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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시치 2016. 9. 18. 21:42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는 차자 도(圖)를 아울러 올리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 이황은 삼가 재배(再拜)하고 아룁니다. 도(道)는 형상(形象)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오면서 성인이 이것을 근거로 하여 괘효(卦爻)를 만들었으니, 이때부터 비로소 도가 천하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도는 넓고 크니 어디서부터 착수하여 들어가며, 옛 교훈이 천만 가지인데 어디서부터 따라 들어가겠습니까. 성학(聖學)에는 강령(綱領)이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히 요긴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도(圖)를 만들고, 이것을 지목하여 해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보여 주니, 이것 역시 후현(後賢)이 부득이하여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마음은 만 가지 징조가 연유하는 곳이요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온갖 욕심이 공격하고 온갖 간사함이 서로 침해하는 곳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따르게 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옛날의 성군(聖君)과 현명한 왕은 이런 점을 근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조심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기를 날마다 하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겨 스승을 정하여 놓고 굳게 간(諫)하는 직책을 만들어서,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 수레를 탈 때는 여분(旅賁)의 경계함이 있고, 조회를 받을 때는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책상에 기대고 있을 때는 훈송(訓誦)의 간(諫)이 있고, 침소에는 설어(暬御)의 잠(箴)이 있으며, 일에 당면할 때는 고사(瞽史)의 인도(引導)가 있고, 사사로이 거처할 때는 공사(工師)의 송(誦)이 있으며, 소반과 밥그릇ㆍ책상ㆍ지팡이ㆍ칼ㆍ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이 가는 곳과 몸이 처하는 곳은 어디든지 훈계를 새겨 놓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방범(防範)하는 것이 이와 같이 지극하였으므로 덕이 날로 새롭고 공업(功業)이 날로 넓어져서 작은 허물도 없고 큰 이름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후세의 군주는 천명을 받고 왕위에 올랐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중하고 지극히 큼에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구비한 것이 이같이 엄격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공(王公)과 수많은 백성들의 추대에 들떠서 버젓이 성인처럼 굴며 오만 방자하게 구니, 결국 난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인도하여 도에 합당하도록 하려는 이는 온갖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장구령(張九齡)이 《금감록(金鑑錄)》을 올린 것과 송경(宋璟)이 〈무일도(無逸圖)〉를 바친 것과 이덕유(李德裕)가 〈단의육잠(丹扆六箴)〉을 바친 것과 진덕수(眞德秀)가 〈빈풍 칠월도(豳風七月圖)〉를 올린 것 같은 따위는 다 임금을 아끼고 나라를 근심하는 깊은 충의와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드리는 간절한 뜻이니, 임금으로서 깊이 유념하고 공경히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비루한 몸으로 그간 여러 조(朝)에 입은 은혜를 저버리고 병으로 시골에 들어앉아 초목과 함께 썩어가고자 했는데, 뜻밖에 허명(虛名)이 잘못 알려져서 불려 와 강연(講筵)의 중한 자리에 앉게 되니, 떨리고 황송하며 사양하여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미 면하지 못하고 이 자리를 더럽힌 이상, 이에 성학(聖學)을 권도(勸導)하고 군덕(君德)을 보양하여 요순(堯舜)처럼 융성한 데 이르도록 할 직책을 비록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한들 되겠습니까. 다만 신은 학술이 거칠고 말주변이 어눌한데 여기에다 잇따른 병고로 시강(侍講)도 드물게 하다가 겨울철 이후로는 전폐하게 되었으니, 신의 죄는 만번 죽어도 마땅한지라 근심되고 두려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이 삼가 생각해 보건대, 당초에 글을 올려 학문을 논한 말들이 이미 성상의 뜻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해 드리지 못하고, 그 뒤로도 성상을 대하여 여러 번 아뢴 말씀이 또 성상의 예지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니, 미력한 신의 정성으로는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현인과 군자들이 성학(聖學)을 밝히고 심법(心法)을 얻어서 도(圖)를 만들고 설(說)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가르친 것이 오늘날 세상에 행해져 해와 별같이 환합니다. 이에 감히 이것을 가지고 나아가 전하께 진술하여, 옛 제왕(帝王)들의 공송(工誦)과 기명(器銘)의 끼친 뜻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기왕의 성현들에 힘입어 장래에 유익하도록 하려는 바람에서입니다. 이에 삼가 그중에서 더욱 뚜렷한 것만 골라 일곱 개를 얻었습니다. 그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임은(程林隱)의 그림에다가 신이 만든 두 개의 작은 그림을 덧붙인 것이요, 이 밖에 또 세 개는 그림은 비록 신이 만들었으나 그 글과 뜻이 조목(條目)과 규획(規畫)에 있어서 한결같이 옛 현인이 만든 것을 풀이한 것이지 신의 창작이 아닙니다. 이것을 합하여 〈성학십도〉를 만들고 각 그림 아래에 또 외람되게 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삼가 정사(精寫)하여 올립니다. 신은 추위에 떨리고 병으로 꼼짝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서 이것을 하자니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글씨가 단정하지 못한 데다 줄과 글자도 바르고 고르지 못하여 규격에 맞지 않습니다. 혹여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경연관(經筵官)에게 내리시어 상세하게 논의해서 바로잡고 사리에 어긋난 것을 수정하여, 다시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정본(正本)을 정사해서 해당 관서에 보내어 병풍 한 벌을 만들어서 평소 조용히 거처하시는 곳에 펼쳐 놓으시고, 또 별도로 조그마하게 수첩을 만들어서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기거동작(起居動作)하실 때에 언제나 보고 살피셔서 경계로 삼으신다면, 신의 간절한 충정(忠情)에 이보다 다행히 없겠습니다. 그 뜻에 있어서 미진한 것은 신이 지금 거듭 설명하겠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맹자(孟子)의 말에, “마음의 직책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잃어버리고 만다.” 하였고,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을 위하여 홍범(洪範)을 진술할 적에 또, “생각함은 지혜롭다. 지혜로움은 성스러움을 만든다.” 하였습니다. 대개 마음은 방촌(方寸)에 갖추어 있으면서 지극히 허령하고, 이치는 도(圖)와 설(說)에 나타나 있으면서 지극히 현저하고 지극히 진실합니다. 지극히 허령한 마음을 가지고 지극히 현저하고 진실한 이치를 구하면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여 얻고 지혜로워 성인이 되는 것이 어찌 오늘날에 징험 되지 못 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허령하다 하더라도 주재(主宰)하는 바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치가 현저하고 진실하다 하더라도 조관(照管)하지 않으면 항상 눈앞에 있을지라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이 도식(圖式)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또 듣건대 공자(孔子)께서는, “배우고도 생각하지 아니하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로워진다.” 하였습니다. 학(學)이란 그 일을 습득하여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무릇 성문(聖門)의 학이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어두워져서 얻지 못하는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이치를 통해야 하고, 그 일을 습득하지 못하면 위태로워져서 불안한 까닭에 반드시 배워서 그 실상대로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 분명히 해 주고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깊이 이 이치를 밝히시고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시어,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냐, 노력하면 이와 같이 된다.”라고 생각하시어 분연(奮然)히 힘을 내셔서 생각하고 배우는 이 두 가지 공부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또한 경(敬)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동(動)과 정(靜)을 일관하며, 안과 밖을 합일하고 드러난 곳과 은미(隱微)한 곳을 한결같이 하는 도(道)입니다. 이것을 하는 방법은 반드시 삼가고 엄숙하고 고요한 가운데 이 마음을 두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사이에 이 이치를 궁리하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를 더욱 엄숙하고 더욱 공경히 하며, 은미한 곳과 혼자 있는 곳에서 성찰하기를 더욱더 정밀히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그림을 두고 생각할 적에는 마땅히 이 그림에만 마음을 오로지해서 다른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어떤 한 가지 일을 습득할 적에는 마땅히 이 일에 오로지하여서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이 없이 매일매일 계속하고, 혹 새벽에 정신이 맑을 때에 그것을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이해하고 혹 평상시에 사람을 응대할 때에 몸소 경험하고 북돋우면, 처음에는 혹 부자연스럽고 모순되는 불편을 면하지 못하고 또 때로 극히 고통스럽고 쾌활하지 못한 병통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곧 옛사람들이 이른바 장차 크게 향상하려는 징조요 좋은 소식의 징조라고 하겠으니, 절대로 이런 문제로 인해서 스스로 저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 자신을 가지고 힘써서 참된 것을 많이 쌓고 오래 힘써 나가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물 배듯하여 어느새 이해하고 통달하게 되며, 익히는 것과 일이 서로 익숙해져 점점 순탄하고 편하게 행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엔 각각 그 하나에만 오로지하던 것이 나중에는 하나의 근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실로 맹자가 논한 바,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하여 자득하게 된 경지”이며 “생겨나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는 말의 증험입니다. 또 따라서 부지런히 힘써서 자신의 재주를 다하면, 안자(顔子)가 인(仁)에서 떠나지 않은 것과 나라 다스리는 일을 물은 것이 바로 그 가운데 있고, 증자(曾子)가 충서 일관(忠恕一貫)하여 도(道)를 전함을 맡은 것도 바로 자신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공경함이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않아 중화(中和)를 극치(極致)로 하여 천지 만물의 위육(位育)에 참여하는 공(功)을 이룰 수 있으며, 덕행이 떳떳한 인륜에서 벗어나지 않아 천(天)과 인(人)이 합일하는 묘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그 도(圖)와 설(說)을 겨우 열 폭밖에 안 되는 종이에 베풀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생각하고 익히는 것은 평소 조용히 혼자 계실 때에 하는 것이지만,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반듯하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 다 여기에서 나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뜻을 더하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반복하되, 하찮은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싫증이 나고 번거롭다고 그만두지 않으신다면, 국가로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신(臣)은 야인(野人)이 근폭(芹曝)을 올리는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바치나이다. 황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처분을 기다립니다.

