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쓸쓸해서 하는 짓 (외 2편) / 진 란

시치 2022. 7. 9. 02:43

네가 만일 오밤중에 음악을 권하고 피워 올릴 때

누군가 가만히 서랍을 열고

옛 사진들을 한 장씩 들여다보고 있다면

분명한 것은 아직은 멀쩡하다는 거야

네가 만일 푸른 숲으로 뛰어들었을 때

누군가 슬며시 렌즈를 당겨서

오후 다섯 시의 길어진 그림자들 뒤로 깔리는

황철나무 잎사귀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잡는다면

먼 곳의 바람들이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기도를 훼방하는 미친 짓이었을지도 몰라

영원을 바라 아주 멀리 날으고 싶은 간절하고 쓸모없는

구름의 눈물과 반성이었을 거야

오래전 너에게 읽히지 못한 편지와 열망이

촛불에 온몸을 불사른 나방의 곁으로

어쩌다 무심히 떨어지는 촛농 한 방울이었을 거야

억지로 너를 흔들어 댓잎 떨어뜨린 후에

책갈피를 세차게 닫아버린 짓, 같은 그런 사랑

찬바람이 저미는 징검다리를 건너온 후에는 잊어버린,

그러고도 그 자리에 칠흑처럼 되돌아오는 그런 짓

슬며시 한숨을 내쉬는 건 미친 짓이라고

아직도 덜컹거리는 서랍 속의 생쥐 같은 그런 것

 

 

 

나비 효과는 없다

 

 

 

오늘 난, 나비와 접신을 하고 광장으로 간다

구겨진 춤과 음표를 끌고 광장으로 간다

꽃도 풀도 나무도 죽어버린 곳에서 너훌너훌

완고한 차벽이 겹겹이 쌓인 틈과 사이를 흘러서 간다

푸른 낙타의 발자국

붉은 달의 발자국

은빛 사막여우의 발자국

노랑나비 떼의 발자국

지구별 여행자의 땀에 밴 배후가 지워지기 전에

때늦은 꽃샘이 심술을 부리기 전에

까닭 없는 오아시스, 너희의 신기루가 아니길

환한 햇살의 금가루로 날리는 사월의 소풍과 가라앉은 세월

물대포에 날아가는 맨발의 어미들

등 푸른 목어가 되어 문 열라고 문을 열라고

제발 문을 열고 이야기 좀 하자고 제 속 두드리는 아비들

금요일엔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금요일이 수백 번

기억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삼백육십오일

그네의 차도르에 앉은 가벼운 비명들이다

광장의 모서리에서 아무라도 끌어안고 싶은 실오라기

그 대오에 캡사이신이 뿌려진다

노랑나비 떼들의 함성과

희어진 날갯짓이 벽 안에서 절명한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는 나비, 그래 방관자

그냥 본다, 밭은 눈물의 소금 기둥을

 

 

 

접는 달

 

 

 

열외자의 세상처럼 눈물이 젖고 있다

광화문 마당은 빈 깡통 속 동전처럼 시끄러운데

북악과 인왕의 둥근 마루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소강,

다시 쏟아붓는 저 비

마구,

제멋대로 회색의 하늘을 흔들고 있다

뽑혀져 나가야 하는 뿌리처럼

 

지금은 장마 중

 

어디선가 달은 혼자서 차오르고 있다

내일쯤, 맑음이라면 몰래 찬 달이 휘영청 떠오를 테다

 

그럴 것이다, 언제 젖었냐는 것처럼

 

 

          —시집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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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란 /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계간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혼자 노는 숲』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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