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저녁의 운명/이병률

시치 2013. 10. 16. 23:15

저녁의 운명/이병률

 

 

저녁 어스름
축대 밑으로 늘어진 꽃가지를 꺾는 저이

저 꽃을 꺾어 어디로 가려는 걸까

멍을 찾아가는 걸까
열을 찾아가는 걸까
꽃을 꺾어 든 한 팔은 가만히 두고
나머지 한 팔을 저으며 가는 저이는

다만 기척 때문이었을까
꽃을 꺾은 것이
그것도 흰 꽃인 것이

자신이 여기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소리치려는 것일까
높은 축대를 넘겠다며 가늠을 하는 것일까

나는 죽을 것처럼 휘몰아치는
이 저녁의 의문을
어디 심을 데 없어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고개를 숙이고 참으며 걸으려 한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고 할 때나
아름다움을 받아내려고 할 때의 자세처럼
분질러 꺾을 수만 있다면
나를 한 손에 들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운명이라도 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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