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2012년 하반기 신인상 당선작
심사위원 _ 문효치, 강희근, 김수복
병뚜껑 (외 2편)
진형란
코카콜라 왕국의 왕자, 실크블라우스처럼 매끈한 살을
움켜쥐고 있어요
왕국의 뜨거운 입술들
저 맛에 누군가 비틀거리겠죠
솔기 없는 몸매에 야심만만한 땀 좀 보아
그들의 탯줄을 세상 밖으로 걸고 싶어해요
검은 맥박이 숨어서 헐떡이고 있어요
주둥이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집중해야 해
빨래의 산문적 생애를 물고 있는 집게보다 더
손톱만 물어뜯지 말고 비명을 질러
바람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시체처럼 넘어지자
시간이 멈추었어요
입맛 다시는 원격 조정 신호가 들렸어요
우산을 펼칠 틈은 없었죠
톡 쏘는 애인처럼 잠시 내 것이었던 1그램 왕관
훌훌, 스스로 벗기 어려운
0.5mm 샤프심
세계는 하나의 동굴, 비명을 지르기에는 0.5mm 구멍이 너무 좁아요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당신은 아슬아슬 절벽 같은 남자 두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의 혀는 언제나 나를 지치게 하죠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이봐요, 다른 쌍둥이들을 넣어 줘요
당신은 동굴에 난 구멍을 나로 메웠어요 내 몸의 사슬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어요 감정마저 묶인 나는 당신의 포로, 0.5mm 땅과 0.5mm 하늘이 주어졌어요 힘을 모아 찍어내는 욕망의 발자국들은 100도의 뜨거운 노동처럼 언제나 똑같아요 화선지처럼 번지지 않고 입술처럼 부드러운 살갗이 단단하게 무너졌어요
호출하지 않는 그리움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 같아요 더 좋은 희망으로 발바닥 밑 나의 자리로 들어갔죠 낮에는 태양으로 대화를 부려내고 밤에는 조명이 낡은 소파처럼 외로움을 깎아내었어요 0.5mm 구멍 외에 빠져나갈 운명은 없어요 삶에서 진실이란 영점오 빼기 영점오, 죽음인가요 아니면 영점오 더하기 영점오 다시 태어남인가요
히틀러 컴퓨터
로그인한 신분증을 히틀러 컴퓨터가 검사하고 있다
할렐루야 나는 돈이 많아
이스라엘 출신에게는 자료를 팔지 않아
나는 호모 사피엔스요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안드로메다 외계인의 컴퓨터에 가서 입력해 봐
당신은 우리랑 프로그램이 달라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유전자를 주옵시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할 생물학적 알을 주옵시고
돌연변이로 복제할 수 있는 종의 이론을 창조해 주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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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와 진딧물의 인증서 암호를 내 딸에게 주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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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란 /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졸업. 주소 : 경남 진주시 신안동
——《미네르바》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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