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 땀냄새

경불1기 中國聖地巡禮(15)-北京(베이징)-끝.

시치 2011. 4. 28. 02:12

경불1기 中國聖地巡禮(15)-北京(베이징)-

 중국의 역사, 북경의 역사

 

중국 어제와 오늘

중국은 세계 4대문명 발생국의 하나로 5천년 이상의 문자로 기록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는 고대사회, 근대사회를 거쳐 1949년에 사회주의 국가로 진입하였다.

중국의 고대왕조는 원시사회에 이어 하-은-주(서주-동주)-진(秦)-한-삼국(위,촉,오)-진(晋)-5호 16국-남북조-수-당-5대 10국-송-요-금-원-명-청의 순서로 나타낼 수 있다.

근대에 역사적인 사건들로는 1840년 아편전쟁, 1851년-1864년 태평천국운동, 1894년 청일전쟁, 1911년 신해혁명 등이 있다.

 

북경의 역사

2,000년 훨씬 이전에 지금의 베이징 부근은 이미 중국 동북부 국경지대의 중요한 군사·교역 중심지였다.

원대(元代:1271~1368)인 1267년 이곳에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신도시가 건설되어 행정수도가 되었다.

명(明:1368~1644)의 제1·2대 황제 재위기간에는 난징[南京]을 수도로 삼았으며, 전대의 수도였던 대도는 베이핑[北平]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명의 제3대 황제는 베이핑을 다시 수도로 삼고 베이징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후 베이징은 국민정부가 난징을 다시 수도로 삼았던 짧은 기간(1928~49,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충칭[重慶]으로 천도)을 빼고는 계속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면적 17,900㎢, 인구는 2006년 기준, 1500만명으로 추정되고있다.

중국에 도착하여 처음 접하는 풍경은 길가에 늘어선 버드나무의 행렬이다. 한국의 가로수와는 달리 계속하여 숲을 이루고 있다.

얼핏 들은것도 같은 수 양제의 버드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수양버들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이 버들이 수양버들은 아닌것 같다.

 

수양제는 천하를 통일하고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대 운하를 조성했다.

그리고 강변에는 넓은 육로를 내고 길 양쪽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버드나무의 행렬에 중국인들은 감동을 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 되는 위대한 상징물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그 버드나무를 보면서 황제의 권위와 위신력을 실감했고 두려워 했다.

중국인들은 황제가 심은 나무를 수양버들이라고 불렀다. 수나라 양제가 심은 버드나무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북방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황하강과 중국의 남방을 휘감아 내리는 양자강의 문화는 서로 다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질 수 없는 강한 적개심과 견제심리가 작용하고 이질감으로 서로가 융합될 수 없는 종족들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두 강변의 종족끼리 번갈아가며 역사를 장악하는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했던 것이다.

양자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의 토박이들이다.

이들은 한족(漢族)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스스로 황하강 유역이나 그 이북에 있는 종족들을 오랑캐라고 불러 경계했었으나,

중국 역사의 반절은 이들에 의해 지배 당했다.

 

중국 토박이들은 양자강 상류에서 배를 띄우고 오리 몇 마리를 몰고 내려간다.

그 오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까고 그 새끼가 다시 알을 낳으면서 양자강 하류에 도달할 때쯤이면 오리 떼가 불어나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다.

그것을 팔아 나귀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 가는데 몇 년씩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느긋한 성격을 지니고 살았다.

그중국인의 무덤                                                                    그런데 수나라 양제가 황하강과 양자강 사이를 잇는 대운하를 만든 것이다.

                                                         그 길이가 무려 1780km에 이르는 거리를 수로로 만들고 배를 띄우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역사를 바꾼 기적의 대운하가 되었다.

 

거대한 중원 영토를 통일한 수나라는 백성을 관리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거대한 공사를 벌이고 백성들로 하여금 울력을 하게 함으로써 관리하는 데 매우 편리했다.

뿐만 아니라 남북 간의 산물을 유통시킴으로써 두 강 유역의 사람들에게 생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 간의 갈등을 해소했던 것이다.

황하 유역의 특산물이 양자강 유역으로 실려 가고, 양자강의 산물이 황하강으로 실려 가는 동안 두 지역의 이질감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가 형성, 유통되었다. 심지어는 인적 교류와 이동 인구까지 생겼다.