 

 

태극도설(太極圖說)

 

 

 

第一太極圖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아 동이 극에 이르면 정(靜)하고, 정하여 음(陰)을 낳아 정이 극에 이르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과 양으로 나누어져서 양의(兩儀)가 성립된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水)ㆍ화(火)ㆍ목(木)ㆍ금(金)ㆍ토(土)를 낳아서, 오기(五氣)가 순차적으로 베풀어져 네 계절이 운행된다. 오행(五行)이란 바로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이란 바로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지닌다.

무극의 진(眞)과 이(二 음양)ㆍ오(五 오행)의 정기(精氣)가 미묘하게 합해서 응결되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이기(二氣)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나고 또 나서 변화가 무궁하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니, 형체가 이미 생기매 정신이 지혜를 발(發)하며, 오성(五性)이 감동하여 선악이 나누어지고 만사가 나온다. 오직 성인은 중정(中正) 인의(仁義)로써 정(定)하되 정(靜)을 주장하여 인극(人極)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그 밝음이 합하며, 네 계절과 더불어 그 차례가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吉凶)이 합하니, 군자는 이것을 닦아서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것을 거슬러서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天)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지(地)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고, 인(人)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고 하며, 또 “원시 반종(原始反終)하여 사생(死生)의 설(說)을 안다.” 하였으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야말로 지극한 것이로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도설(圖說)은 첫머리에 음양 변화의 근원을 말하였고, 그다음에 곧 사람이 천성으로 타고난 바를 밝혔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는 것은 순수지선(純粹至善)의 성(性)이니 이것이 소위 태극이요, ‘형체가 생기자 정신이 발한다.’는 것은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한 작용이다. ‘오성이 감동한다.’는 것은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ㆍ화ㆍ목ㆍ금ㆍ토의 성을 낳는 것이요, ‘선과 악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남성을 이루고 여성을 이루는 상(象)이요, ‘만사가 나온다.’는 것은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상이다. 그리고, ‘성인이 중정 인의로써 정하되 정을 주장하여 인극을 세운다.’는 것은 또한 태극의 전체를 얻어서 천지와 더불어 혼합하여 간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랫글에 또 천지ㆍ일월ㆍ사시ㆍ귀신 등 네 가지와 합일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성인은 수행하는 행위에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이에 이르지 못하여 수양하는 것은 군자가 길하게 되는 까닭이요, 이것을 알지 못하고 거스르는 것은 소인이 흉하게 되는 까닭이다. 수양하고 거스르는 것이 공경하느냐 방자히 구느냐에 달려 있으니, 공경하면 욕심이 적어지고 이(理)가 밝아진다. 욕심을 적게 하고 또 적게 하여 욕심이 무(無)에 이르면, 정(靜)할 때는 허(虛)하고 동(動)할 때는 곧아서 성인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위는 염계(濂溪) 주자(周子)가 스스로 만든 그림과 설(說)입니다. 평암 섭씨(平巖葉氏)는, “이 그림은 〈계사(繫辭)〉의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는다.’는 뜻을 유추하여 밝힌 것이다. 다만 역에서는 괘효(卦爻)를 가지고 말하고 이 그림에서는 조화를 가지고 말하였다.” 하였고, 주자(朱子)는, “이야말로 도리의 큰 두뇌가 되는 곳이요, 또 백세(百世) 도술(道術)의 연원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이 그림을 첫머리에 내세운 것은 《근사록(近思錄)》에 이 〈태극도설〉을 첫머리로 삼은 의도와 같습니다. 무릇 성인을 배우는 사람이 근본을 여기에서부터 추구하고 《소학》과 《대학》 등에서 힘써 노력하여, 그 효과를 거두는 날에 이르러 하나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것이 이른바 ‘이(理)를 궁구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는 것이며 이른바 ‘신묘함을 궁구하고 조화를 알아 덕이 성대해진다.’는 것입니다.

 

서명(西銘)

 

 

 

第二西銘圖

 

 

 

 

 

 

 

 

 

건(乾)을 아버지라 일컫고, 곤(坤)을 어머니라 일컬으니, 나는 여기에 미소한 존재로 그 가운데 섞여 있다. 그러므로 천지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나의 몸이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성(性)이 되었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며, 대군(大君)은 내 부모의 종자(宗子)요, 대신(大臣)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것이요, 외롭고 약한 이를 자애하는 것은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와 덕을 합한 자요, 현인은 빼어난 자이며, 무릇 천하의 병들고 잔약한 사람들과 아비 없는 자식, 자식 없는 아비, 그리고 홀아비와 과부들은 모두 나의 형제 가운데 심한 환난을 당하여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이다.

이것을 보존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공경함이요, 즐거워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은 효(孝)에 순(純)한 것이다. 어기는 것을 패덕(悖德)이라 하고, 인(仁)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는 못난 사람이요, 형체가 생긴 대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자가 오로지 부모를 닮은 자이다.

조화를 알면 그 일을 잘 계승하고 신묘한 이치를 궁구하면 그 뜻을 잘 계승할 것이다.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부모에게 욕됨이 없는 것이며,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이 부모를 섬기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맛 좋은 술을 싫어하는 것은 숭백(崇伯)의 아들 우(禹)가 부모의 봉양을 돌보는 것이요, 영재(英才)를 기르는 것은 영봉인(穎封人)이 효자의 동류를 만드는 것이다.

노고를 게을리하지 않고 부모를 마침내 기쁘게 한 것은 순(舜)의 공이요, 도망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린 것은 신생(申生)의 공손함이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돌아간 자는 증삼(曾參)이요, 따르는 데 과감하고 명령에 순종한 자는 백기(伯奇)이다. 부귀와 복택(福澤)은 장차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요, 빈천과 근심 걱정은 너를 옥처럼 연마하여 완성시켜 주는 것이다. 나는 살아서는 순종하여 섬기고, 죽어서는 편안히 돌아가리라.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서명이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무릇 건으로 아버지를 삼고 곤으로 어머니를 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이일(理一)’이다.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있어 혈맥을 지닌 무리는 각각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하고 그 자식을 자식으로 하니, 분수가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면서도 만 가지로 다르니 천하가 한 집이고 중국이 한 사람과 같다 하더라도 겸애(兼愛)하는 폐단에 흐르지 않고, 만 가지가 다른데도 하나로 관통하였으니 친근하고 소원(疎遠)한 정(情)이 다르고 귀하고 천한 등급이 다르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에 국한되지 않으니, 이것이 서명의 대강의 뜻이다. 어버이를 친근하게 여기는 두터운 정을 미루어서 무아(無我)의 공심[公]을 기르고,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를 밝힌 것을 보면, 어디를 가도 이른바 분수가 서 있고 ‘이일’을 유추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서명의 앞부분은 바둑판과 같고 뒷부분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 구산 양씨(龜山楊氏)는 말하기를, “서명은 ‘이일분수’에 대한 것이다. ‘이일’임을 알기 때문에 인을 행하고, ‘분수’임을 알기 때문에 의(義)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어버이를 친한 뒤에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뒤에 만물을 아낀다고 한 말과 같다. 그 분수가 같지 않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 차등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서명의 앞 1절(節)은 사람이 천지(天地)의 아들이 됨을 밝혔고, 뒤 1절은 사람이 천지를 섬기는 것을 마치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앞의 명은 횡거(橫渠)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지은 것입니다. 처음에 정완(訂頑)이라고 이름 붙였었는데, 정자가 고쳐서 서명이라 하였고, 임은 정씨(林隱程氏)가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대개 성학(聖學)은 인(仁)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모름지기 이 뜻을 깊이 체득하여야 바야흐로 천지 만물과 더불어 일체가 됨이 진실로 이러하다는 경지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을 실현하는 공부가 비로소 친절하고 맛이 있어서 망망(茫茫)하여 손댈 수 없는 걱정을 면할 것이요, 또 물(物)을 자기로 아는 병통도 없어져서 심덕(心德)이 온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말하기를, “서명은 뜻이 극히 완비되었으니, 곧 인의 체(體)이다.” 하고, 또 “이것이 가득 차서 다할 때에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소학제사(小學題辭)

 

 

 

第三小學圖

 

 

 

 

 

 

 

 

 

