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커피/김혜순

시치 2016. 4. 27. 23:55



커피/김혜순

 

 

 

눈을 뜬 채 한 번 더 뜨고 싶어

 

입 맞출수록 점점 더 열릴까

안에서부터 점점 벗을까

 

마실수록 젖은 몸이 마르는

마실수록 투명해지는

점점 가벼워지다가

지워지는

입맞춤

 

검은 물시계를 장착한 다음

초침으로 나를 열어봐요

 

환한 햇빛을 구해다가

눈이 멀 만큼 때린 다음

자백하라 자백하라 침 뱉고

죄수들이 우글대는 감방에 밀봉한 다음

검은 알갱이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부수어

일용할 입맞춤

 

신을 흉내 내려고

잔에 담긴 눈 코 입을 은스푼으로 저어보는

 

내 안으로 우산을 접고 들어오는 사람

 

나에겐 검은 숨결이 좀 필요해

검은 것으로 검은 것을 좀 속여야 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검은 물에 머리를 감는 한 사람

 

 

                       —《포지션》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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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1979년 《문학과 사회》등단. 시집『한 잔의 붉은 거울』『당신의 첫』『슬픔치약 거울크림』『피어라 돼지』, 시론집『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등이 있음.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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