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손택수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살아서 무덤에 들 듯 이불 돌돌 아랫도리에 손을 데우며, 창문 너머
금 간 하늘 아래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전학 온 여자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보, 고, 싶, 다, 보, 고, 싶, 다 눈이 내리던 날들
벽돌 붉은 벽에 등을 기대고 싶었다 불의 뿌리에 닿고 싶은 하루하루
햇빛이 묻어 놓고 간 온기라도 여직 남아 있다는 듯 눈사람이 되어,
눈사람이 되어 만질 수 있는 희망이란 벽돌 속에 꿈을
수혈(輸血)하는 일
만져도 녹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을
새벽이 오도록 빈 벽돌 속에 시(詩)를 점화하며, 수신자 불명의
편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세월, 그 아이는 떠나고 벽돌집도 이내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가슴속 노을 한 채 지워지지 않는다 내 구워낸
불들 싸늘히 잠들고 비록 힘없이 깨어지곤 하였지만
눈 내리는 황금빛 둥지 속으로 새 한 마리 하염없이 날아가고 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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