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모음

유종인 시조 읽기

시치 2022. 5. 6. 10:54

[이달의 시인] 유종인
  신작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 / 월척 / 안경을 바라보며
  자선시: 마음 / 답청
(踏靑)

 
  [시인론] 정수자 "
답청 혹은 독필을 위한 파반느"

 

 

 


신작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    

  

 
   

 

   백발의 저 노인은 백 년 전도 백발 같아

   앞서 가 뒤돌아보니 자작나무 풍채인 게

   거뭇한 옹이 마디에

   웅숭깊은 눈을 떴네

 

   공중의 어느 좌표에 화장실을 세워놓고

   새들은 꼭 그 자리서 뒷일을 보는갑다

   흰 새똥 뒤집어쓴 바위가

   천년 가는 혼수(婚需)같네

 

   잎새가 죽은 난과 새 촉이 돋는 난()

   한 바람에 다른 결로 햇빛 속을 갈마들며

   터 잡은 고요의 심지에

   수결(手決)하듯 꽃을 버네

 

   남녘의 섬 한 귀퉁이 나를 번질 터가 있어

   독필(禿筆)의 그 날까지 번민을 받자 하니

   툇마루 볕 바른 자리에

   선지(宣紙) 펴는 댓잎 소리

 

   야자수와 소나무가 쪽동백을 아우 삼듯

   까마귀와 갈매기가 청보리밭 답청하듯

   숨탄것 지상의 한 걸음씩

   몸을 내는 얼이 있네

 

 

 

 

 

 

 



 

 

 월척

     

     

  

 

   올봄에는 무엇이나 이 눈물겨움이 월척일세

 

   어미 몸을 먹고 자란 거미 새끼도 월척이고

 

   우주의 모래알 같은

 

   외사랑도 월척일세

 

 

 

 

 

 

 



 

 

 안경을 바라보며

        

 

   

    

   벗어놓은 안경은 골똘함이 직업 같다

   거실에 놓였어도 광야를 내다보듯

   은애(恩愛)의 훤칠한 시력을

   불러보는 침묵 같네

 

   인간을 벗었으니 누가 쓰면 마뜩한가

   섬잣나무 등걸이나 고물이 된 자전거에

   아니면 외눈박이 고양이

   그대 한번 써볼 텐가

 

   스러지는 향기한테 콧등 높여 씌워보면

   주니가 든 시문(詩文)한테 훈김처럼 씌운다면

   백리향 만리향이 번질까

   송뢰(松籟) 품은 애체(靉靆)

 
  

 

 

 

 

 


자선시


 

 

 

 마음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오늘은 술이나 받게

 

  죽통(竹桶)처럼

 

  비었다

     

                                                 

 

 

 

 

 



 

 

 답청(踏靑)

  

   

        

 

  1

  맨발로 밟고 가자

  바람을 밟고 가자

 

  피를 좀 흘려보자 초록을 좀 눌러보자

 

  헌혈차

  문을 밀고서

  겨울 피를

 

  봄에

  주자

 

  2

  들판은 연둣빛 들판

  돌아올 땐 초록 들판

 

  외딴 것들

  빈손에는

  연애담이 풀물 들어

  

  지구에

  또 사랑이 걸린다

  짙어가자

  마음이여

 

  3

  비천한 듯 고고한 듯 가난한 듯 소슬한 듯

 

  그러나 품고 넘자

  거리의 소산일랑,

 

  맨발로 달려가 맞자

  천둥 치는

  천기(天機)의 들

 


 
     

 

 

유종인  I

1996년 《문예중앙》 신춘문예 시, 2002년 《농민신문》 ·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조집 『답청』 『얼굴을 더듬다』, 시집 『숲 시집』 등, 산문집 『염전』, 저서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 등이 있음. 〈지훈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인론 / 정수자


 

 

 

 

답청 혹은 독필을 위한 파반느 - 정수자 

  

 

  

  

 

  답청

 

  봄에 파릇파릇한 풀을 밟으며 거닒. 답청은 그 자체도 파르라니 아름다운 한 편의 시다. 새로 난 풀밭을 맨발로 거닐면 얼마나 좋을까나. 또 하나의 급 높은 봄 수작이겠지만 지금은 참아야 하는 매혹이다. 그림이 된 풍경들을 마음으로 매만지던 와유(臥遊)처럼. 예부터 봄맞이 운치로 즐겨온 답청을 다시 보니 유종인 시조를 답청하는 느낌이 삼삼하다.