 

2008 올림픽 주경기장 하늘에선 鳶놀이가 한창이다

근대화의 초석 올림픽

한국의 올림픽은 1988년에 개최되었다. 일본의 동경올림픽 개최후 20년, 우리는 일본의 경제수준에 그만큼 뒤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08년, 중국 북경올림픽이 개최되었고 그만큼 뒤진 중국이 꼭 그만큼의 차이를 두고 따라오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1990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꼬리에 꼬리를 문 연의 행렬이 이채롭다. 이 곳에서는 사시사철 연날리기가 이뤄진단다

90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2008 올림픽 주경기장

올림픽 주경기장의 야경

변박(손뼉 칠 변, 칠 박)-박수

박태환의 금메달 텃밭, 울타리 넘어 새파랗게 보이는 건물이 올림픽 수영장이다

보조경기장에서 야간조명을 이용하여 축구를 하는 시민들, 밤낮없이 아무리 뛰어도 공한증은 계속된다.

손에 손잡고, 우리는...

북경의 일출

호텔 창문 안에 들어온 북경

석가장의 리무진

여행 첫날 밤을 석가장에서 자고 나니 호텔앞에 대형 리무진이 정박중이다.

바라밀의 영구차보다 더 큰 어마어마한 길이에 놀라 살펴보니 이미 열반에 드셨다. 

한산한 거리풍경

북경 북참, 驛舍이다

저별은 누구의 별이랍니까?

수로부인이 손가락으로 별을 가르킵니다.

별은 아스라이 멀지만 나는 그 별을 다 따다 줄 것 같았습니다.

 

동해 바닷가 잡고가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이몸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면

천길 벼랑위에 한 떨기 철죽꽃을

        아름 따다 그대에게 바치오리다        

-헌화가에서

짝퉁의 나라답게 이 어마어마한 나무는 짝퉁이란다.

 

茶전시장 앞 대로 위를 가로지르는 크고 정교한 목조 건축물이 있다.  -이건 진짜란다

대국의 식당.

모처럼 맛보는 믹셔커피가 알고보니 한국인 관광객이 가져온 국산이란다.

종업원의 실수로 서빙이 잘 못 됐다는데...암튼 먹고 볼 일이다

화교성 대극장, 공연이 웅대하고 이채로웠다.

금면왕조(화교성 대극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황무지에 사물이 돋게 하신 후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으시며 질서 있고 평화로운 땅을 만드셨으니...

어느 순간 부터인가 처음 만든이와 다른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미혹하여 그 질서를 흔들었으니 백성들의 삶은 너무나 무질서하게 되었더라

그 땅을 지으신 분께서 어지러운 삶을 안타까이 생각 하시고 어떤 자에게는 지혜와 권세를 주시어 왕을 삼아 그들을 질서있게 다스리라 하였다. 어떤자에게는 재물을 주어 주린자를 나누어 먹이라 하시면서 그 울타리의 영역이 미치는 곳을 나라라 하였고 그 다스림의 우두머리를 왕이라 하였는데 그 권력에 맛을 본 인간들이 그 좋은 자리를 나누어 하기를 꺼리어 대를 이어 독차지하게 되었는데 그를 왕조라 하였고 한 왕조는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를 모아 금빛 찬란하게 하였던지 그 왕조를 금면왕조(金面王朝)라 하였더라.

 

금면왕조는 탄성이 절로 터지는 웅장한 스케일에 정교한 연출로 상상을 초월하는 감동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무대였다.

방대하면서도 다기능적인 최첨단의 무대 장치와 조명,화려한 의상,완벽한 연기와 웅장하면서도 환상적인 뮤지컬이 중국 하면 상상되는  

싸구려 저가 물품, 비 위생적인 음식문화,무표정하고 음흉한 표정 등,-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일순간에 바꿔 놓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출연 배우들의 립써비스

금면왕조의 여자 주인공

남자 주인공과 한국의 대표 관객

순례기를 마치며

지루하고 답답한 중국 여행기를 마친다. 4박5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카메라에 담아 온 사진들이 있었다. 너무 많았다. 아무도 눈여겨 봐 줄 하등의 가치도 감동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통속적인 우리들의 이야기, 정리를 하면서 나는 참 부질없는 시간의 낭비라고 자책을 했다. 그리고 누구도 관심없는 우리들의 여행기를 담았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일이기에 나는 애착을 했고 지루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행의 목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나는 실감했다. 여행은 4박5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이 아니라 돌아와 어루만지고 다듬는 과정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