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스크랩] 눈오는날 풍경과 눈에대한 시 모음

시치 2017. 10. 30. 15:46

 2011년1월19일 아침!

동주화원의 설경을 베란다 창가에서 찍어보았습니다

 

 

 

 

 

 푸텐시장 공원쪽이 아름답게 보여서~찰칵~찰칵~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 만의 폭설을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폭설/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때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첫눈 / 유종인


어제는 수퍼에서 막걸리 한 병 사다 마시고
홀로 잠잠히 취해 잠들었다

초저녁잠은 내처 꿈이 없었다
아니 꿈이었다면 꿈에 밀려 사라졌다

땅이 다른 나라에 사시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동안 기르다죽은 고양이와 개들도
모두 물너울 저편의 섬처럼 잠겼다

이상하다
참 이상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 세상이 받아쓰기 백 점을 맞는 날이 있다
그저 받아만 놓고 백지로 크게 웃는 날이 있다

하늘 저편 나라에서도 누가
홀로 술 한 동이를 비우고
머리가 하얗게 세는 꿈을 꾸었던가 이하(李賀)여

쓰지 말자, 오로지 쓰지 말자
백지에 대한 태만이, 이곳을 비운 사람들에 대한 공복의 예의다

 

 


대관령 옛길 /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니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주먹눈 / 전동균

 

눈 내리는 밤, 야근을 하고 들어온
중년의 시인이
불도 안 땐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쓰는 밤, CT를 찍어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편두통에 시달리며
그래도 첫마음을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지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그게 시야!

 

 

 

폭설/박이화

 

밤새 보태고 또 보태어 쓰고도
아직 못다한 말들은
폭설처럼 그칠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움에 첩첩이 막혀
더 갈데 없는 곳까지 가볼까요?
슬픔에 푹푹 빠져 헤매다
함께 눈사태로 묻혀 버릴까요?
나 참 바보 같은 여자지요?
눈오는 먼 나라 그 닿을 수 없는 주소로
이 글을 쓰는 난 정말 바보지요?
그래도 오늘 소인까진
어디서나 언제라도 유효하면 안 될까요?
끝없이 지루한 발자욱처럼 눈발,
어지럽게 쏟아지는 한길가
빨갛게 발 시린 우체통이
아직 그 자리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군요
한편에선 쿨룩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제설차가
눈길을 쓸고 거두어 위급히 병원 쪽으로 사라집니다
아, 그렇군요
내 그리움도 이렇게 마냥
응달에 쌓아 두어선 안 되는 거군요
아직 남은 추위 속에
위험한 빙판이 될 수 있겠군요
슬픔에 몸둘 바 몰라
저 어둔 허공 속 지치도록 떠도는 눈발처럼
나, 당신 기억 속에 쌓이지 말았어야 했군요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랑이 전부이고 다인 나에게는
해마다 어디로든 추운 겨울은 오고
큰 눈 도무지 그치지를 않네요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폭설/김명인

 

눈 몇 낱이 금세 폭설을 데리고 온다
저녁이 저무는 일을 잠시 멈추고
얼른 그 눈을 받아 지붕이며 길바닥에 펼쳐놓는다
지금은 한 해 천년이 후딱 지나가는
겨울 저녁 이른 한때,
천년만큼 무게를 덜어내고 가벼워진 사람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 얹혔다가
골목 끝으로 내려서 바삐 사라진다
나는 무연히 서서 한 염소가 삼키는 종이쪽인 듯
금세 흐려지는 저들 눈 발짝들 눈으로 주워 담는다
빨리 오시는 눈이나 늦게 오는 눈이
한결같이 큰 꽃 한 송이로 눈꽃 세상 피워낼 때
비로소 불을 켜도 좋은 밤, 그 꽃술 되려고
서걱거리는 얼음 속에 가등들 내걸린다, 바알갛게
이는 여기서도 뒤늦은 사랑이 와서 기웃대므로
더 아득한 곳까지 그리움 지펴지기 때문일까,
이제 겨울밤은 등피처럼 얇아지고
오래 세워둔 내 마음의 발전소를 시큰거리려니
그 캄캄함이 외려 따뜻한 순백을 켜드는 걸,
세상은 한결 새벽으로 기울어져 저 눈발
오래 어루만져 이튿날 아침 햇살 속으로 내보내리라
한 힘이 수만 흰 염소떼 몰고 왔다가
평원 자욱하게 거느리고 가는 것을 보게 된다

