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 문인수
나는 어느 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나는 그 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나는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 째 굿모닝, 그런다. 한 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도 예외 없이 굿모닝, 그런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 해야 할 때도 고저장단을 맞춰 굿모닝, 그런다. 꽃바구니라도 안겨주는 것처럼 굿모닝, 그런다. 그런데 이거 너무 가벼운가, 아내가 눈 흘기거나 말았거나 나는 굿모닝, 그런다. 그 무슨 화두가 요런 쪽지보다 잔재미보다 더 기쁘냐, 깊으냐. 마음은 통신용 비둘기처럼 잘 날아간다. 나의 애완 개그, ‘굿모닝’도 훈련되고 진화하는 것 같다.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엑기스, 혹은 통폐합이라는 게 참 편리하고 영양가도 높구나 싶다. 종합비타민 같다.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다 통한다. 아내도 요즘 굿모닝, 그런다. 나도 웃으며 웬 무식? 그런다. 내가 겪은 시절은 전부 호미자루처럼, 노루꼬리처럼 짤막짤막했다. 바로 지금, 당신이 내 눈 앞에 있다. 나는 자주 굿모닝! 그런다.
만금이 절창이다/ 문 인 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따라 무겁게 되밀려 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저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은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
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삻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그림 같다, 사정없이 계속
셔트를 누른다. 여인네들... 여 나문 명 누더기 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 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 놓으며
저 할머니, 꺼질듯 첫
일성을 토한다. "어매 징한거, 참말로 죽는 거시 낫것어야" 참말로, 정색
이다. 말짱
카메라에 박지 못한 것, 철컥─ 가슴에 와 박히는 것, 뭉툭한 뒤축 같은
것,
늙은 연명이 뱉은 저 말이 절창이다.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저 할머니의 슬하/문인수
할머니 한 분이 초록 애호박 대여섯 개
를 모아놓고 앉아 있다.
삶이 이제 겨우 요것밖엔 남지 않았다는 듯
최소한 작게,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 그 슬하에
동글동글 이쁜 것들, 이쁜 것들,
그렇게 쓰다듬어보는 일 말고는 숨쉬는
것조차 짐 아닐까 싶은데
노구를 떠난 거동일랑 전부
잇몸으로 우물거려 대강 삼키는 것 같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부르는 손짓,
저 허공의 반경 내엔 그러니까 아직도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할머니, 손수 가꿨다며 호박잎 묶음도
너풀너풀 흔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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