원(元)과 형(亨)과 이(利)와 정(貞)은 천도(天道)의 떳떳함이요, 인(仁)과 의(義)와 예(禮)와 지(智)는 인성(人性)의 벼리이다. 무릇 사람의 성품은 시초에는 착하지 아니함이 없어, 애연(藹然)한 사단(四端)이 외물(外物)에 감동함에 따라서 나타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함과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함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떳떳한 성품[秉彝]이다. 이것은 순(順)한 것이요 억지로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성인(聖人)의 성품은 드넓은 하늘과 같으니, 터럭 끝만큼도 더하지 않아도 모든 선(善)이 충분하다. 보통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물욕에 가리어져 그 벼리가 무너지고 자포자기에 빠져 버린다. 성인은 오직 이 점을 가엾게 여겨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두어서 그 뿌리를 북돋우고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은, 물 뿌리고 쓸고 응답하며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경하여 모든 행동에 거스름이 없이 행한 뒤에 여력이 있으면 시(詩)를 외고 글을 읽으며 영가(詠歌)하고 무도(舞蹈)를 하는 데도 생각이 지나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는 것은 이 학문의 큰 요지이다. 밝은 명(命)이 환하여 안팎이 없으니, 덕이 높고 업(業)이 넓어야 그 본래의 본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옛적에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거늘 지금이라고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 세대가 멀어지고 성인이 없어지니 경전이 쇠퇴하고 교화가 해이해져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바르지 못하고 커서는 더욱 사치하여, 마을에 좋은 풍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어진 인재가 없어서, 이욕(利欲)으로 어지럽고 잡된 말들로 시끄러워졌다. 다행히 사람이 타고난 떳떳한 성품은 하늘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아니하니, 이에 옛날에 들은 것을 수집하여 뒤에 오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려 한다. 아, 아이들아 이 글을 공경히 배우라. 이것은 늙은 나의 노망한 말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시다.

 

 

어떤 이가, “그대가 바야흐로 사람에게 《대학》의 도(道)를 말하려 하면서도 《소학》의 글을 참고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으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학의 대소는 진실로 같지 아니하나 그 도는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릴 적에 《소학》을 익히지 아니하면 방심(放心)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삼을 수가 없고, 커서 《대학》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의리를 살펴 모든 일에 베풀어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린 학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물뿌리고 쓸며 응답하고 진퇴(進退)하는 가운데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익히는 일에 스스로 진력하게 하고, 성장한 뒤에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에 나아가 지선(至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인데 무엇이 불가한가.”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또, “만약 나이가 장성해서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고 물으니, 주자는 말하기를, “이미 지나간 세월은 진실로 소급할 수 없지마는, 그 공부의 차례와 조목은 어찌 다시 보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들으니, ‘경(敬)’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 《소학》을 공부하는 자가 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하여 물 뿌리고 쓸고 응답하며 진퇴하는 절차와 육예(六藝)의 가르침을 삼가지 못할 것이요, 《대학》을 공부하는 자도 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총명을 개발하고 덕을 진보시키며 학업을 익혀서 명덕과 신민의 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때가 지난 뒤에 배우는 자가 성실히 이에 힘써서 그 큰 것에 나아가고 작은 것을 겸하여 보충한다면, 나아가는 데 있어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성취하지 못할 것은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위의 《소학》은 옛날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신이 삼가 본서(本書)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대학》의 그림에 짝이 되도록 하고, 또 주자의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설을 인용하여 두 가지를 공부하는 대강을 보였습니다. 대개 《소학》과 《대학》은 서로 의지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런 까닭에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학혹문》에서 이를 통론하였고 이 두 그림에서도 함께 수록하여 구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학경(大學經)

 

 

 

第四大學圖

 

 

 

 

 

 

 

 

《대학》의 도는 타고난 깨끗한 본성[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定)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뒤에 편안해질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일에는 시종(始終)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워질 것이다.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정돈하였으며, 그 집을 정돈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다. 또 그 몸을 닦으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였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하게 하였으니, 앎을 지극하게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사물의 이치가 연구된 뒤에야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뒤에야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여지고, 몸이 닦여진 뒤에야 집이 정돈되고, 집이 정돈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수신(修身)으로 근본을 삼는다.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법은 없으며, 후하게 해야 할 데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데에 후하게 할 자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가 묻기를 “경(敬)을 당신은 어떻게 힘을 씁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일찍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잡념을 가지지 않는 것[主一無適]’으로 말하였고, 또 ‘정제(整齊)’와 ‘엄숙(嚴肅)’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문인(門人) 사씨(謝氏 사양좌(謝良佐))의 말에는 ‘항상 깨어 있게 하는 법(常惺惺法)’이라고 한 것이 있으며, 윤씨(尹氏 윤돈(尹焞))의 말에는 ‘그 마음을 단속하여 어떤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들이 있다. 한 마음의 주재(主宰)이며 만사의 근본이다. 그 힘쓸 방법을 알면 《소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소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면 《대학》이 여기에서 끝맺는다는 것도 같은 이치로 꿰뚫어서 의심 없이 알게 될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이미 확립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물을 연구하여 앎을 지극히 해서 사물의 이치를 다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말미암는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몸을 닦으면 이것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는 것이요, 이것으로 인하여 집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것이 이른바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공손함을 독실히 하여 천하를 화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루라도 경(敬)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니, 경이라는 한 글자가 어찌 성학(聖學)의 시종이 되는 요긴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 윗글은 공자가 남긴 《대학》의 첫 장인데, 국초에 신하 권근(權近)이 이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장(章) 아래 인용한 《혹문》의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뜻은 그 설명이 〈소학도(小學圖)〉 아래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설만 훑어볼 뿐만 아니라 아울러 위아래 여덟 그림도 모두 이 두 그림과 통합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개 처음 두 그림은 단서를 찾아 확충하여 하늘을 본받고 도를 다하는 극치인 것으로 《소학》ㆍ《대학》의 표준과 본원이 되는 것이요, 다음 여섯 그림은 선(善)을 깨닫고 몸을 성실히 하며 덕을 높이고 업(業)을 넓히는 데 힘쓰는 것이니, 이것이 《소학》ㆍ《대학》의 바탕이며 사공(事功)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은 위에서부터 끝까지 통하는 것이니, 공부를 하여 효과를 거두는 데 있어 모두 종사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이 그와 같으니, 지금 이 십도도 모두 경으로써 주를 삼았습니다. 〈태극도설〉에 정(靜)만 말하고 경(敬)을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주자의 주(註)에서 경(敬)을 말하여 이것을 보충하였다.

 

동규후서(洞規後敍)

 

 

 

第五白鹿洞規圖

 

 

 

 

 

 

 

 

 

내가 보건대 옛날 성현이 사람에게 공부하는 것을 가르친 뜻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의리(義理)를 강명(講明)하여 그 몸을 닦은 뒤에 이를 미루어 사람에게 미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두루 보아 사장(詞章)을 짓기에 힘써 명성을 구하고 이록(利祿)을 취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부하는 이들은 이와는 상반된다. 성현이 사람 가르치는 법은 경(經)에 갖추어져 있으니,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 숙독(熟讀)하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분변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理)의 당연함을 알아서 자신에게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책려한다면, 그 일상생활의 법도와 금지 규정을 어찌 다른 사람이 베풀어 주기를 기다린 뒤에 준수하고 좇을 필요가 있겠는가. 요즈음에도 학교에 규정은 있지만 학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천박하고, 그 규정도 딱히 고인(古人)의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당(堂)에는 더 이상 그 규정을 쓰지 않고, 특별히 성현들이 사람들에게 학문하는 것을 가르친 바의 큰 근본을 취하여 위와 같이 조목조목 열거하여 현판에 게시한다. 제군들은 서로 강명하고 준수하여 이것을 몸에 실행하기를 기한다면,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바가 반드시 저 규정보다 엄격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고 혹 금지 규정의 범위를 벗어남이 있다면 이른바 규정이란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요 실로 생략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니, 제군들은 명심할지어다.

 

○ 위의 백록동규는 주자가 지어서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학도에게 게시한 것입니다. 백록동은 남강군(南康軍) 북쪽 광려산(匡廬山) 남쪽에 있는데, 당(唐)나라 이발(李渤)이 여기에 은거하여 흰 사슴을 길러 데리고 다녔으므로, 이에 따라 백록동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남당(南唐) 때에 서원을 세워 국상(國庠)이라고 불렀는데 학도가 항상 수백 명이었으며, 송나라 태종이 서적을 나누어 주고 동주(洞主)에게 관직을 주어 권장하였습니다. 중간에 황폐해지자 주자가 지남강군사(知南康軍事)가 되었을 때에 조정에 청하여 중건하고 학도를 모아서 규정을 만들어 도학(道學)을 앞장서서 밝히니, 서원의 교육이 드디어 천하에 성행하였습니다. 신이 이제 삼가 규문(規文)의 본조목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보고 살피기에 편리하게 하였습니다. 대개 당우(唐虞) 시대의 교육은 오품(五品)에 있고, 삼대(三代)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규(洞規)의 궁리와 역행(力行)이 모두 오륜에 기본을 둔 것입니다. 또 제왕의 학문이 갖추어야 할 준칙과 금지의 조목은 일반 학자들과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륜에 기본을 두고 이치를 규명하고 실행에 힘써서 심법(心法)의 절실하고 요긴한 것을 구하는 면에서는 같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울러 이 그림을 헌상하여 아침저녁으로 시종하는 이가 아뢰는 잠언(箴言)에 충당하옵니다.