 

 

 

폭설/장석남


밤사이 폭설이 내려서 소나무 가지가 찍어지는 소리

폭설이 끊임없이 아무 소리 없이 피가 새듯 내려서
오래 묵은 소나무 가직 찢어져 꺾이는 소리, 비명을
치며 꺾이는 소리, 한도 업이 부드러웁게 어둠 한 켠
을 갉으며 눈은 내려서 시내도 집도 인정도 가리지
않고 비닐 하우스도 꽃집도 바다도 길도 가리지 않고
아주 조그만 눈송이들이 내려서 소나무 가지에도 앉아
부드러움이 저렇게 무겁게 쌓여서
부드러움이 저렇게 천근 만근이 되어
소나무 가지를 으깨듯 찢는 소리를
무엇이든 한번쯤 견디어본 사람이라면 미간에 골이 질,
창자를 휘돌아치는
저 소리를
내 생애의 골짜기마다에는 두어야겠다

사랑이 저렇듯 깊어서, 깊고 깊어서
우리를 찢어놓는 것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사랑이 소리도 없이 깊어서
나와 이웃과 나라가 모두, 인류가
사랑 아래 덮인다
하나씩 하나씩
한 켜씩 한 켜씩 한 켜씩
한 자루 두 자씩 쌓여서
더 이상 휠 수 없고 더 이상 내려놓을 수 없고 버틸 수
없어서 꺾어질 때, 찢어질 때, 부러지고 으깨어질 때
그 비명을 우리는 사랑의 속삭임이라고 부르자

사랑에 찢기기 전에 꿈꾸고
사랑에 찢기기 전에 꿈으로 달려가고
찢기기 전에 숨는 굴뚝새가 되어서
속삭임들을 듣는다
이 사랑의 방법을 나는 이제야 눈치채고
이제야 혼자 웃는다

눈은 무릎을, 허리를 차오르고 있다
눈은 가슴께에 차오른다
한없이 눈은, 소리도 없이 눈은
겨울보다도 더 많이 내려 쌓인다
오, 사랑이란
저러한 대적(大寂)의 이력서다.

 

 

 

폭설, 민박, 편지 2 / 김경주

 

낡은 목선들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벽지까지 파도냄새가 벤 민박집
마을의 불빛들은 바람에도 쉽게 부서져
저마다 얼어서 반짝인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연필심이 뜨거워지도록
편지지에 바다소리를 받아 적는다
어쩌다 편지지 귀퉁이에 조금씩 풀어 넣은 그림들은
모두 내가 꿈꾼 푸른 죄는 아니었는지
새 ·나무· 별· 그리고 눈
사람이 누구하고도 할 수 없는 약속 같은
그러한 것들을 한 몸에 품고 잠드는
머언 섬 속의 어둠은
밤늦도록 눈 안에 떠있는데
어느 별들이 물이 되어 내 눈에 고이는 것인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운 곳의 숲 소리를 끌어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그러나
나무의 속을 열고 나온 그늘은 얼지 않고
바다의 높이까지 출렁인다
비로소 스스로의 깊이까지 들어가
어두운 속을 헤쳐 제 속을 뒤집는 바다,
누구에게나 폭설 같은 눈동자는 있어
나의 죽음은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눈동자를 잃는 것일 테지
가장 먼 곳에 있는 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프고
눈 안을 떠다니던 눈동자들,
오래 그대의 눈 속을 헤매일 때 사랑이다
뜨거운 밥물처럼 수평선이 끓는가
칼날이 연필 속에서 벗겨내는 목재의 물결 물결

 

숲을 털고 온 차디찬 종소리들이
눈 안에서 떨고 있다
죽기 전 단 한번이라도 내 심장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심장을 상상 만하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언젠간 세상을 향한 내 푸른 적의에도
그처럼 낯선 비유가 찾아오리라는 것
폭설을 끊고 숲으로 들어가
하늘의 일부분이었던 눈들을 주워 먹다보면
황홀하게 얻어맞는 기분이란 걸 아느냐
해변에 세워둔 의하자나 눈발에 푹푹 묻혀가는 지금
바라보면 하늘을 적시는 갈매기
그 푸른 눈동자가 바다에 비쳐 온통 타고 있다는 것을

 

출처 : 산울림어울림
글쓴이 : 산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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