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시코쿠 /황병승

시치 2014. 8. 8. 00:54

   시코쿠 /황병승

 

(달이 동네 개들을 다 잡아 먹었구나 쿵쾅쾅 천장을 달리며 외로운 숙녀 시코쿠)

쉽게 말하거나 어렵게 말하거나 모두 진실이었으므로
똑같이 나의 고백은 아름답다

6은 9도 된다

잊지 못할 이여 가구처럼 있다가 노루처럼 튀어 오르는
가지도 오지도 않는 당신이여 속삭이는 두려움이여

(너무도 키스를 원하는데 프랑스에서 프렌치 키스를 잔뜩 배웠는데 아무도 입술이 없구나 호주에서 호치키스나 배울 걸 수챗구멍에 대고 외로운 신사숙녀 시코쿠)

말할 때 코를 만지는 자는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자요 무릎을 긁는 자는 익살꾼이며
상대의 얼굴을 꿰뚫는 자는 초월한 자이다, 라고
꿈속의 소년이 말했다

새 이름을 지어주러 왔니
코를 만지며 내가 물었다

대답대신 소년이 건네는 한 장의 사진
시코쿠가 기차에 오르고
잘 가 나를 잊지 말아라
시코쿠였던 자가 역에 남아 손을 흔든다

죽을 때까지 어떠한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으리
속삭이는 두려움이여 나를 풍차의 나라로 혹은 정지

(일 년 열두 달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금새 밋밋해지던 나의 목소리여 손바닥을 칼로 푹 찌르며 외로운 신사 시코쿠 시코쿠)

당신만 죽어 없어진다면 나도 내 자리로 간다

그러나 세계를 이해한다는 건 애초부터 그른 일 사로잡히다, 라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저씨의 세계를 내어주세요
꿈속의 소년이 돌아섰다

무시무시한 이름인 걸
무릎을 긁으며 내가 말했다

시코쿠가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시코쿠였던 자가 도망친다

제발 좀 나를 무시하라!

(달이 한 뭉치의 구름으로 피 묻은 얼굴을 닦아내고 컹 컹 컹 사납게 짖어대는 밤! 치마를 갈가리 찢으며 외로운 여장남자 시코쿠 시코쿠)

감추거나 혹은 드러내거나 6은 9도 되어야했으므로
나의 옛 이름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웠다

잊지 못할 이여 가구처럼 있다가 노루처럼 튀어 오르는
가지도 오지도 않는 당신이여
속삭이는 두려움이여 나를 풍차의 나라로 혹은 정지.

 

* 황병승 시인은 2003년 <<파라21>>을 통해 등단하였다.

(200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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