○ 이상 다섯 도(圖)는 천도(天道)에 기본을 두었는데, 공부는 인륜을 밝히고 덕업(德業)을 힘쓰는 데 있습니다.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第六心統性情圖

 

 

 

 

 

 

 

 

 

 

임은 정씨(林隱程氏)가 말하기를, “소위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는 것은, 사람이 오행(五行)의 빼어남을 받아서 태어남에 그 빼어난 것에서 오성(五性)이 갖추어지고, 오성이 동(動)하는 데서 칠정이 나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그 성ㆍ정을 통섭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적연(寂然)히 움직이지 아니함이 성이 되는 것은 마음의 본체요, 감통(感通)하여 정(情)이 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장자(張子)가 ‘마음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 하였으니, 이 말이 합당하다. 마음이 성을 통섭하는 까닭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이 되고 또 ‘인의의 마음’이란 말도 있으며, 마음이 정을 통섭하는 까닭에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가 정이 되고 또 ‘측은한 마음ㆍ수오하는 마음ㆍ사양하는 마음ㆍ시비하는 마음’이란 말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성을 통섭하지 못하면 미발(未發)의 중(中)을 이룰 수 없어서 성이 천착되기 쉽고, 마음이 정을 통섭하지 못하면 절도에 맞는 화(和)를 이룰 수 없어서 정이 방탕하기 쉽다.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서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성을 기르고 그 정을 단속하면, 배우는 방법이 얻어질 것이다.”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정자(程子)의 〈호학론(好學論)〉에는 그 정을 단속한다는 말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성을 기른다는 말의 앞에 놓여 있는데 여기에는 도리어 뒤에 있는 것은,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린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치를 따져 말하면 마땅히 정자가 논한 것이 순리라고 하겠습니다. ○ 그림에 온당하지 못한 곳이 있기에 조금 고쳤습니다.

 

○ 위의 세 그림 중에 맨 위에 있는 그림은 임은 정씨가 그리고 직접 설명을 하였고, 아래에 있는 두 그림은 신이 외람되게 성현이 말씀을 남겨 가르침을 드리운 뜻을 미루어 만들었습니다. 중도(中圖)는 기품(氣稟) 가운데 나아가서 기품이 섞이지 않은 본연(本然)의 성(性)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자사(子思)의 이른바 ‘천명의 성[天命之性]’과 맹자의 이른바 ‘성선의 성[性善之性]’과 정자(程子)의 이른바 ‘즉리의 성[卽理之性]’과 장자(張子)의 이른바 ‘천지의 성[天地之性]’이 곧 이것입니다. 그 성을 말함이 이와 같은 까닭에 그것이 발현하여 정이 된 것도 모두 그 선한 것을 가리켜 말하였으니, 자사의 이른바 ‘중절의 정[中節之情]’과, 맹자의 이른바 ‘사단의 정[四端之情]’과 정자의 이른바 ‘어찌 선하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정과, 주자의 이른바 ‘성(性)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것이 본래 선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정과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하도(下圖)는 이(理)와 기(氣)가 합한 것으로 말한 것이니, 공자의 이른바 ‘서로 유사하다’는 성과, 정자의 이른바 ‘성이 곧 기(氣)요, 기가 곧 성’이라는 성과, 장자의 이른바 ‘기질의 성[氣質之性]’과, 주자의 이른바 ‘기(氣) 가운데 있으나 기는 기요 성은 성이어서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성이 곧 이것입니다. 그 성을 말함이 이와 같은 까닭에 그것이 발현하여 정이 된 것도 이(理)와 기(氣)가 서로 의지하거나 서로 방해하는 곳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예컨대 사단(四端)의 정은 이(理)가 발현함에 기(氣)가 따르니 자연히 순선(純善)하여 악이 없지만, 이가 발현하여 미처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에 가리어진 뒤에는 불선(不善)으로 흘러갑니다. 또 일곱 가지 정은 기가 발현함에 이가 타서 또한 불선함이 없지만, 기가 발현하여 절도에 맞지 못하여 그 이를 멸하면 방탕하여 악이 되는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은 까닭에 정 부자(程夫子)는, “성만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아니하면 갖추어지지 않으며, 기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아니하면 밝지 아니하니, 이것을 따로따로 분리하면 옳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맹자와 자사가 이(理)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불비한 것이 아니라 기를 아울러 말하면 성이 본래 선함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일 뿐이니, 이것이 중도(中圖)의 뜻입니다. 요약하면 이기(理氣)를 겸하고 성정(性情)을 통섭하는 것은 마음인데, 성이 발현하여 정이 되는 즈음이 곧 마음의 기미(幾微)요, 온갖 변화의 중추인 것이니, 선악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진실로 경(敬)을 견지하는 데 오로지하여 이(理)와 욕(欲)의 분별에 어둡지 않고, 더욱 이에 삼가서 미발 상태에서 존양(存養)하는 공부가 깊고 이발 상태에서 성찰하는 습성이 익숙하여 참을 쌓고 오래 힘써 그 치지 아니하면, 이른바 ‘정밀하고 오로지하며[惟情惟一] 치우침이 없이 떳떳한 도리를 잡는[允執厥中]’ 성학(聖學)과 ‘체(體)를 보존하고 용(用)을 응(應)하는’ 심법을, 다른 데에서 구할 필요 없이 모두 여기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인설(仁說)

 

 

 

第七仁說圖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이 이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아직 발현하기 전에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이 구비되어 있는데, 오직 인만이 이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함육(涵育)하고 혼전(渾全)하여 거느리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생(生)의 성(性)이요, 애(愛)의 이(理)로, 이것이 인의 본체이다. 이미 발현된 즈음에는 사단(四端)이 나타나는데, 오직 측은(惻隱)만이 사단을 관철하고 있다. 그리하여 두루 흘러 관철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성(性)의 정(情)이요, 애(愛)의 발현으로, 이것이 인의 작용이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미발(未發)은 체(體)이고 이발(已發)은 용(用)이며, 부분적으로 말하면 인은 체이고 측은은 용이다. 공(公)이라는 것은 인을 체득하는 것이니, ‘사심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고 하는 말과 같다. 대개 공은 인이요 인은 애이니,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은 그 작용이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이것을 아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천지의 마음은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이라 하는데, 원은 통하지 않음이 없다. 그것이 운행하면 차례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되는데, 봄의 생기(生氣)가 통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라 하는데, 인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인ㆍ의ㆍ예ㆍ지가 발현하여 작용하면 애(愛)ㆍ공(恭)ㆍ의(宜)ㆍ별(別)의 정(情)이 되는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통하지 않음이 없다. 무릇 인의 도는 곧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만물에 있어 정이 발현되기 전에 이미 이 본체가 갖추어져 있고, 정이 발현하면 그 작용이 무궁하다. 진실로 이를 본받아 보존하면 온갖 선(善)의 근원과 모든 행실의 근본이 이에 있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공문(孔門)의 교육이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금 인을 구하는 데 급급하게 하는 까닭이다. 공자는 ‘사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이는 자기의 사심을 제거하고 천리(天理)로 돌아갈 수 있으면 이 마음의 체(體)가 있지 않음이 없고, 이 마음의 용(用)이 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또 ‘거처하는 것이 공손하고, 일을 하는 것이 공경스러우며, 타인에게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며,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공경으로 형을 섬기며 서(恕)로써 상대에게 미쳐 간다.’는 말은 이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천지에 있어서는 끝없이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에게 있어서는 따뜻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사덕을 포함하고 사단을 관통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만약 그대의 말과 같다면 정자의 이른바 ‘애(愛)는 정이요, 인(仁)은 성이니, 애로써 인이라고 이름 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잘못된 것인가?” 하니, 주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정자의 말씀은 애의 발(發)을 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에 대한 것이고, 내가 논하는 것은 애의 이(理)를 인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대저 이른바 정과 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 분계(分界)는 같지 아니하나 그 맥락이 통하는 것은 각각 속한 바가 있는 것이니, 어찌 서로 떨어져서 상관하지 않겠는가. 나는 배우는 이가 정자의 말만 외고 그 뜻을 구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확연히 애를 떠나 인을 말하는 데 이른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이것을 논하여 그가 남긴 뜻을 밝혀낸 것인데, 그대가 정자의 말과 다르다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정자의 문도 중에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을 가지고 인의 체(體)로 삼는 이도 있고,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을 가지고 인이란 이름을 해석하는 이도 있으니, 모두 잘못된 것인가?” 하니, 주자는, “만물과 내가 하나로 된다는 것에서 인이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의 체(體)가 되는 참모습은 아니다. 마음에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인이 지(智)를 포괄한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이란 이름을 얻게 된 실상은 아니다.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에 대한 자공(子貢)의 질문에 답한 공자의 말씀과 지각은 인으로 풀이할 수 없다는 정자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으니, 그대는 어찌 이것을 가지고 인을 논하는가.” 하였습니다.

