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김혜순
눈을 뜬 채 한 번 더 뜨고 싶어
입 맞출수록 점점 더 열릴까
안에서부터 점점 벗을까
마실수록 젖은 몸이 마르는
마실수록 투명해지는
점점 가벼워지다가
지워지는
입맞춤
검은 물시계를 장착한 다음
초침으로 나를 열어봐요
환한 햇빛을 구해다가
눈이 멀 만큼 때린 다음
자백하라 자백하라 침 뱉고
죄수들이 우글대는 감방에 밀봉한 다음
검은 알갱이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부수어
일용할 입맞춤
신을 흉내 내려고
잔에 담긴 눈 코 입을 은스푼으로 저어보는
내 안으로 우산을 접고 들어오는 사람
나에겐 검은 숨결이 좀 필요해
검은 것으로 검은 것을 좀 속여야 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검은 물에 머리를 감는 한 사람
—《포지션》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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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1979년 《문학과 사회》등단. 시집『한 잔의 붉은 거울』『당신의 첫』『슬픔치약 거울크림』『피어라 돼지』, 시론집『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등이 있음.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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