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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계절이 왔네/허수경

시치 2010. 4. 7. 00:16

푸른 계절이 왔네/허수경

 

 

 

지난 해 사과나무는 휴식을 취했네

그리고 올해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사과나무에게로 왔네

가지에다 저렇게 수많은 방을 걸어두고

나무는 아이들을 기다렸었지

 

푸른 계절이 시작될 무렵, 나무는 나에게 말했어

방을 보았니?

텅 빈 햇살 안에 열린 잠든 방을 보았니?

그 방 안에 푸른 우물이 하나 있지?

 

그게 너야

손톱을 깎아줄 아이 하나 없는 너를 위하여

계절은 딱딱한 아이 하나를 데려왔어

 

사과나무 밑에 서면 먼 노래가 들리는 듯

아직 누구도 듣지 못한 노래가 이 지상에 남아 있다는 듯

 

푸른 아이들이 부르는 즐거운 노래

푸른 아이들이 즐기는 그리운 시절

스물에 버린 조갑지 같은 화장품갑에도

이런 냄새가 났으면 했어

 

푸른 머리칼을 가진 저 잎새들의 저녁이면

어둠도 푸른 물에 들었네

입술을 열면 당신의 혀가 내 입 안에 든 것 같아

사랑노래를 부르며 랄랄라

나는 딱딱한 아이를 위해 여린 손톱을 자를 준비를 했네

 

휴식을 취하고도 손톱에 분홍물 들여줄

아이 하나 없던 나에게도

방 하나 주시는 계절이 왔네

사랑이 먼 휴식을 취할 때 고단했던 몸도 푸르러져

만취의 햇살이 사과나무의 방을 빼곡히 채울 계절 뒤에

 

저 아이를 깨물면 나를 깨무는 거라서 거나하게

나의 몸으로 취할 계절이 오고 있네

 

 

                                        《시인세계》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