 

○ 위의 인설은 주자가 짓고 아울러 그림을 만든 것으로, 남김없이 인도(仁道)를 밝혀낸 것입니다. 《대학》의 전(傳)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그친다.” 하였으니, 지금 옛 제왕들이 마음을 전하고 인을 체득한 묘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어찌 여기에 뜻을 다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심학도설(心學圖說)

 

 

 

第八心學圖

 

 

 

 

 

 

 

 

 

임은 정씨 복심(復心) 는 말하기를, “적자심(赤子心)은 인욕(人欲)이 혼탁(混濁)하기 이전의 양심(良心)이요, 인심(人心)은 곧 욕심에 눈을 뜬 것이다. 대인심(大人心)은 의리가 갖추어져 있는 본심이요, 도심(道心)은 곧 의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실로 형기(形氣)에서 나온 것은 모두 인심이 없을 수 없고, 성명(性命)에서 근원한 것은 도심으로 된 것이다. 이 그림의 ‘유정유일 택선고집(惟精惟一擇善固執)’ 이하는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 없고, ‘신독(愼獨)’ 이하는 인욕을 막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면 부귀가 마음을 음란하게 할 수 없고, 빈천이 마음을 옮기게 할 수 없으며, 위무(威武)가 마음을 굴하게 할 수 없어 도(道)가 밝아지고 덕이 성립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구(戒懼)’ 이하는 천리를 보존하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종심(從心)’에 이르면 마음이 곧 체(體)요 욕(欲)이 곧 용(用)이며, 체는 곧 도(道)요 용은 곧 의(義)이며, 음성은 음율(音律)이 되고 몸은 법도가 되어서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얻고 힘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절도에 맞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부하는 요령이 모두 하나의 ‘경(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란 몸의 주재요 경은 또 마음의 주재이니, 배우는 이들이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설(說)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 및 그 마음을 수렴하라든가 항상 깨어 있다라는 설들을 익히 궁구하면, 그 공부가 극진하여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위의 심학도는 임은 정씨가, 성현들이 심학(心學)을 논한 명언을 주워 모아 만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많은 것을 꺼려하지 않고 분류하고 대치시켜서 성학(聖學)의 심법이 한 가지가 아니므로 모든 것에 공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배열한 것은, 다만 얕고 깊은 것과 생소하고 익숙한 것에 대개 이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그 공부하는 절차에 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과 같이 선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대개를 서술하였다고 하나 ‘구방심(求放心)’은 힘써 공부하는 초기의 일이니 ‘심재(心在)’ 뒤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구방심’은 얕게 말하면 진실로 제일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 되지만, 그 깊은 데 나아가서 극진히 말하면 순식간에 잠깐 생각이 어긋나는 것도 방심입니다. 안자(顔子)도 오히려 석 달 뒤에는 인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방심해서입니다. 그러나 안자는 잠깐 어긋났다가도 바로 이것을 알고, 알자마자 바로 다시 싹트지 못하게 하니, 이것 또한 ‘구방심’의 부류입니다. 그러므로 정씨의 그림의 서술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정씨의 자(字)는 자현(子見)이요, 신안(新安) 사람입니다. 은거하여 벼슬하지 아니하고, 행의(行義)가 매우 구비되었으며 늙도록 경(經)을 연구하여 깊이 터득한 바가 있고, 《사서장도(四書章圖)》 세 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원(元)나라 인종조(仁宗朝)에 천거(薦擧)로 인해 불러서 곧 기용하려고 하였으나, 자현이 원하지 않아 향군 박사(鄕郡博士)로 삼자 벼슬을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소견이 없이 함부로 이것을 지었겠습니까.

 

 

경재잠(敬齋箴)

 

 

 

第九敬齋箴

 

 

 

 

 

 

 

 

 

 

의관(衣冠)을 바로하고 눈매를 존엄하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처하면서 상제(上帝)를 대하듯 하라. 발은 반드시 무겁게 놓고 손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 땅을 가려 밟되 개미집도 피하여 돌아가라. 문을 나설 때는 큰손님을 뵙는 것같이 하며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는 것같이 하여 조심조심 하여서 혹시라도 안이하게 처리하지 말라. 입을 다물기를 병(甁)처럼 하고 뜻을 방비하기를 성(城)처럼 하여 성실히 하여 혹시라도 가벼이하지 말라. 서쪽으로 간다 하고 동쪽으로 가지 말고 북쪽에 간다 하고 남쪽으로 가지 말아서 일을 당하면 오직 거기에만 마음을 두고 다른 데로 좇지 않게 하라. 둘로 마음을 두 갈래로 내지 말며 셋으로 마음을 세 갈래로 내지 말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여 만 가지 변화를 살피라. 여기에 종사하는 것을 경(敬)을 지킨다고 하니, 동(動)할 때나 정(靜)할 때나 어김이 없이 표리(表裏)를 바르게 하라. 잠깐이라도 간단(間斷)이 있으면 사욕(私欲)이 만 갈래로 일어나서 불이 아니더라도 뜨겁고 얼음이 아니더라도 찰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천지의 자리가 바뀌어 삼강(三綱)이 무너지고 구법(九法)이 실추될 것이다. 아, 아이들아, 깊이 생각하고 공경하라. 이제 경계의 글을 써서 감히 영대(靈臺)에 고하노라.

 

주자가 말하기를, “주선(周旋)이 규(規)에 맞는다는 것은 그 회전하는 곳이 규를 대고 그린 것처럼 둥글게 되고자 하는 것이요, 절선(折旋)이 구(矩)에 맞는다는 것은 그 꺾어 도는 곳이 구를 대고 그린 것처럼 모나게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의봉(蟻封)은 개미집이다. 옛말에 ‘말을 타고 의봉 사이로 굽어서 돌아갔다.’ 하니, 이것은 의봉 사이의 골목길이 구부러지고 좁아 말을 타고 그 사이를 구부러져 돌아가면서도 말 달리는 절도를 잃지 않은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입을 다물기를 병처럼 하라는 것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요, 뜻을 방비하기를 성처럼 한다는 것은, 사악한 것이 마음속에 들어옴을 막는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경(敬)은 반드시 하나를 주장해야 한다. 처음에 한 개의 일이 있는데 또 한 개를 더하면 곧 둘이어서 두 개를 이루고, 본래 한 개가 있는데 또 두 개를 더하면 곧 셋이어서 세 개를 이룬다는 것이다. 잠깐 사이라는 것은 때를 가지고 말한 것이요,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난다는 것은 일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임천 오씨(臨川吳氏)는 말하기를, “〈경재잠(敬齋箴)〉은 모두 10장(章)으로 장마다 4구씩이다. 1장은 정(靜)이 어김없음을 말한 것이요, 2장은 동(動)이 어김없음을 말한 것이다. 3장은 표(表)의 바른 것을 말한 것이요, 4장은 이(裏)의 바른 것을 말한 것이다. 5장은 마음이 바르고 일에 통달함을 말한 것이요, 6장은 일을 하나만을 주장하되 마음에 근본을 둘 것을 말한 것이요, 7장은 앞의 6장을 총괄한 것이요, 8장은 마음이 옮겨 가는 병폐를 말한 것이요, 9장은 일을 하나만을 주장하지 못하는 병폐를 말한 것이다. 10장은 1편(篇)을 총결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경의 뜻은 여기에서 더 이상 더 설명할 것이 없으니, 성학에 뜻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되풀이해서 익혀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경재잠〉 제목 아래에 주자가 쓰기를,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가 남긴 뜻을 주워 모아 〈경재잠〉을 만들어 서재의 벽에 써 붙이고 자신을 경계하노라.” 하고, 또, “이 잠은 경의 조목으로, 그 설은 여러 경우에 해당됨이 있다.” 하였습니다. 신은 나름대로 각 경우의 설이 공부를 하는 데에 좋은 근거가 될 것이라 여겼는데, 금화인(金華人)인 노재(魯齋) 왕백(王柏)이 각 경우를 배열하여 이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이와 같이 명백하고 가지런하게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으니, 항상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고 생각하는 사이에 몸소 음미하고 깨닫고 살펴서 얻음이 있다면, 경이 성학의 시종이 된다고 하는 것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第十夙興夜寐箴圖

 

 

 

 

 

 

 

 

 

 

 

닭이 울어 깨어나면 이것저것 생각이 차차 일어나게 되니, 어찌 그동안에 고요하게 마음을 정돈하지 않겠는가. 때로는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고 때로는 새로 얻은 것을 생각해 내어 절차와 조리를 분명하게 알아 두라. 근본이 서게 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차리고 단정히 앉아 몸을 추스른다. 이 마음을 다잡아 마치 떠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하고, 엄숙하고 가지런하며 허명(虛明)하고 정일(靜一)하게 하라. 그러고는 책을 펴서 성현을 대하게 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顔子)와 증자(曾子)가 앞뒤에 있을 것이다. 성현의 말씀을 고분고분 공손히 듣고, 제자들이 문변(問辨)한 것을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잡으라. 일이 이르러 응하면 행위에서 증험이 되니, 환하게 밝은 하늘의 명(命)을 항상 주시하라. 일에 응하고 나면 곧 나는 예전과 같아질 것이니,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정신을 모으고 잡념을 버리라. 동(動)과 정(靜)이 순환할 때에 오직 마음이 이를 응시하여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서, 정신을 둘로 나누지 말고 셋으로도 나누지 말라. 글을 읽다가 여가를 틈타서 간간이 유영(游泳)을 하여 정신을 이완하고 정성(情性)을 휴양하라. 날이 저물면 피곤해져서 흐린 기운이 쉽게 타고 들어오니, 재계(齋戒)하고 정제하여 정신을 명랑하게 하라.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면 손발을 가지런히 하고 사유(思惟)를 하지 말아서 심신(心神)을 잠들게 하라. 야기(夜氣)로써 길러 나갈 것이니, 정(貞)하면 원(元)에 돌아온다. 생각을 여기에 두고 또 여기에 두어 밤낮으로 꾸준히 계속하라.

