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추천,당선작

2022년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시치 2022. 5. 5. 22:52

수돗가의 구름 (외 4편)/위성욱

 

어떤 기분을 위해 비누에 손을 씻고

지나가는 구름에 손을 넣어 또 한 번 씻고

 

하얀 입술들이 전해주는 은밀한 이야기가 농익어 갈 때

어디선가 코트 깃을 세운 노신사가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자 혼비백산 흩어지는 어떤 조각들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식탁에

오늘도 잘 익은 고등어가 올라오고

서로의 젓가락질로 조각조각 나눠질 때

누군가 먼 곳에 있는 눈을 빼

자신의 눈인 것처럼 얼른 집어넣었다

 

바람의 언사가 구름의 언사와 섞이면

천 리를 갈 수 있다는데

천 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고 하니

 

어떤 기분을 위해

나는 오늘도 구름에 또 다시 손을 넣어

잘 익은 것들로 붉은 열매를 따고 있다

 

흰 허벅지를 가진 풋풋한 그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수돗가에서 그 열매를 깨끗이 씻고 있다

 

 

 

오래된 습관

 

저녁이 되었는데도 돌아가지 않은 양들이

풀밭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다

 

양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은 너의 오래된 습관

검은 울타리만 넘어가면 되는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자꾸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가장 먼 곳에서부터

우물이 말라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너는 가까이 있는 우물에서 길러 온 물로 저녁을 짓고

벽난로 앞에 긴 털을 깔고 또다시 잠든 척했다

 

입안에 달을 물고,

달을 톡톡 씹으며,

 

장작들이 불길에 쪼개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창밖을 쳐다보는 척을 했다 움직임이 없는

저녁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 방 어딘가에 사진기가 있었다는 것이 문득

생각이 났지만 인화되지 않은 필름처럼 입을 닫았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돌아가지 않은 네가

풀밭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오랜 습관처럼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다

 

 

 

놋뱀의 정원

 

너와 걸었던 놋뱀*의 정원을 기억해

그때 나의 오른쪽 귀에서 분명

휘파람이 들렸고

동그란 잎들을 피워 올리는 나무 사이로 놋뱀이

살짝 얼굴을 보이다 사라졌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물고 온 시간의 뱀들이,

장대 위로

올라갈 때

유리로 된 온실을 빠져나간 현자의 입김들이

송곳처럼 차갑고 단단한 것으로 굳어갔지

 

무구한 정신은 그렇게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완성된다고

너는 말했지만

나는 푸른 도마뱀처럼 자꾸 꼬리를 끊고

종소리가 되어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정설은 그렇게 눈 속에 파묻혀 버리지

놋뱀의 정원이 그려진 카탈로그 뒷장을

네가 가져가 버렸기에,

 

* 놋뱀 : 청동으로 된 뱀의 형상.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불평하자, 불뱀이 그들을 물었다. 불뱀에 물린 그들을 낫게 하기 위해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로 놋뱀을 만들었다. 이것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보는 자는 살게 된다고 〈민수기〉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턴테이블 연대기 B

 (A면에서 계속)

 

누구에게나 뒷면이라는 것은 있어요

(손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손은 손톱을 떠나야 해요)

기적처럼 도착했는데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진 기분이에요

(밤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밤은 달을 떠나야 해요)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에서든 끝낼 수 있다는

속삭임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도 몰라요

(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나무는 꽃을 떠나야 해요)

바늘이 톡, 톡, 튀는 것은

아직 읽지 못한 세상이 남아 있다는 증거에요

(책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책은 글을 떠나야 해요)

이곳에도 중심으로 가는 법칙이 있으니까요

(노래가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노래는 입을 떠나야 해요)

후회는요, 한 번도 궤도를 이탈한 적이 없어요

(구름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구름은

강과 바다를 떠나야 해요)

눈치챘겠지만 오늘 밤 누군가 자꾸 저를 되돌려 듣고 있어요

(하늘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하늘은 땅을 떠나야 해요)

