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두부/김 륭

시치 2019. 9. 8. 01:21


두부/김 륭

 

 

밤의 입술로 흘러들지 못한

몇 가닥 전선 위에 잠과 애인을

올려 두었다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울진 않았지만

참 나쁜 이야기 같은 것이다 잠과 애인은

오지 않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오늘은 또 어떤 나무의 이불 속에

꽃술을 놓고 있단 말인가 나는 머리를

베개처럼 집어던질 수밖에,

 

아무리 나쁜 이야기 속이라도

죽지 않았으면 했다 자꾸 무덤이 되려는

살에 못을 박는다

 

달은 그런 나를 눈감아 주겠다는 듯

게슴츠레 먼 산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꽤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몇 가닥의 전선 위에 올려놓았던

잠과 애인이 두부로 변했다 흰 두부가 있다면

검은 두부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날에는 밤이 두부로 배를 채워도

그리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밤이 달에게 그랬듯이 나도 당신을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라고

 

피를 따듯하게 데운 나는

흰 두부가 검은 두부가 될 때까지

못을 다시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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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륭의 시편들은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물게 매력적이다. 그가 직조하는 풍경과 그것을 포착하는 언어가 농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애의 감정을 다루고자 할 때 그의 시적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작품에서 그가 말하는 나쁜 이야기의 근원이 애인인지, 애인을 생각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화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인이 그려 내는 내면의 풍경이 활용되는 비유의 반경과 긴장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집중할 필요는 있다. '잠'과 '애인', '밤'과 '달', '두부'와 '못'의 흥미로운 관계에서 시인은 예사롭지 않은 내면 풍경을 그려 낸다. 낱낱이 흩어진 시행들을 엮는 장치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의미의 간격이 넓은 시행들을 그대로 용인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시행 사이의 여백을 메꾸도록 유도한다.


  자신이 훑고 지나가는 풍경을 마음의 무늬로 옮겨 내는 시를 통해 그는 고급스러운 느낌과 함께 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명확하게 감지할 수 없는 정서의 파문이다. 오지 않는 잠과 오지 않은 애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화자는 "오늘은 또 어떤 나무의 이불 속에/ 꽃술을 놓고 있단 말인가"라는 이면적 정서를 투과시킨다. 그러고는 다시 "잠과 애인이 두부로 변했다"며 당신에 대한 갈증을 새로운 층위에서 이야기한다.


  그는 정황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그 정황 자체가 현재의 상황을 의미하거나 선명한 장면으로 추리되지는 않는다. 세련된 언어 구사와 편재된 비유의 배치를 통해 자신만의 시적 특질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화자는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으로 인한 허기를 두부로 대체한다. 그리고 "흰 두부가 검은 두부가 될 때까지/ 못을 다시 박는다"는 낯선 문장으로 시를 매조진다. 못에 대한 근거는 "자꾸 무덤이 되려는/ 살에 못을 박는다"라는 시행에서 찾아야 한다. 못이 주사나 침의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당신을 향한 자기 단속의 자세와 비유의 경직에서 벗어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적 참신함에서 매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병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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