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2014 미당문학상 수상작>

시치 2014. 9. 24. 01:22

<2014 미당문학상 수상작>

 

심장을 켜는 사람 외 2편 / 나희덕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지요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다해 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통증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펄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

웅크린 조약돌들의 깨어남,

몸을 휘돌아나가는 피와 강물,

걸음을 멈추는 구두들,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바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기적소리,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허공에는 어스름이 검은 소금처럼 녹아내리고

 

이제 심장들을 담아 돌아가야겠어요

오늘의 심장이 다 마르기 전에

 

 

                —《시산맥》 2014년 여름호

 

 

라듐처럼

 

 

 

어떤 먼 것

어떤 낯선 것

어떤 무서운 것에 속한 아름다움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강물과 격랑이 필요하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출입을 금합니다

 

돌을 외투 주머니에 채우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처럼

 

말의 원석에서 떨어져내리는

글자들처럼

 

식탁 아래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처럼

 

부스러기만으로 배가 부르다고 했던

가난한 가나안 여자처럼

 

허기 없는 영혼처럼

불꽃 없는 빛처럼

 

마담 퀴리가 처음으로 추출해낸

0.1g의 라듐처럼

 

희고 빛나는 것들

그러나 검게 산화되기 쉬운 것들

 

 

                        —《발견》2014년 가을호

 

 

한 새들

 

   

                                                                          청포도주 얼룩과 토사물들이

                                                            키와 갈고리에서 흩어지며 날 씻었다네

                                                                         —아르튀르 랭보, 「취한 배」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 새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

 

비둘기의 발걸음으로 다가와

까마귀의 날갯짓으로 끝이 나는 사건들

새의 떼죽음도 그런 사건들 중 하나

출근길의 교통사고처럼 곧 잊혀지고 마는 일

 

점호도 없이 일제히 날아오르던

새들은 어디로 갔나

곡식알처럼 흩뿌려져도 부딪치는 법이 없던 새들은

 

마가목 열매 때문이었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발효된 열매,

붉고 둥근 칼집 속의 칼날이 새들의 영혼을 쪼개버렸다

 

천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앞에

기우뚱거리는 날개를 미처 접지 못한 새들

 

자라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버린

하늘의 익사체들,

새들에게 치사량의 알콜은 얼마쯤 될까

 

취한 새들은 곤두박질쳐서

벽에, 유리창에, 전선에, 다른 새들의 몸에 부딪쳤을 것이다

찢어진 북소리처럼 날갯소리 들렸을 것이다

 

그 순간 새들은

하늘의 착란을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땅에 뒹구는 마가목 열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물에 취한 배도 있으니

포도주의 얼룩으로만 씻겨지는 몸도 있으니

 

  

                       —《포지션》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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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