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스크랩] 2015 미당문학상 후보작 (2)/ 신용목, 유홍준, 이수명

시치 2015. 8. 13. 01:00

산책자 보고서

 

   신용목

 

 

 

어쩌면 허기진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지붕의 망치질 소리로 비가 온다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

 

이제는 그만 굴러 떨어지고픈 그림자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비탈의 오래된 집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속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 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는 몸의 느낌이 있다

 

나의 몸은 비를 대신하여 집 안에 고여 있다

 

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한사코 지붕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지운다 바닥에 누운 나는 한사코 바닥에 차는 빗소리를 지운다
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온통 허기일 뿐

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산책은 자전의 느낌이다 하루를 대신하여 라면을 먹고 나는 나를 지웠다
시간의 반대편으로 뻗는 그림자로부터 간신히 몰락을 지우는 망치질까지

 

나는 모든 말의 느낌으로 살아 있다

 

 

               —《애지》2014년 겨울호

 

 

잉어

 

   유홍준

 

 

 

너의 입속에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잉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

 

물고기에게 지느러미가 달린 이유는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았기 때문

 

돌 위에 새겨진 잉어

탁본 떠서

너를 잊을 때까지 바라본다 겨울 내도록 바라본다

 

너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는 잉어의 눈동자는 동그랗다

       

                —《작가세계》2014년 여름호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이수명

 

 

 

오늘 하나씩 천천히 불 켜지는 거리를 걸어보지 않겠니

하늘을 위로 띄워보지 않겠니

부풀어 오르는 셔츠에 재빨리

우리는 죽었다고 쓰지 않겠니

 

풍경을 어디다 두었지 뭐든 뜻대로 되지 않아

풍경은 우리의 위치에 우리는 풍경의 위치에 놓인다.

너와 나의 전신이 놓인다.

 

날아다니는 서로의 곱슬머리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한 마디의 말도 터져 나오지는 않을 때

하나씩 천천히 불을 켜지 않겠니

 

나란히 앉고 싶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을

 

흉내내고 싶어

오늘을 다 말해버린다. 오늘로 간다.

오늘로 가자

 

오늘이여 영 가버리자

 

너를

어디에 묻었나

 

어두운 낙서를 같이 하지 않겠니

빠르게 떠내려가는 하늘 아래

방향을 바꿀 줄 모르는

아무 것도 모르는 티셔츠를 한 장씩 입고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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