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젠트리피케이션/서안나

시치 2019. 9. 9. 01:02

젠트리피케이션/서안나

 

 

   블록이 □□ 몇 장 깨져 있다 점포 유리창에 임대라고 적혀 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걸이를 깎아 팔던 사람 천연 염색을 하던 사람 초상화를 그리던 사람 가죽 손지갑과 가방을 만들던 사람 큐빅 핀과 반지를 팔던 사람 이 몸싸움이 있었던 자리다 

 

   피가 도는 사람이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고 사람 과 만나던 자리다 사람 이 살던 자리다

 

   깨진 블록 틈으로 벼락이 쳤다 반지와 풀과 나무와 지렁이와 큐빅과 연필과 개미와 벼락 맞은 사람이 있었다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2층 카페에서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수입 맥주를 마시며 다리가 듬성 듬성한 오징어를 씹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한 것 같다 

 

   공공근로자들이 서둘러 도시의 틈을 교체하고 있다 누군가 내 얼굴 에 손을 집어넣어 서둘러 빈칸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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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지금 흑당 버블티를 마시고 있는 그 카페테라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걸이를 깎아 팔던" 가장이 미처 돌아가지 못한 월세방이다. 당신이 지금 셀카를 찍고 있는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그 벽돌담 앞은 "천연 염색을 하던" 여인이 차곡차곡 햇살을 모으던 곳이다. 당신이 거닐고 있는 그 거리가 아름다운 까닭은 어느 무명 화가와 먼 이국에서 온 난민과 복학하지 못한 대학생의 간절함이 아직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일군 꿈과 미래를 무단 점유 중이다.

 

  채상우 (시인


* 젠트리피케이션: 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