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屈伸*이후 외2편 / 한우진

시치 2016. 10. 11. 00:41

屈伸*이후 외2편 / 한우진

 

(어느 시인의 수상식장에 갔다. 모여 있는 시인들이 잔디밭의

잔디처럼 푸릇푸릇 서로 다정해보였다. 뜻밖에도 <많은 시인들이

우뚝 솟은 나무라고 여기는> 나무라는 시인이 객석에 앉아

있었다. 대다수 시인의 시선이 수상자가 아니 그 나무에게

쏠려 있었다)

잔디밭에서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에 올라가보지는 못하고

잔디밭에서 잔디를 본다. 잔디밭에서 나와 잔디밭과 나무를

번갈아 쳐다본다. 고만고만한 것들! 쳐다보다가, 우르르 쏟아져

나와 담배 꼬나물고 다시 쳐다보다가 퍼뜩 체코의 소설가의

에세이 한 대목 그가 작곡 수업을 받으러 다니던 열서너 살

무렵의 이야기,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스승에 관한 이미지를

밝힌 눈부신 성찰 - 이 떠올랐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뒤 스승이

그를 바래다주다가 문 가까이에서 멈춰서더니 불쑥 이렇게 말

했다는 것이다. "베토벤에게는 놀랄 만큼 약한 이행부들이 많아

하지만 센 이행부들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약한 이행부

들이야. 잔디밭처럼 말이야. 잔디밭이 없으면 우리는 그 위로

솟아나온 아름다운 나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을거야"

시상식이 끝나고 약한 이행부들은 센 이행부들을 따라 술과

잡담이 기다리는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1.현상現像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본 사람은 알지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보면 그것들의 몸땡이가

여실히 뜨거운 쪽으로 오그라지듯이

추운 날 유리를 통째로 붙잡고 있는

하이섀시 창들이 덥고도 더운 실내 쪽으로 마냥 휘듯이

가진 자를 향해, 후끈한 쪽으로

, 사람들등때기 휘는구나! 구부러지는구나하고

탄성彈性에 가까운 탄성灘聲을 지르지

쥐포나 오징어를 구우면서 알게되지


2.현대시학 現代詩學

  - 과학자에게 필요한 건 실험실이 아니라 집념이다.

     아서 콘버그(스탠퍼드대 생리학 교수)

 

발표지면이 없다고, 실험실이 없다고,

시 같은 시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 우울해서 술 마신다

침 뱉는다 그러다가도 내가 뭘 모르고 사는 것같아

현실을, 현대시를, 현대시학을 잘 모르면서 시 쓰는 것

같아 반성하면서 자문을 해본다

어느 나라고, 어느 시대고 시인은 셋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

나머진 잘해야 모국어의 비료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샘도 셋이면 목 축이는 데 넉넉할 터

머리맡에 하나, 가슴팍에 하나, 부르튼 발바닥에 하나

나머지야 탁류濁流에 보태질 흙탕물이지 않은가

 

흙탕물도 되지 못한 처지에 술취해 비료도 안되는 주제에

그날도 술집에서 상계동 사는 정 모라는 시인이

나에게 '현대시학'에 발표 한 번 못한 시인은

아직 우리나라 시인이 아니라고 못 박았을 때

이런 개새끼! 욕지거릴 퍼부었지만

이런, 이런 욕만 할 게 아니지 이렇게 현재를 모르고

현대시를 모르고 무엇보다도 현대시학을 모르고

'현대시학'의 지면을 모르고 왜 오그라진 몸땡이가 안

펴지는지를 아직 모르고 나는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