 

○ 위의 잠(箴)은 남당(南塘) 진무경(陳茂卿 이름은 백(柏))이 지어서 자신을 경계한 것입니다. 금화(金華) 왕노재(王魯齋)가 일찍이 태주(台州)의 상채서원(上蔡書院)에서 교육을 주관할 때 오로지 이 잠만 가르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외고 익혀서 실행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이제 삼가 노재의 〈경재잠도(敬齋箴圖)〉를 본떠서 이 그림을 만들어, 그의 그림과 상대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경재잠〉은 공부를 해야 할 경우를 많이 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공부해야 할 경우를 따라 배열하여 그림을 만들었고, 이 잠은 시간에 따라 공부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때를 따라 배열하여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무릇 도(道)란 일상생활에서 유행하여 어디를 가도 없는 곳이 없으므로 한 자리도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곳에선들 공부를 그만두겠으며, 잠시잠깐도 정지됨이 없으므로 어느 순간도 이치가 없는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사(子思)는 말하기를, “도란 잠깐 사이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떠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하고, 또, “은밀한 곳보다 잘 드러나는 곳이 없고, 세미(細微)한 곳보다 잘 나타나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번 정(靜)하고 한 번 동(動)함에 언제 어디서나 심성을 기르고 살펴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과연 이와 같이 하면 경우를 놓치지 아니하여 털끝만큼의 차질도 없을 것이요, 때를 잃지 아니하여 잠깐 사이도 끊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두 가지를 병진하면 성인이 되는 요령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 이상 다섯 그림은 심성(心性)에 근본을 둔 것인데, 요령은 일상생활에서 힘쓰고 경외(敬畏)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進聖學十圖箚 幷圖 a_029_19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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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中樞府事臣李滉。謹再拜上言。臣竊伏以道無形象。天無言語。自河洛圖書之出。聖人因作卦爻。而道始見於天下矣。然而道之浩浩。何處下手。古訓千萬。何所從入。聖學有大端。心法有至要。揭之以爲圖。指之以爲說。以示人入道之門。積德之基。斯亦後賢之所不得已而作也。而況人主一心。萬幾所由。百責所萃。衆欲互攻。群邪迭鑽。一有怠忽。而放縱繼之。則如山之崩。如海之蕩。誰得而禦之。古之聖帝明王。有憂於此。是以。兢兢業業。小心畏愼。日復一日。猶以爲未也。立師傅之官。列諫諍之職。前有疑後有丞。左有輔右有弼。在輿有旅賁之規。位宁有官師之典。倚几有訓誦之諫。居寢有暬御之箴。臨事有瞽史之導。宴居有工師之誦。以至盤盂,几杖,刀劍,戶牖。凡目之所寓。身之所處。無不有銘有戒。其所以維持此心。防範此身者。若是其至矣。故德日新而業日廣。無纖過而有鴻號矣。後世人主。受天命而履天位。其責任之至重至大爲如何。而所以自治之具。一無如此之嚴也。則其憪然自聖。傲然自肆於王公之上。億兆之戴。終歸於壞亂殄滅。亦何足怪哉。故于斯之時。爲人臣而欲引君當道者。固無所不用其心焉。若張九齡之進金鑑錄。宋璟之陳無逸圖。李德裕之獻丹扆六箴。眞德秀之上豳風七月圖之類。其愛君憂國拳拳之深衷。陳善納誨懇懇之至意。人君可不深念而敬服也哉。臣以至愚極陋。辜恩累朝。病廢田里。期與草木同腐。不意虛名誤達。召置講筵之重。震越惶恐。辭避無路。旣不免爲此叨冒。則是勸導聖學。輔養宸德。以期致於堯舜之隆。雖欲辭之以不敢。何可得也。顧臣學術荒疎。辭辯拙訥。加以賤疾連仍。入侍稀罕。冬寒以來。乃至全廢。臣罪當萬死。憂慄罔措。臣竊伏惟念當初上章論學之言。旣不足以感發天意。及後登對屢進之說。又不能以沃贊睿猷。微臣悃愊。不知所出。惟有昔之賢人君子。明聖學而得心法。有圖有說。以示人入道之門。積德之基者。見行於世。昭如日星。玆敢欲乞以是進陳於左右。以代古昔帝王工誦器銘之遺意。庶幾借重於旣往。而有益於將來。於是。謹就其中揀取其尤著者。得七焉。其心統性情。則因程圖。而附以臣作二小圖。其三者。圖雖臣作。而其文其旨。條目規畫。一述於前賢。而非臣創造。合之爲聖學十圖。每圖下。輒亦僭附謬說。謹以繕寫投進焉。第緣臣㥘寒纏疾之中。自力爲此。眼昏手顫。書未端楷。排行均字。竝無准式。如蒙勿卻。乞以此本。下諸經筵官。詳加訂論。改補差舛。更令善寫者精寫正本。付之該司。作爲御屛一坐。展之淸燕之所。或別作小樣一件粧貼爲帖。常置几案上。冀得於俯仰顧眄之頃。皆有所觀省警戒焉。則區區願忠之志。幸莫大焉。而其義意有所未盡者。臣請得而申言之。竊嘗聞之。孟子之言曰。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箕子之爲武王陳洪範也。又曰。思曰睿。睿作聖。夫心具於方寸。而至虛至靈。理著於圖書。而至顯至實。以至虛至靈之心。求至顯至實之理。宜無有不得者。則思而得之。睿而作聖。豈不足以有徵於今日乎。然而心之虛靈。若無以主宰。則事當前而不思。理之顯實。若無以照管。則目常接而不見。此又因圖致思之不可忽焉者然也。抑又聞之。孔子曰。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學也者。習其事而眞踐履之謂也。蓋聖門之學。不求諸心。則昏而無得。故必思以通其微。不習其事。則危而不安。故必學以踐其實。思與學。交相發而互相益也。伏願聖明深燭此理。先須立志。以爲舜何人也。予何人也。有爲者亦若是。奮然用力於二者之功。而持敬者。又所以兼思學。貫動靜。合內外。一顯微之道也。其爲之之法。必也存此心於齋莊靜一之中。窮此理於學問思辨之際。不睹不聞之前。所以戒懼者愈嚴愈敬。隱微幽獨之處。所以省察者愈精愈密。就一圖而思。則當專一於此圖。而如不知有他圖。就一事而習。則當專一於此事。而如不知有他事。朝焉夕焉而有常。今日明日而相續。或紬繹玩味於夜氣淸明之時。或體驗栽培於日用酬酢之際。其初猶未免或有掣肘矛盾之患。亦時有極辛苦不快活之病。此乃古人所謂將大進之幾。亦爲好消息之端。切毋因此而自沮。尤當自信而益勵。至於積眞之多。用力之久。自然心與理相涵。而不覺其融會貫通。習與事相熟。而漸見其坦泰安履。始者各專其一。今乃克恊于一。此實孟子所論深造自得之境。生則烏可已之驗。又從而俛焉孶孶。旣竭吾才。則顔子之心不違仁。而爲邦之業在其中。曾子之忠恕一貫。而傳道之責在其身。畏敬不離乎日用。而中和位育之功可致。德行不外乎彝倫。而天人合一之妙斯得矣。是其爲圖爲說。僅取敍陳於十幅紙上。思之習之。只做工程於平日燕處。而凝道作聖之要。端本出治之源。悉具於是。惟在天鑑留神加意。反復終始。勿以輕微而忽之。厭煩而置之。則宗社幸甚。臣民幸甚。臣不勝野人芹暴之誠。冒瀆宸嚴。輒以爲獻。惶懼屛息。取進止。

第一太極圖
無極而太極。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靜而生陰。靜極復動。一動一靜。互爲其根。分陰分陽。兩儀立焉。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氣順布。四時行焉。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五行之生也各一其性。無極之眞。二五之精。妙合而凝。乾道成男。坤道成女。二氣交感。化生萬物。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惟人也得其秀而最靈。形旣生矣。神發知矣。五性感動。而善惡分。萬事出矣。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四時合其序。鬼神合其吉凶。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又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大哉易也。斯其至矣。
朱子曰。圖說首言陰陽變化之原。其後卽以人所稟受明之。自惟人也得其秀而最靈。純粹至善之性也。是所謂太極也。形生神發。則陽動陰靜之爲也。五性感動。則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之性也。善惡分。則成男成女之象也。萬事出。則萬物化生之象也。至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立人極焉。則又有得乎太極之全體。而與天地混合無間矣。故下文又言天地日月四時鬼神四者無不合也。又曰。聖人不假修爲而自然也。未至此而修之。君子之所以吉也。不知此而悖之。小人之所以凶也。修之悖之。亦在乎敬肆之間而已矣。敬則欲寡而理明。寡之又寡。以至於無。則靜虛動直。而聖可學矣。
○右濂溪周子自作圖幷說。平巖葉氏謂此圖。卽繫辭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之義。而推明之。但易以卦爻言。圖以造化言。朱子謂此是道理大頭腦處。又以爲百世道術淵源。今玆首揭此圖。亦猶近思錄以此說爲首之意。蓋學聖人者。求端自此。而用力於小大學之類。及其收功之日。而遡極一源。則所謂窮理盡性。而至於命。所謂窮神知化。德之盛者也。