  시인은 오래된 형식에서도 파릇한 순을 뽑아낸다. 조선 그림을 고전적 격조로 풀어내는 미술 평론가의 솜씨는 작품 곳곳에도 서려 있다. 다듬질 보얗게 먹인 모시옷이나 잘 마름 된 선지를 펼쳐내듯. 볼수록 마음 당기는 그림을 펼쳐 보이듯. 그만큼 한참 보고 더 봐야 들어오는 감각과 표현이 많다. 그 속에는 새삼 사전을 뒤져야 선명히 닿는 단어들이 또 많다.

  이번 신작도 그런 깊이 속의 높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는 제목부터 오래된 범종 같다. 파반느(pavane) 16세기 초엽 이탈리아에서 발생, 17세기 중엽까지 유행했던 궁정무곡.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인데 같은 제목의 소설(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9)도 있어 돌아보게 한다. 유종인은 또 다른 파반느를 보여주는데, 서구의 궁중무곡에 우리의 고전적 미의식을 담아내는 것도 이채롭다.

 

 

독필

 

유종인은 무엇이든 언어로 어르고 다듬고 빚는 데 능하다. 시는 물론 시조 등단 후에는 시조에서 그의 진수를 새롭게 펼쳐내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는 그의 시조에서 긴 편에 드는 작품이다. 각 수가 독립적이되 내적 연결도 긴밀해야 하는 연시조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얼핏 보면 각 수가 따로 노는 듯싶지만 백발(백 년)”, “천년(바위)”, “새 촉()”, “댓잎(선지) 등을 숨탄것()으로 펼치고 눙치고 맺는 품이 헌걸차다. 첫 수부터 답청하듯 들어가 보자.

 

백발의 저 노인은 백 년 전도 백발 같아

앞서 가 뒤돌아보니 자작나무 풍채인 게

거뭇한 옹이 마디에

웅숭깊은 눈을 떴네

 

백발의 저 노인은 우리 주변의 노인 모습을 심상히 보여준다. 그런데 화자가 백 년 전도 백발 같아 다시 앞서 가 뒤돌아보니 자작나무 풍채! 그것도 우정 앞서 가 뒤돌아보니 다시 보인 흰 빛의 연쇄요 연상이다. “거뭇한 옹이 마디에 웅숭깊은 눈을 떴네라는 발견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백발 자작나무의 성성한 일체화다. 그러고 보니 자작나무를 백발의 노인에 빗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실제로 자작나무는 흰 수피에 옹이 마디 같은 곳마다 거뭇하고 웅숭깊은 눈의 모습을 띠고 있으니 말이다. 두 대상의 이미지에 정신성을 얹어 다시 보니 더할 나위 없는 옹()이 아니신가.

 

공중의 어느 좌표에 화장실을 세워놓고

새들은 꼭 그 자리서 뒷일을 보는갑다

흰 새똥 뒤집어쓴 바위가

천년 가는 혼수(婚需)같네

 

둘째 수에서는 흰 새똥으로 흰 빛을 이어가며 백 년에서 천년으로 시간을 무장 길게 펼친다. 새들이 무슨 공중의 어느 좌표에 화장실을 세워놓을까만,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에 끌려 읽다 보면 뒷일에서 다시 웃음을 물게 된다. 거기서 또 놀라운 확장을 일으키니 흰 새똥 뒤집어쓴 바위가 / 천년 가는 혼수(婚需)다는 것이다. 장자의 경지를 여는 황당무계(荒唐無稽)만큼이나 가없는 상상력의 가경이다. “천년 가는 대상이 바위라 대개 끄덕일 법하지만, “혼수(婚需)를 겹친 발상 앞에는 입이 벌어질 뿐이다. “흰 새똥 입은 바위가 과연 누구의 혼수일 것인가. 더더욱 천년이나 가리라니! 새나 바람의 혼수라고 볼 수도 없고, 우리네 얕은 실제 감각으로는 도무지 잡기 어려운 붕새의 날개 그늘 같다. 그런데 그게 새로이 아름답다는 것. 그런 진경이 유종인 시조의 한 묘경이겠다.

