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 咸鏡線(함경선)五百킬로旅行風景(여행풍경)
序詩(서시)
世界(세계)는
나의 학교(學校).
여행이라는 課程(과정)에서
나는 수없이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
유쾌한 小學生(소학생)이다
待合室(대합실)
대합실은 언제든지 ‘튤립’처럼 밝구나.
누구나 거기서는 旗(기)발처럼
出發(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
食堂(식당)
흰 테이블보자기.
건강치 못한 화분 곁에 나란히 선
주둥아리 빼어든 ‘알루미늄’ 주전자는
고개를 꺼덕꺼덕 흔들 적마다
廢馬(폐마)와 같이 월각절각 소리를 낸다.
나는 철도의 마크를 붙인 茶盞(다잔)의 두터운 입술기에서
함경선 오백 킬로의 살진 풍경을 마신다.
마을
수수밭 속에 머리 숙이면
겸손한 오막살이 잿빛지붕 위를
푸른 박 덩굴이 기어 올라갔고
엉클인 박 덩굴을 나리 밟고서
허 - 연 박꽃들이 거만하게
아침을 웃는 마을.
風俗(풍속)
海邊(해변)에서는 여자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고향의 냄새를 잊어버리려한다.
먼 - 외국에서 온 것처럼 모두
동딴 몸짓을 꾸며 보인다.
咸興平野(함흥평야)
밤마다
서울서 듣던 汽笛(기적)소리는
獅子(사자)의 울음소리 같더니
아득한 들이 푸른 깃을
흰 구름의 품속에 감추는 곳에서는
기차는
기러기와 같이 조그마한
나그네구나.
목장(목장)
뿔이 한 치만 한 산양의 새끼
흰 수염은 붙였으나
아가네처럼 부끄러워서
움쑥한 풀포기 밑에 달려가 숨습니다.
東海(동해)
울룩불룩 기운찬 검은 山脈(산맥)이 팔을 벌려
한 아름 둥근 바다를 안아 들인 곳.
섬들은 햇볕에 검은 등을 쪼이고 있고
고깃배들은 돛을 거두고
푸른 寢牀(침상)에서 航海(항해)를 잊어버리고 조을고있구료.
부디 달리는 汽車(기차)여 숨소리를 죽이려무나.
조는 바위를 건드리는 수줍은 흰 물결이
놀라서 달아나면 어떻거니?
멱을 따는 아가씨 제발 이 맑은 물에 손을 적시지 말아요.
행여나 어린 소라들이 코를 찡기고
모래를 파고 숨어버릴까 보오.
오늘밤은 차에서 내려 저 숲에 숨어서
별들이 내려와서 목욕하는 것을
가만히 도적해 볼까.
東海水(동해수)
순이...
우리들의 흰 손수건을
저 푸른 물에 새파랗게 물들입시다.
돌아가서 서랍에 접어두고서
純潔(순결)이라 부릅시다.
벼룩이
너는 진정 호랑이의 가죽을 썼구나.
나의 침상을 獅子(사자)와 같이 넘노는 너의 다리는
曠野(광야)의 威風(위풍)을 닮았구나.
어둠속에서 짓는 사람의죄 우에 너털웃음을 웃는 너
너는 사람의 고집은 심장에서
더러운 피를 주저 없이 빨아먹으려무나.
바위
육지로 향하여 엎드려져서
물결의 흰 채찍에
말없이 등을 얻어맞는
늙은 바위
물
물은 될 수 있는 대로
흰 돌이 퍼져있는 곳을 가려서 걸어 다닙니다.
조밭 속에서 그 소리를 엿듣는
팔이 부러진 허수아비는
여기서는 오직 한 사람의 시인입니다.
달리아
眞紅(진홍)빛 꽃을 심어서
남으로 타는 鄕愁(향수)를 기르는
국경 가까운 정차장들.
山村(산촌)
모 - 든 것이 마을을 사랑한담네.
차마 嶺(영)을 넘지 못하고
산허리에서 망설이는
흰
아침연기.
[출처] 咸鏡線(함경선)五百킬로旅行風景(여행풍경) - 김기림|작성자 곧장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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