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에 대한 기억/송종규
왔다가 사라진 손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손
영원히 오지 않을 손 적나라한 손
이렇게 따뜻한 손 이렇게 정직한 손
우주 밖으로 사라진 손 한 치의 적의도 없는 손
너는 안개처럼 다녀갔다
네 푸른 등 뒤로 나는 손을 흔들었지만 너는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가고 나서 나는 흐느껴 울었지만
너는 아마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낡은 공중전화 앞에서 수북한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구체적인 손 기막힌 손
이렇게 신파적인 손 이렇게 도도한 손
내 손바닥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손 이제는 가고
영원히 없는 손
너를 기다리는 것은
저녁의 악기가 탄성을 지르는 일
너를 기다린다는 것은 슬픔을 어깨에 떠메고 가는 일, 그러나
나는 너를 보내지 않았고 한순간
썰물 같은 세월이 흘러갔을 뿐이다
반짝이는 손 슬픈 손 사파이어 같은 손
늘 목마른 손
내 손바닥 안에는 너라는 우물이 살고 있다
—《문예바다》2016년 봄호
송종규 시인 / 1952년 경북 안동 출생. 1989년 《심상》으로 등단. 대구문학상, 대구시 문화상(문학 부문), 웹진 시인광장 시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고요한 입술』『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녹슨 방』『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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