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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애도 캠프 (외 4편)/김지연

시치 2019. 9. 4. 23:13

19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애도 캠프 (4)/김지연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침에도

손을 뻗으면 허공에서는 손이 자라났다

 

그런 아침에도 이불을 떠나고

 

이것 좀 봐,

자꾸 옆을 돌아보며 걷게 될 때

 

손안에 들어와 갇히는 풍경이 많았다 손안의 세계를 움켜쥐고 걸었다 그것은 너무 가볍고 너무 작아서 작은 틈새로도 줄줄 흐르기 쉬워서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했다

 

언제였더라 우리는 서울숲을 함께 걷고 있었지

뿔도 없이 동그랗고 작은 머리를 가진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어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 얇은 가죽 아래 움직이는 가느다란 여러 개의 뼈가 느껴졌지

 

손가락에 닿는 손허리뼈를 어루만지며 걷는 동안

 

잘못 뭉친 눈송이처럼

손을 떠난 순간 바스러질 것 같던 그 등을 생각했다

 

러시아에서는 사슴을 만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래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그냥 사라진다면 함께 길을 걷기에 좋은 가볍고 따뜻한 손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으며 옆을 돌아볼 수 없는 마음으로 걷다가 앞으로만 향하는 눈빛으로 걷다가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피 흘리는 사슴 한 마리가 도로에 누워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나여야 했어

 

사슴을 껴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도는 등 뒤의 길을 지웠다

 

사슴의 굳어가는 몸이 풀을 쓰러뜨리고 있다 발보다 먼저 길을 만들고 있다 누운 풀 위로 발이 겹쳐지고 있다 사슴의 아직 따뜻한 피는 내 발자국으로 굳어간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닷가 별장에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자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잡아

 

손을 잡으면 손목의 끝에 매달린 인간의 무게는 분명하고 묵직했다

 

 

 

전망대

 

 

 

우리는 빛 대신 꽃을 들고 만났다

 

오늘은 누군가 집어 던진 돌처럼

깨진 창문 안쪽에 놓여 있다

 

손안의 흰 꽃은 너무 희어서

다 타버린 빛과 같았다

 

어둠 속에서

창백한 무대 조명 아레에서

빛을 내는 얼굴을 보면서

봄밤 흰 목련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꺼지지 않는 빛을 위해

새 건전지를 넣던 손으로

 

향을 피우고

올림픽공원을 걸었다

 

지는 꽃잎은 우리의 발밑에서 악취를 풍기며 문드러지고

목덜미에 붙어 흰빛으로 피부를 비춘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라는 듯이

 

거울이 없던 시절의 인간은 어땠을까 강물에 비친 일렁이는 얼굴이라면 미워하지 않기도 쉬웠을까

 

철문에 기대어 흔들리면서 한강 변을 달리는 무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본다 불빛과 겹치며 흔들리는 얼굴을 본다 불빛은 너무 많고 너무 작아서 도무지 사람으로는 느껴지지 않고

 

여기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들만 가득해

손을 대면 아름다운 것이 자꾸 죽었다

 

우리의 끝은 다 바스러졌다

이런 식으로도 영원은 만들어진다

 

누운 이불에서는 아늑하게 등이 배겼다

공원에서 모래를 잔뜩 묻히고 돌아와 잠든

작고 늙은 루*의 곁처럼

 

빛을 들고 섰을 때 우린 다 늙어버린 것 같았지

 

꽃을 들고 선 우리는

몸통에 붙은 팔다리가 자기 것인 줄도 모르고 무서워서

몇 시간 전에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 “이름: / 장모 닥스훈트, 4킬로그램, 소형견, 9/ 특징: 검정색 흰색이 섞임(데플)/ 눈이 약한 편으로 눈물이 많고 식탐이 많음./ 성격: 온순하여 사람을 잘 따르나 겁이 많음.”

20185월에는 이렇게 적힌 전단을 봤다. 강아지 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201935일에 열 살이 되었다.

 

 

 

중력과 은총*

 

 

 

깃털을 베고 잠이 들었다가 깃털이 옮겨붙은 채로 걸었다

 

여름 바닷가였다

너는 개를 싫어하는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기다리라고 말했다

 

흰 발등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는 해변은 검은 발자국으로 자욱했다

돌아보는 얼굴과 흔들리는 꼬리로 가득한 해변에서

발이 없는 것처럼 기다리는 그런 개를 두고 걸었다

 

기다리는 개의 마음은 다른 개들을 쉽게 지운다

너의 개는 한여름 광안리에서도 유일한 개가 되어 엎드릴 수 있다

 

너무 큰 날개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천사 이야기를 알아?