달이 오늘도 밤을 되돌려보고 있듯이요

(집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집은 골목을 떠나야 해요)

한 번도 눈의 꺼풀을 이탈하지 못했던 시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사랑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사랑은 이별을 떠나야 해요)

당신과 가까워질수록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노래의 운명이에요

(신이 자라고 있어요 다 자란 신은 인간을 떠나야 해요)

이곳에 당도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설마 믿은 건 아니겠죠

(우리는 애초부터 버림받은 얼굴이었어요)

착각하세요.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이 세계의 끝이라고요

 

 

 

홀리데이

 

어제까지 같이 밥을 먹고

어제까지 같이 차를 마셨는데

오늘은 사라진

그러나 미래에 계속 따라다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온더락 잔에 담겨 있던 것들이

어느새 제 몸을 풀어 사라집니다

 

얼음이었던 것들은

얼음이었던 기억만으로도

녹지 않는 불멸의 몸을 갖게 된 것인데

 

그때 탁자에 놓여 있던 잔을 깨뜨힌 것이

나였는지 당신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없지만

나는 그 깨어진 잔에 가득 부은 술을 마십니다

 

오, 당신은 휴일입니다.

아주 멋진 휴일입니다.

오, 당신은 휴일입니다.

아주 멋진 휴일입니다.

 

감옥에서 도망가 또 다른 감옥으로 들어갔던

탈주범은 비지스가 부르는

카페로 다시 소환되고

 

나의 낭만은 당신이 소환했던 그와 앉아

또다시 당신은 소환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오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고양이는 누군가 벗어놓고 간 신발을

마치 제 몸을 핥듯이

오래오래 정성 들여 핥고 있습니다

 

 

▲위성욱 / 2022년 《시와 반시》 등단.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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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언어가 언어를 설득하도록

 

 

   은유는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것일까., 의도적으로 밀쳐지는 것일까. 밀쳐진다는 말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습성을 애써 거부하는 것 같은데 그 흐름을 막으려는 도구가 언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최종적으로 올라온 다섯 분의 시 속에 언어들이 난무한다. 그 언어들은 각자 존재의 집을 떠나 파편이 되어 서로 부딪치다가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몸부림은 몸부림치는 주체가 무언가를 설득하기 위한 몸의 언어다. 진부하게 독자를 설득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어 보이는 언어들은 곁의 언어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술하고 있는 듯하다. 그 누구도 아닌 언어가 언어를 설득하기 위해 진술하고 진술하는 언어들의 행렬이 새롭게 구축하려는 지점이 될 터인데 그 지점을 찾지 못한 언어들은 위태롭고 헐벗은 느낌이다.

   언어로 언어를 먼저 설득하는 것을 기교라고 하고 싶지 않다. 시가 새로워지기 위해 누군가가 선행한 길을 비켜선 채 길과 길 사이를 위태롭게 벌리는 것을 실험이라고 뭉뚱그릴 수는 있지만 그 말은 언제나 옳고 신선하다. 다만, 실험의 언어들도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한 것이라면 파편의 언어가 파편의 언어를 설득하는 과정의 피 흘림이 필연적이길 바란다. 새로운 혈연으로 관계 맺는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 언어들의 연대가 공허해서 안타깝다.

   “어떤 기분을 위해 비누에 손을 씻고/ 지나가는 구름에 손을 넣어 또 한 번 씻”고 언어가 언어를 설득하며 진실한 언어의 집에 닿는 과정을 보여주는 위성욱의 「수돗가의 구름」 외 4편을 신인상으로 올린다. 진실은 너무 진부하지만 언제나 거론할 필요가 없었던 필수조건이다. 네 분은 비슷했고 위성욱은 달랐다. 위성욱은 익숙한 길과 길 사이에서 틈을 벌려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신뢰가 갔다. 반복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은 「턴테이블 연대기」는 더욱 그렇다. 시가 닿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언어가 언어를 보살피고 혈연을 맺으며 주체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심사위원 : 강현국, 조말선(글)

 

 

       —계간 《시와 반시》 202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