 

잎새가 죽은 난과 새 촉이 돋는 난()

한 바람에 다른 결로 햇빛 속을 갈마들며

터 잡은 고요의 심지에

수결(手決)하듯 꽃을 버네

 

남녘의 섬 한 귀퉁이 나를 번질 터가 있어

독필(禿筆)의 그 날까지 번민을 받자 하니

툇마루 볕 바른 자리에

선지(宣紙) 펴는 댓잎 소리

 

난은 유종인 시조에서 고전적 미감의 한 구현물로 나온 바 있다. 여기서는 새 촉 고요의 심지 그리고 수결(手決) 같은 고전적 미감이 주를 이루지만, 전에는 난과 족발을 연결한 시조가 있었다. 난의 벋어 나온 뿌리를 돼지족발에 겹친 형상화였는데, 조선 선비의 최애 난초에 돼지족발 연상은 그가 최초려니 싶었다. 여기서는 단아한 꽃의 개화로 다음 수와의 연결을 마련하지만, “남녘의 섬이나 댓잎에서 연상되는 번민으로 문사들의 유배를 연상케 한다. 이어지는 독필(禿筆) 선지(宣紙) 이미지 또한 그에 따른 문향의 깊이를 더한다. 알다시피, 독필은 끝이 닳아서 없어진 붓이나 자신의 문장을 겸손히 이르는 말이고, 선지는 서화에 쓰는 중국 종이(중국 宣城 생산이라 붙인 이름)니 문과 깊이 닿는 표현들이다. 독백처럼 독필(禿筆)의 그 날까지 번민을 받자 하니라고 뇌는 데서 쓰는 자의 길을 일깨우고, 툇마루 볕 바른 자리에 선지(宣紙) 펴는 댓잎 소리 역시 그에 따른 마무리다. 이 구절은 청각의 명징한 시각화에 여운마저 눈이 부시다. 이 능청스러운 비유들이며 높고 너른 상상의 날갯짓들은 다 어디서 데려오는 것인지.

 

야자수와 소나무가 쪽동백을 아우 삼듯

까마귀와 갈매기가 청보리밭 답청하듯

숨탄것 지상의 한 걸음씩

몸을 내는 얼이 있네

 

이제 마지막 수에서 다시 크게 전체 5수를 결하는 화룡점정을 만난다. 어찌 보면 앞의 것들도 숨탄것 지상의 한 걸음씩/몸을 내는 얼이 있어서 가능한 삶의 진경이겠다. 더도 덜도 말고 야자수와 소나무가 쪽동백을 아우 삼거나 까마귀와 갈매기가 청보리밭 답청을 하거나, 그 품도 참으로 넓으니 말이다. 나아가 야자수와 소나무가 어떻게 쪽동백을 아우 삼으며, “까마귀와 갈매기가 어떻게 청보리밭 답청을 하는지 우리야 모르지만 그는 알고 듣고 보는갑다. 그렇게 속속들이 더듬고 잡아채는 촉이며, 기찬 발이 어디까지 벋을지 짐작할 수도 없지만.

 

 

송뢰

 

바람을 일으켜 보냄, 소나무 숲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 송뢰라니 좀 낯설지만 흔히 쓰이는 말로는 송풍이다. 시인이 굳이 송뢰를 쓰는 것은 그 말에 담아온 품과 격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겠다. 소나무 숲을 지나거나 솔그늘에 앉아본 사람은 말만으로도 그리운 그 바람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소나무들이 헌헌할수록 시원하고 서늘하고 청청한 일품의 기품을 건네는 것이다. 안경을 바라보며에서는 그런 은애(恩愛)의 훤칠한 시력 같은 묵은 향이 닿는다.

 

벗어놓은 안경은 골똘함이 직업 같다

거실에 놓였어도 광야를 내다보듯

은애(恩愛)의 훤칠한 시력을

불러보는 침묵 같네

 

인간을 벗었으니 누가 쓰면 마뜩한가

섬잣나무 등걸이나 고물이 된 자전거에

아니면 외눈박이 고양이

그대 한번 써볼 텐가

 

스러지는 향기한테 콧등 높여 씌워보면

주니가 든 시문(詩文)한테 훈김처럼 씌운다면

백리향 만리향이 번질까

송뢰(松籟) 품은 애체(靉靆)

 

