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又曰 此本源淸淨心 常自圓明照 世人不悟 只認見聞覺知爲心 爲見聞覺知所覆 所以 不覩精明本體 但直下無心 本自現 如大日輪 昇於虛空 照十方 更無障碍
황벽선사가 또 말씀하였다. “이 본원이며 청정한 마음이 항상 스스로 원만하고 밝게 두루 비추건만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것만을 오인하여 마음으로 삼아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것의 덮힌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뛰어나게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한다. 다만 당장에 무심하면 본체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마치 큰 태양이 허공에 떠올라서 시방을 두루 비추어서 다시는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空은 본래 밝고 맑은 앎의 경지
한 순간도 어두운 적 없는 능력
해설 : 선불교의 근본은 일심(一心)이다. 그러므로 이 일심을 잘 이해하면 불교의 근본종지를 다 안다고 할 수 있다. 일심은 만유의 본원이다. 그리고 청정하다. 이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원만하고 밝아서 세상을 다 비춘다. 그 본체는 텅 비어 없는 것이지만 그 작용은 변화무쌍하고 자유자재하다. 그것의 작용인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것만을 일심의 전부라고 집착하면 틀린다. 그 모든 작용의 근본이 있다. 작용을 통해서 근본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사실을 태양에 비유하여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불교는 밖에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이치를 이해시키려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비유가 대단히 많다. 태양이니 구름이니, 파도니 물이니, 허공이니 바람이니 하는 등등이다.
여기에서는 마음의 무심한 경지에서 본래의 마음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마치 태양과 같다고 하였다. 태양은 구름이 있든 없든 관계없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하는 일은 모두가 태양의 입장이 아니다. 태양은 항상 스스로 밝게 비치고 있건만 한순간 기후의 변화로 그와 같은 일이 잠간 일어났다 사라질 뿐이다. 그 사실도 구름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사람들만의 문제다. 이와 같이 우리들 본래의 마음은 모두가 태양과 같다는 것이다.
■ 황벽희운 선사③ - 공은 본래 없다
師又云 凡夫取境 道人取心 心境雙忘 乃是眞法 忘境猶易 忘心至難 人不敢忘心 恐落空無撈摸處 殊不知空本無空 一眞法界耳
황벽 선사가 또 말씀하였다.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한다.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어야 참다운 법이다. 경계를 잊는 것은 오히려 쉬우나 마음을 잊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사람들이 감히 마음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공에 떨어져서 찾을 곳이 없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한 것은 본래 공함이 없고 하나의 진실한 법계뿐임을 알지 못한다.”
해설 : 세상만사를 둘로 나누면 마음과 경계다. 보통 범부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경계를 취한다. 그러나 도를 깨달은 사람들은 일체 존재의 주체인 마음을 취한다. 하지만 마음도 잊어버리고 경계도 잊어버려야 그것이 진실한 법이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은 경계를 잊어버리기는 쉽다. 그러나 마음마저 잊어버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공한데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하여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은 본래 공이 아니라 신령스럽고 원만하며 밝고 맑은 앎의 경지이다. 그것을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즉, 밝고 또 밝으며 신령스럽고 또 신령스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령스럽게 환히 알고 있어서 어느 한 순간도 어두운 적이 없는 능력[靈知不昧]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