第二西銘圖
乾稱父。坤稱母。予玆藐焉。乃混然中處。故天地之塞。吾其體。天地之帥。吾其性。民吾同胞。物吾與也。大君者。吾父母宗子。其大臣。宗子之家相也。尊高年。所以長其長。慈孤弱。所以幼其幼。聖其合德。賢其秀也。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于時保之。子之翼也。樂且不憂。純乎孝者也。違曰悖德。害仁曰賊。濟惡者。不才。其踐形。惟肖者也。知化則善述其事。窮神則善繼其志。不愧屋漏爲無忝。存心養性爲匪懈。惡旨酒。崇伯子之顧養。育英才。穎封人之錫類。不弛勞而底豫。舜其功也。無所逃而待烹。申生其恭也。體其受而歸全者。參乎。勇於從而順令者。伯奇也。富貴福澤。將厚吾之生也。貧賤憂戚。庸玉女于成也。存吾順事。沒吾寧也。
朱子曰。西銘。程子以爲明理一而分殊。蓋以乾爲父。坤爲母。有生之類無物不然。所謂理一也。而人物之生。血脈之屬。各親其親。各子其子。則其分亦安得而不殊哉。一統而萬殊。則雖天下一家。中國一人。而不流於兼愛之蔽。萬殊而一貫。則雖親疎異情。貴賤異等。而不梏於爲我之私。此西銘之大旨也。觀其推親親之厚。以大無我之公。因事親之誠。以明事天之道。蓋無適而非所謂分立而推理一也。又曰。銘前一段如棊盤。後一段如人下棊。
○龜山楊氏曰。西銘。理一而分殊。知其理一。所以爲仁。知其分殊。所以爲義。猶孟子言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其分不同。故所施不能無差等耳。○雙峯饒氏曰。西銘前一節。明人爲天地之子。後一節。言人事天地。當如子之事父母也。
○右銘。橫渠張子所作。初名訂頑。程子改之爲西銘。林隱程氏作此圖。蓋聖學在於求仁。須深體此意。方見得與天地萬物爲一體。眞實如此處。爲仁之功。始親切有味。免於莽蕩無交涉之患。又無認物爲己之病。而心德全矣。故程子曰。西銘意極完備。乃仁之體也。又曰。充得盡時聖人也。

第三小學圖
元亨利貞。天道之常。仁義禮智。人性之綱。凡此厥初。無有不善。藹然四端。隨感而見。愛親敬兄。忠君弟長。是曰秉彝。有順無彊。惟聖性者。浩浩其天。不加毫末。萬善足焉。衆人蚩蚩。物欲交蔽。乃頹其綱。安此暴棄。惟聖斯惻。建學立師。以培其根。以達其支。小學之方。灑掃應對。入孝出恭。動罔或悖。行有餘力。誦詩讀書。詠歌舞蹈。思罔或逾。窮理修身。斯學之大。明命赫然。罔有內外。德崇業廣。乃復其初。昔非不足。今豈有餘。世遠人亡。經殘敎弛。蒙養弗端。長益浮靡。鄕無善俗。世乏良材。利欲紛拏。異言喧豗。幸玆秉彝。極天罔墜。爰輯舊聞。庶覺來裔。嗟嗟小子。敬受此書。匪我言耄。惟聖之謨。
或問。子方將語人以大學之道。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何也。朱子曰。學之大小。固有不同。然其爲道則一而已。是以。方其幼也。不習之於小學。則無以收其放心。養其德性。而爲大學之基本。及其長也。不進之於大學。則無以察夫義理。措諸事業。而收小學之成功。今使幼學之士。必先有以自盡乎灑掃應對進退之間。禮樂射御書數之習。俟其旣長。而後進乎明德新民。以止於至善。是乃次第之當然。又何爲不可哉。曰。若其年之旣長。而不及乎此者。則如之何。曰。是其歲月之已逝。固不可追。其功夫之次第條目。豈遂不可得而復補耶。吾聞敬之一字。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爲小學者不由乎此。固無以涵養本源。而謹夫灑掃應對進退之節與夫六藝之敎。爲大學者不由乎此。亦無以開發聰明。進德修業。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不幸過時而後學者。誠能用力於此。以進乎大。而不害兼補乎其小。則其所以進者。將不患其無本而不能以自達矣。
○右小學。古無圖。臣謹依本書目錄爲此圖。以對大學之圖。又引朱子大學或問通論大小之說。以見二者用功之挭槩。蓋小學,大學。相待而成。所以一而二。二而一者也。故或問得以通論。而於此兩圖。可以兼收相備云。

第四大學圖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修。身修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爲本。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
或曰。敬若何以用力耶。朱子曰。程子嘗以主一無適言之。嘗以整齊嚴肅言之。門人謝氏之說。則有所謂常惺惺法者焉。尹氏之說。則有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云云。敬者。一心之主宰。而萬事之本根也。知其所以用力之方。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知小學之賴此以始。則夫大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終者。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蓋此心旣立。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則所謂修己以安百姓。篤恭而天下平。是皆未始一日而離乎敬也。然則敬之一字。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右孔氏遺書之首章。國初。臣權近作此圖。章下所引或問通論大小學之義。說見小學圖下。然非但二說當通看。幷與上下八圖。皆當通此二圖而看。蓋上二圖。是求端擴充體天盡道極致之處。爲小學大學之標準本原。下六圖。是明善誠身崇德廣業用力之處。爲小學大學之田地事功。而敬者。又徹上徹下。著工收效。皆當從事而勿失者也。故朱子之說如彼。而今玆十圖。皆以敬爲主焉。太極圖說。言靜不言敬。朱子註中。言敬以補之。

第五白鹿洞規圖
熹竊觀古昔聖賢所以敎人爲學之意。莫非講明義理。以修其身。然後推以及人。非徒欲其務記覽爲詞章。以釣聲名取利祿而已。今之爲學者。旣反是矣。然聖賢所以敎人之法。具存於經。有志之士固當熟讀深思而問辨之。苟知理之當然。而責其身以必然。則夫規矩禁防之具。豈待他人設之。而後有所持循哉。近世於學有規。其待學者爲已淺矣。而其爲法。又未必古人之意也。故今不復施於此堂。而特取凡聖賢所以敎人爲學之大端。條列如右。而揭之楣間。諸君相與講明遵守。而責之於身焉。則夫思慮云爲之際。其所以戒謹恐懼者。必有嚴於彼者矣。其有不然。而或出於禁防之外。則彼所謂規者。必將取之。固不得而略也。諸君其念之哉。
○右規。朱子所作以揭示白鹿洞書院學者。洞在南康軍北匡廬山之南。有唐李渤隱于此。養白鹿以自隨。因名其洞。南唐建書院。號爲國庠。學徒常數百人。宋太宗頒書籍。官洞主以寵勸之。中間蕪廢。朱子知南康軍。請于朝重建。聚徒設規。倡明道學。書院之敎。遂盛于天下。臣今謹依規文本目。作此圖以便觀省。蓋唐虞之敎在五品。三代之學。皆所以明人倫。故規之窮理力行。皆本於五倫。且帝王之學。其規矩禁防之具。雖與凡學者有不能盡同者。然本之彝倫。而窮理力行。以求得夫心法切要處。未嘗不同也。故幷獻是圖。以備朝夕暬御之箴。
○以上五圖。本於天道。而功在明人倫懋德業。

第六心統性情圖
林隱程氏曰。所謂心統性情者。言人稟五行之秀以生。於其秀而五性具焉。於其動而七情出焉。凡所以統會其性情者則心也。故其心寂然不動爲性。心之體也。感而遂通爲情。心之用也。張子曰。心統性情。斯言當矣。心統性。故仁義禮智爲性。而又有言仁義之心者。心統情。故惻隱羞惡辭讓是非爲情。而又有言惻隱之心。羞惡辭讓是非之心者。心不統性。則無以致其未發之中。而性易鑿。心不統情。則無以致其中節之和。而情易蕩。學者知此。必先正其心。以養其性。而約其情。則學之爲道得矣。臣謹按程子好學論。約其情在正心養性之前。此反居後者。此以心統性情言故也。然究其理而言之。當以程論爲順。○圖有未穩處。稍有更定。
○右三圖。上一圖。林隱程氏作。自有其說矣。其中下二圖。臣妄竊推原聖賢立言垂敎之意而作。其中圖者。就氣稟中指出本然之性不雜乎氣稟而爲言。子思所謂天命之性。孟子所謂性善之性。程子所謂卽理之性。張子所謂天地之性。是也。其言性旣如此。故其發而爲情。亦皆指其善者而言。如子思所謂中節之情。孟子所謂四端之情。程子所謂何得以不善名之之情。朱子所謂從性中流出。元無不善之情。是也。其下圖者。以理與氣合而言之。孔子所謂相近之性。程子所謂性卽氣氣卽性之性。張子所謂氣質之性。朱子所謂雖在氣中。氣自氣性自性。不相夾雜之性。是也。其言性旣如此。故其發而爲情。亦以理氣之相須或相害處言。如四端之情。理發而氣隨之。自純善無惡。必理發未遂。而掩於氣。然後流爲不善。七者之情。氣發而理乘之。亦無有不善。若氣發不中。而滅其理。則放而爲惡也。夫如是。故程夫子之言曰。論性不論氣不備。論氣不論性不明。二之則不是。然則孟子,子思所以只指理言者。非不備也。以其幷氣而言。則無以見性之本善故爾。此中圖之意也。要之。兼理氣統性情者。心也。而性發爲情之際。乃一心之幾微。萬化之樞要。善惡之所由分也。學者誠能一於持敬。不昧理欲。而尤致謹於此。未發而存養之功深。已發而省察之習熟。眞積力久而不已焉。則所謂精一執中之聖學。存體應用之心法。皆可不待外求而得之於此矣。