사물을 관통하는 그의 시선은 고전적 미감과 깊이를 지나치지 않는다. “벗어놓은 안경은 골똘함이 직업 같다는 초장부터 범상치 않은 해석인데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 놓였어도 광야를 내다보는 광대함 속의 골똘함을 끌어낸다. 그런데 은애(恩愛)의 훤칠한 시력을 불러보는 침묵 같다는 안경이 둘째 수에서는 짐짓 딴소리를 던지는 모양새다. 우리네 전통 해학의 일면인 에두르기 말법이랄까, “인간이 벗은 안경을 다른 사물에 씌워보는 능청으로 시적 묘미를 키운다. “섬잣나무 등걸이나 고물이 된 자전거에 그도 아니면 외눈박이 고양이에게 천연스레 안경을 권해보는 것이다. “그대 한번 써볼 텐가 거참, 이 문장에 이르면 독자도 빙그레 웃음을 흘리다 문득 인간중심 사고까지 돌아보지 않을지. 셋째 수는 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말들이 더 골똘한 읽기를 부른다. 우선 주니의 사전 풀이를 보면 몹시 따분하고 지루해서 느끼는 싫증, 혹은 두렵거나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마음이다. 그런데 주니(朱泥)로 보면 석질의 잿물로 안을 발라 만든, 붉은 진흙의 자기, 한자 병기를 피해 중의성을 더한 것으로 짚인다. 둘을 겹친 주니가 든 시문(詩文)한테 훈김처럼 씌운다면이 한참 헤집게 하는 까닭이다. 송뢰(松籟)나 애체(靉靆)를 보면 특히 그 안에 오래 머물러야만 할 것 같다. 애체는 조선시대에 쓰던 안경의 다른 말로 그가 즐겨 쓰는 고전적 미감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 안경이 솔바람을 품었다면 그 향이 백 리든 천 리든 얼마나 멀리 깊이 스미고 번질 것인가. 유종인의 시향도 그러하나, 소수가 무릎을 칠 때 웬만한 독자는 어려운 말 앞에서 한숨 쉴 법하다는  다만 아쉬울 . 그럼에도 시인이란  영토를 확장하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 (후아나 비뇨치)이라는 말처럼, 그의 시적 발굴을 통한 영토 확장은 외롭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월척

 

월척은 주로 낚시에서 써온 말이 요즘 들어 다양한 표현으로 확장됐다. 본래 한 자[]가 넘는 물고기를 일렀으니, 월척을 낚으면 자랑스레 본을 뜨고 기릴 정도였다. 그런데 올봄에는 무엇이나 이 눈물겨움이 월척일세라는 시인의 선언에 추임새를 넣고 싶을 만큼 감동이 따른다.

 

올봄에는 무엇이나 이 눈물겨움이 월척일세

 

어미 몸을 먹고 자란 거미 새끼도 월척이고

 

우주의 모래알 같은

 

외사랑도 월척일세

 

코로나19 점령 후부터 우리에게는 간절한 게 더 많아졌다. 무엇보다 2년 넘게 입 막은 채 견디고 맞은 올봄에는 상황이 좀 나아지고 있으니 그것만도 월척일 수 있겠다. 그런 가운데 평소의 기준과 다른 월척을 낚아 올린 시인의 월척 소식은 더없이 삼삼하다. “어미 몸을 먹고 자란 거미 새끼도 월척이고 우주의 모래알 같은 외사랑도 월척이라니 말이다. 그런 시적 월척에 엄지 척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되찾으며 유심히 둘러보면 비록 소소한 탄생이나 미미한 사랑이라도 다 월척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유종인 시인이 낚으면 웬만한 것들도 월척으로 솟구치곤 했으니, 이 작품에서도 평이한 표현으로 건져 올린 월척의 감동이 길게 번진다.

 유종인, 그는 평소 공교로움과 졸박함을 천연스레 오가는 시인이다. 시는 물론 시조에 들어와 더 고졸한 깊이를 얻으며 유종인의 시조세계를 이뤄가고 있다. 그런 만큼 사전 없이는 뜻이 얼른 안 짚이는 특유의 시어들 앞에서 독자의 공감이 좁아질 우려쯤, 그는 개의치 않을지도 모른다. 동서와 고금의 횡단 속에서 자신의 시적 영토를 힘껏 확장하는 중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유정한 답청이든 고독한 독필이든, 그 또한 매번 새로 태어나는 시를 위한 시인의 파반느겠다.

 

   

정수자   

1984년 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집파도의 일과 , 논저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외 몇 권의 공저가 있음. 가람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