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비/서연우

시치 2018. 9. 4. 23:12


비/서연우

 

  

비는,

꽃 핀다.

아스팔트 위에,

뿌리 없이,

빛보다 빠르게 빛보다 선명하게,

 

비는,

춤춘다.

처음 그곳으로 다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절정의 무희,

투명은 투명으로 묻히고

액화된 슬픔은 땅으로 스미고

 

환호도 없이 관객도 없이

주저앉아 죽은 꽃,

 

그 위에, 쉼 없이 피고

쉼 없이 소멸하는

비의 꽃,

고인 곳을 찾아 끈질기게

죽는 자는 죽고

죽은 자를 밟고

산 자가 산다. 미친 듯이 산다.

 

어디서 온 것인지

혼자 남은 나조차 소유할 수 없는

비가 낳은 꽃, 사이사이

해마다 한 뼘씩 키가 자라던 나무 그림자가 흘러간다.

뒤돌아보지 마라.

꽃이 진다.

 

죽음의 시간.

물의 꽃무덤은 형체가 없고,

그냥 진다. 빛보다 빠르게, 빛보다 선명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

전부인 양

무너진다.

 

 

            ⸻계간 문예연구2018년 여름호

------------ 

서연우 / 1968년 경남 창원 출생. 2012시사사로 등단.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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