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아직 그 달이다 (외1편)
이상국
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그립게 걸렸다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하여 거의 사십여년이나 애를 썼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
그늘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몸이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아내는 집이 좁으니 책을 버리자고 한다
그동안 집을 너무 믿었다
그들은 내가 갈 데가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옛 시인들은 아내를 버렸을 것이나
저 문자들의 경멸을 뒤집어쓰며
나는 나의 그늘을 버렸다
나도 한때는 꽃그늘에 앉아
서정시를 쓰기도 했으나
나의 시에는 먼 데가 없었다
이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머잖아 집은 나를 모른다 할 것이고
철쭉은 꽃을 버리더라도 마당을 지킬 것이다
언젠가 모르는 집에 말을 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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