 

걸음마다 모래에 빠진 발을 꺼내면서

나란히 비틀대던 네가 물었다

 

신발 끝에서 모래가 흩어졌다

모래에 섞인 것들이 해변의 불빛을 쪼개고 있다

수평선 근처에서 터지다 만 불꽃들은 달빛과 뒤엉키고 있다

 

바닷가에선 싸구려 불꽃도 이상하게 아름다워

사진으로 본 아름다운 것들은 다 잊자

 

기다리는 것이 오리라는 것을 그 개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았다

 

보도블록이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개는 꼬리를 흔든다

 

병 조각이며 마른 밥알, 깃털이 섞인 모래알이

잔뜩 따라붙은 날개의 천사가 똑바로 걷고 있다

 

잠에서는 깃털 하나하나가 새라도 된 것처럼 날아다녔다

 

 

* 시몬 베유.

 

 

 

글라스 하우스*

 

 

 

눈동자는 눈앞의 풍경을 비추고 연인의 눈동자는 등 뒤의 풍경을 비춘다 여름 숲에서 연인의 눈 속은 유리창 너머의 실내처럼 무성한 나뭇잎 사이 한 줌의 어둠으로만 보인다

 

인간의 불안은 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옆에서 발생하는 풍경의 모든 순간을 볼 수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거라고, 치과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그의 연인은 말했다

 

그는 여름 내내 일렁이는 나뭇잎 그림자만 보다가 유리로 된 집을 지었다 그 집은 벽 대신 네 개의 커다란 창을 가졌다 눈동자의 실내 같은 그 집에서는 안팎이 사라지고 옆만 남았다 두 사람은 유리의 옆이 되어 포개진 풍경이 모두 같은 질감으로 요약되는 세계를 어루만졌다

 

유리에 부드럽게 흘러넘치는 오후의 햇빛은 우리의 얼굴처럼, 나뭇잎처럼, 이불처럼 매끄럽고 차갑네

보이는 모든 걸 만질 수 있다면 보이는 대로 믿게 되겠지

그런데 왜 왼손이 쥔 옆의 손은 오른손이 만지고 있는 눈앞의 손과 다를까

 

믿음을 넘치는 온도가 두 사람의 손안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믿음을 넘치는 것을 가장 믿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어린 마음

 

눈빛은 사물의 뒷면을 깨면서 나아간다 연인의 눈빛은 피부를 투명하게 만든다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자욱하게 천장을 떠다니는 사물의 뼛가루를 헤아리며 어린 마음은 부서질 수 없는 뼈를 가진 사람처럼 두려움 없이 웃는다

 

이제 우리는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눈에 비친 풍경으로만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네

눈동자에 포개진 붉은빛 위로 같은 붉은빛의 눈동자가 겹치고 있어

투명한 피부의 연인을 안으면 팔이 녹았다

 

불타는 숲을 비추는 유리는 얼린 불꽃처럼 펑펑 깨졌다

차갑고 매끄러운 불꽃이 찬란하게 쏟아진다

 

큰 숲과 숲의 모든 것이 불탄 여름이었다

잿더미 사이를 걸으며 흩날리다 더 깊은 데로 가라앉는 검은 잎들을 본다

 

미래 바깥에서 어린 마음이 낡고 있다

어린 마음은 무성한 유리 조각 속에서 자꾸 태어나는 것처럼 누워 있다

 

 

* Glass House,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슨이 설계한 사면이 유리로 된 주택. 그는 파트너인 데이비드 휘트니와 반세기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이 집에서 숨을 거뒀다.

 

 

 

흰 개

 

 

 

어디에나 해가 넘치는 오후였다 해가 넘치는 어디에서 해가 우리를 넘치고 그것이 우리를 지치게 했고 지친 우리의 이마 위로 넘치는 해가 빛났다

 

물결 위로 해가 넘치고 난간 위로 해가 넘치고 이것이 어떤 오후라도 넘치는 해 아래에서 물결은 빛나고 빛나는 물결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빛나는 물결 너머 흰 개의 엎드린 등은 희게 빛난다 그것은 곁에 두기에 곁을 주기에 좋은 빛이다

 

흰 개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흰 개다 발등 위로 나를 좋아하는 흰 개가 턱을 기댈 때 부드럽고 따뜻하고 축축한 것을 기댈 때 우리의 머리 위로 해가 쏟아지고 우리는 함께 빛나고

 

넘치는 해는 흰 개의 검은 눈으로 넘치다 그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어둠이 내릴 것이고 빛나는 검은 눈 속에서 그 빛은 끝없이 넘치고 흐르고 그것은 모든 것이 어두워진 다음에도 계속될 빛이어서

 

넘치는 빛 속에서 일어나 발을 털었다 보얗게 이는 흙먼지도 발등 위 흰 개의 흔적도 모두 반짝이는 것이었다

 

작고 약한 짐승의 놀라운 온기가 거기에 있다 언제라도 곁을 주기에 곁에 두기에 좋은 온기로 거기에 있다 흰 개의 눈 속에서 그 비좁은 무한에서 모두가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곁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온기를 느끼다 믿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 될 것이고 끝없는 처음으로 눈이 내릴 것이고 모든 눈송이가 빠짐없이 상냥할 것이고 우리는 상냥한 흰 눈을 나눠 맞으며 희게 빛나는 세계를 바라보겠지 바라보면서 갓 지은 흰밥을 나눠 먹겠지 그런 희고 빛나는 온기를 나눈다는 것

