 이유를 불문하고 기 꺼이 그 도성 아래서 죽을 용의도 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소주의 반역자가 아닌가?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 하고 그를 정직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일은 나로서는 못하겠다.] 그후 얼마 안되어 자로는 그의 피보호자격인 子羔를 데리고 衛로 갔다. 그들은 모두 공자가 위에 있을 때 관계를 맺었던 공씨의 가신이 되었는데 반란이 일어나 공씨가 위난에 처하자 자고는 달아나며 자로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자로는 [나는 그들의 祿을 먹는 사람이다. 그들의 재난을 보고 도망갈 수 는 없다]며 주인을 구하려다 칼에 맞아 죽었다.

 

 

8. 염구(염求)

자(字)는 자유(子有), 노나라사람이다.

초기 제자 중에서는 역시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자로와는 상반되는 사람으로 그는 과도한 정열 때문에 고 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그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자가 말할 정도였다. 한번은 염구가 공자에게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 다.]라고 말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포기하 지만, 너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염구는 어떤 길을 택하기 전에 항상 예상되는 이익을 냉정하게 저울질하였던 것 같다. 그는 부드러운 화 술에도 능란하였고 유능한 행정가요 장군이기도 하였다. 이로운 길을 약삭빠르게 선택하는 그의 재주는 정치 적 출세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공자의 도움으로 계씨가에 취직하였고 앞으로 자기를 도울 사람은 공자가 아 니라 계씨라는 것을 즉각 간파하였기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계씨의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였다. 그 결과 비타협적인 자로의 신임이 떨어진 반면 그의 신임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공자는 점점 더 그에게 불만을 느꼈으며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또 인상한 계씨를 염구가 도왔을 때 공자가 그를 파문시킨다.

 

< 문학 >

 

9. 언언(言偃)

자(字)는 자유(子游)이며 오(吳)나라 사람이다.

문학에 재주를 보인 것으로 칭송되지만, 다른 후기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의례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공자가 子游가 邑宰로 있는 武城을 찾아갔을 때 현악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공자가 그 까닭을 묻자 보통은 조정에서 군자들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음악과 의례를 자유가 邑民에게 가르쳤고 이 방법으로 공 자의 도를 그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 자유의 설명이었다.

그는 최초의 대중교육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10. 복상(卜商)

자(字)는 자하(子夏)이며 위(衛)나라 사람이다.

현학적인 사람으로 문학에 뛰어났다. {논어}에는 자하가 문학에 뛰어난 사람으로 칭송되어 있다.

공자는 자장이 지나친 면이 있는 반면 자하는 미치지 못한 면이 있다고 두 사람의 성격을 대비시킨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의 이러한 차이는 언쟁으로까지 발전하였을 정도였다.

한번은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대인관계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물은 일이 있었다. 그때 자장은 물었다. [자하는 무어라고 하던가?] 제자가 대답하였다. [올바 르게 행동하는 사람과 사귀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자와 재주있는 사람을 존경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관 대한 법이다.] 자하는 단순한 현학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邑宰의 경력도 있었고, 관심의 폭도 넓었으며 그의 말 중에는 공자의 말을 상기시키는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일종의 저속한 성격이 있었는데, 이것은 "도덕적으로 중대한 문제의 한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미한 도덕문제에는 다소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공자처럼 어떤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긍정적인 강령으로서 도덕을 생각하였다기보다는 전체주의 적인 관점에서 엄격하고 고정된 규칙문제로 도덕을 생각하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