第七仁說圖
朱子曰。仁者。天地生物之心。而人之所得以爲心。未發之前。四德具焉。而惟仁則包乎四者。是以。涵育渾全。無所不統。所謂生之性愛之理。仁之體也。已發之際。四端著焉。而惟惻隱則貫乎四端。是以。周流貫徹。無所不通。所謂性之情愛之發。仁之用也。專言則未發是體。已發是用。偏言則仁是體。惻隱是用。公者。所以體仁。猶言克己復禮爲仁也。蓋公則仁。仁則愛。孝悌其用也。而恕。其施也。知覺。乃知之事。
又曰。天地之心。其德有四。曰元亨利貞。而元無不統。其運行焉。則爲春夏秋冬之序。而春生之氣。無所不通。故人之爲心。其德亦有四。曰仁義禮智。而仁無不包。其發用焉。則爲愛恭宜別之情。而惻隱之心。無所不貫。蓋仁之爲道。乃天地生物之心。卽物而在情之未發。而此體已具。情之旣發。而其用不窮。誠能體而存之。則衆善之源。百行之本。莫不在是。此孔門之敎。所以必使學者汲汲於求仁也。其言有曰。克己復禮爲仁。言能克去己私。復乎天理。則此心之體無不在。而此心之用。無不行也。又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則亦所以存此心也。又曰。事親孝。事兄悌。及物恕。則亦所以行此心也。此心。何心也。在天地則坱然生物之心。在人則溫然愛人利物之心。包四德而貫四端者也。或曰。若子之言。程子所謂愛情仁性。不可以愛名仁者非歟。曰。不然。程子之所謂。以愛之發而名仁者也。吾之所論。以愛之理而名仁者也。蓋所謂情性者。雖其分域之不同。然其脈絡之通。各有攸屬者。則曷嘗離絶而不相管哉。吾方病夫學者誦程子之言。而不求其意。遂至於判然離愛而言仁。故特論此。以發明其遺意。子以爲異乎程子之說。不亦誤哉。曰。程氏之徒。有以萬物與我爲一爲仁之體者。亦有以心有知覺釋仁之名者。皆非歟。曰。謂物我爲一者。可以見仁之無不愛。而非仁之所以爲體之眞也。謂心有知覺者。可以見仁之包乎智矣。而非仁之所以得名之實也。觀孔子答子貢博施濟衆之問。與程子所謂覺不可以訓仁。則可見矣。子安得以此而論仁哉。
○右仁說。朱子所述。幷自作圖。發明仁道。無復餘蘊。大學傳曰。爲人君。止於仁。今欲求古昔帝王傳心體仁之妙。盍於此盡意焉。

第八心學圖
林隱程氏 復心 曰。赤子心是人欲未汨之良心。人心卽覺於欲者。大人心是義理具足之本心。道心卽覺於義理者。此非有兩樣心。實以生於形氣。則皆不能無人心。原於性命。則所以爲道心。自精一擇執以下。無非所以遏人欲而存天理之工夫也。愼獨以下。是遏人欲處工夫。必至於不動心。則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可以見其道明德立矣。戒懼以下。是存天理處工夫。必至於從心。則心卽體欲卽用。體卽道用卽義。聲爲律而身爲度。可以見不思而得。不勉而中矣。要之。用工之要。俱不離乎一敬。蓋心者。一身之主宰。而敬又一心之主宰也。學者熟究於主一無適之說。整齊嚴肅之說。與夫其心收斂常惺惺之說。則其爲工夫也盡。而優入於聖域。亦不難矣。
○右林隱程氏掇取聖賢論心學名言爲是圖。分類對置。多而不厭。以見聖學心法亦非一端。皆不可不用功力云爾。其從上排下。只以淺深生熟之大槩言之有如此者。非謂其工程節次。如致知誠意正心修身之有先後也。或疑旣云以大槩敍之。求放心是用工初頭事。不當在於心在之後。臣竊以爲求放心。淺言之。則固爲第一下手著脚處。就其深而極言之。瞬息之頃。一念少差亦是放。顔子猶不能無違於三月之後。只不能無違。斯涉於放。惟是顔子。纔差失。便能知之。纔知之。便不復萌作。亦爲求放心之類也。故程圖之敍如此。程氏字子見。新安人。隱居不仕。行義甚備。白首窮經。深有所得。著四書章圖三卷。元仁宗朝。以薦召至。將用之。子見不願。卽以爲鄕郡博士。致仕而歸。其爲人如此。豈無所見而妄作耶。

第九敬齋箴圖
正其衣冠。尊其瞻視。潛心以居。對越上帝。足容必重。手容必恭。擇地而蹈。折旋蟻封。出門如賓。承事如祭。戰戰兢兢。罔敢或易。守口‚甁。防意如城。洞洞屬屬。罔敢或輕。不東以西。不南以北。當事而存。靡他其適。弗貳以二。弗參以三。惟心惟一。萬變是監。從事於斯。是曰持敬。動靜弗違。表裏交正。須臾有間。私欲萬端。不火而熱。不氷而寒。毫釐有差。天壤易處。三綱旣淪。九法亦斁。於乎小子。念哉敬哉。墨卿司戒。敢告靈臺。
朱子曰。周旋中規。其回轉處欲其圓如中規也。折旋中矩。其橫轉處欲其方如中矩也。蟻封。蟻垤也。古語云。乘馬折旋於蟻封之間。言蟻封之間。巷路屈曲狹小。而能乘馬折旋於其間。不失其馳驟之節。所以爲難也。守口如甁。不妄出也。防意如城。閑邪之入也。又云。敬須主一。初來有个事。又添一个。便是來貳。他成兩个。元有一个。又添兩个。便是參。他成三个。須臾之間。以時言。毫釐之差。以事言。○臨川吳氏曰。箴凡十章。章四句。一言靜無違。二言動無違。三言表之正。四言裏之正。五言心之正而達於事。六言事之主一而本於心。七總前六章。八言心不能無適之病。九言事不能主一之病。十總結一篇。○西山眞氏曰。敬之爲義。至是無復餘蘊。有志於聖學者。宜熟復之。
○右箴題下。朱子自敍曰。讀張敬夫主一箴。掇其遺意。作敬齋箴。書齋壁以自警云。又曰。此是敬之目。說有許多地頭去處。臣竊謂地頭之說。於做工好有據依。而金華王魯齋 排列地頭作此圖。明白整齊。皆有下落又如此。常宜體玩警省於日用之際心目之間。而有得焉。則敬爲聖學之始終。豈不信哉。

第十夙興夜寐箴圖
雞鳴而寤。思慮漸馳。盍於其間。澹以整之。或省舊愆。或紬新得。次第條理。瞭然默識。本旣立矣。昧爽乃興。盥櫛衣冠。端坐斂形。提掇此心。皦如出日。嚴肅整齊。虛明靜一。乃啓方冊。對越聖賢。夫子在坐。顔曾後先。聖師所言。親切敬聽。弟子問辨。反覆參訂。事至斯應。則驗于爲。明命赫然。常目在之。事應旣已。我則如故。方寸湛然。凝神息慮。動靜循環。惟心是監。靜存動察。勿貳勿參。讀書之餘。間以游泳。發舒精神。休養情性。日暮人倦。昏氣易乘。齋莊整齊。振拔精明。夜久斯寢。齊手斂足。不作思惟。心神歸宿。養以夜氣。貞則復元。念玆在玆。日夕乾乾。
○右箴。南塘陳茂卿 所作以自警者。金華王魯齋嘗主敎台州上蔡書院。專以是箴爲敎。使學者人人誦習服行。臣今謹倣魯齋敬齋箴圖。作此圖以與彼圖相對。蓋敬齋箴有許多用工地頭。故隨其地頭。而排列爲圖。此箴有許多用工時分。故隨其時分。而排列爲圖。夫道之流行於日用之間。無所適而不在。故無一席無理之地。何地而可輟工夫。無頃刻之或停。故無一息無理之時。何時而不用工夫。故子思子曰。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又曰。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愼其獨也。此一靜一動。隨處隨時。存養省察。交致其功之法也。果能如是。則不遺地頭。而無毫釐之差。不失時分。而無須臾之間。二者竝進。作聖之要。其在斯乎。
○以上五圖。原於心性。而要在勉日用崇敬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