 

넘치는 빛 속에서 모두 빛나는 것이었고 눈이 부신 일이었다고 모든 것이 곁에서 일어난 눈부시게 빛나는 일이었다고 흰빛을 뜨면서 희게 빛나는 눈밭에서 더 흰빛으로 환해지는 흰 개의 곁에서


 

김지연 / 1987년 부산 출생. 국민대 회화과 전공. 2019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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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심사위원: 강동호, 강성은, 조연정, 하재연

 

 

신인상 작품 심사를 하며 가장 즐거운 지점은 다음 세대 시인들이 가져올 미래를 가늠해보는 데 있다. 2020년대는 또 어떤 시인들이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데려다 놓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를 읽었다. 응모작들 중에는 수준 이상의 시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가 시적 질서 안에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것 역시 오랜 숙련의 시간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나 시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질서가 다시 무화되는 그곳에 있다. 동시대 시인들이 주고받는 섬세한 움직임이 느껴졌으나 다음 세대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다수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문단__성폭력운동을 연상케 하는 고발적 성격의 시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증상이 반영된 시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에서는 현실적 풍경을 넘어서는 시인의 사유와 미학적 관점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본심에 오른 시들 중에 내가 주목한 것은 양윤화, 이경태, 김지연의 시였다. 양윤화는 이미 개성적이고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냉소적이면서 활달한 시적 전개가 돋보여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작품들에 편차가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 위치한 시를 다른 시로 바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이경태가 제시한 세계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열 편 모두 연작시처럼 느껴졌고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개성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만 담고 있다는 것과 우화적이라는 점이 도리어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시인이 가진 가능성이 축소되어 보이는 이유였다. 그러나 두 분의 시가 나는 좋았다. 곧 다시 지면에서 만나기를 고대한다. 김지연의 미덕은 빛과 온기를 물질처럼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문장의 힘이었다. 열 편 모두 일정한 감각을 유지하며 시가 가진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단숨에 심사위원 모두의 마음을 얻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_강성은(시인)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읽었다. 나름의 깊이와 폭을 지닌 훌륭한 원고들이 많았다. 동시대에 함께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응모작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응원을 받는 기분이 드는 한편, 다른 이들 앞에 시를 내보낼 때의 그 가난하고 헐벗은 마음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특히 김지연, 김동균, 양윤화, 신수형, 박다래, 김이지, 강동호의 작품들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 응모작들은 자신만의 리듬과 언어의 결을 잘 다듬어 보여주고 있었다. 신수형의 파울외 작품들은, 미스터리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뾰족하게 집중되는 하나의 초점으로 향해 가는 호흡의 긴장된 전개를 따라 읽어갈 수 있었다. 더빙이나 지구행등이 구성하는 무대와 공간의 오롯함은 앞으로의 작품들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박다래의 존 스몰츠가보여주는 사물과 모티프들은 매력적이다. 존 스몰츠의 흥미진진한 유려함이나 자연사 박물관의 간결한 호흡 양쪽을 자유로이 운용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김이지의 무실은 미세한 감각의 묘사에서 시작해 방사형처럼 이어지는 말들이 어디에 가닿고 있는지 궁금하게 하는 시적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 강동호의 당신의 스웨터등의 경쾌한 어조가 지니는 거품 놀이와 같은 천진함이 마음에 든다. 이 외에 유재원의 동시다발 1외 작품들, 이원석의 기계세상의 아코나리움외 작품들의 개성적인 스타일도 흥미롭게 읽었다.

   최종적으로 다른 심사자들과 오래 논의한 작품들은 김지연의 애도 캠프, 김동균의 꽃집에 대해서, 양윤화의 211938일에게였다. 꽃집에 대해서외의 작품들이 지닌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한 호흡,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공간의 분위기, 전반적으로 고른 작품의 수준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빛나는 강점이다. 211938일에게외의 원고들은 씩씩한 어조와 읽는 이를 즐겁게 만드는 엉뚱함을 지니고 있다. 이 힘센 호흡이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다른 많은 작품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김지연의 애도 캠프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뚜렷함과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다. 상한 세계의 속살을 만지고 있는 듯한 구체적인 감각, 인간이라는 형태를 지닌 우리가 공유하는 슬픈 아름다움, 이 지구의 수많은 너와 나들 사이에서 명멸하는 마음의 파편들을 쓰다듬는 손길과 목소리, 더없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투명한 눈물이 묻어나는 것 같다. 빛 가운데 있는 죽음과 시작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의 중층의 시선은, 무엇이든 망가뜨리고야 마는 이곳의 시간들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다시 새로 시작되는 빛 앞에 한 걸음 내딛는, 시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_하재(시인)


              ⸺계간 문학과 사회201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