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산책자 보고서/신용목

시치 2017. 3. 18. 00:55

산책자 보고서/신용목

 

  어쩌면 허기진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지붕의 망치질 소리로 비가 온다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

  이제는 그만 굴러 떨어지고픈 그림자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비탈의 오래된 집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 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는 몸의 느낌

있다

  나의 몸은 비를 대신하여 집 안에 고여 있다

  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한사코 지붕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지운다 바닥에 누운 나는 한사코 바

닥에 차는 빗소리를 지운다 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온통 허기일 뿐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산책은 자전의 느낌이다 하루를 대신하여 라면을 먹고 나는 나를 지웠다 시간의 반대편으로 뻗는

그림자로부터 간신히 몰락을 지우는 망치질까지

  나는 모든 말의 느낌으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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