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울부짖는 서정/송찬호

시치 2015. 9. 16. 00:32

 

울부짖는 서정/송찬호

 

 

한밤중 그들이 들이닥쳐

울부짖는 서정을 끌고

.

밤안개 술렁이는

벌판으로 갔다

그들은 다짜고짜 그에게

시의 구덩이를 파라고 했다

 

멀리서 사나운 개들이

퉁구스어로 짖어대는 국경의 밤이었다

전에도 그는 국경을 넘다

밀입국자로 잡힌 적 있었다

처형을 기다리며

흰 바람벽에 세워져 있는 걸 보고

이게 서정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용케도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파묻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나무 속에서도

벽 너머에서도

감자자루 속에서도 죽지 않고

이곳으로 넘어와

끊임없이 초록으로 중얼거리니까

 

 

 

                        —《22세기시인》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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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