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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詩의 골조가 단단한 신인들의 탄생(1) - 한성희 시인

시치 2009. 11. 14. 05:00

   시평가을호에 詩의 골조가 단단한 신인들이 탄생했다.

  한성희시인은 토목과를 졸업하고 오랜시간 현대산업에 근무하다 지금은 주식회사 다큐콘스를 경영하고 있다. '다큐콘스'는 건물이나 건설의 스토리를 책으로 만드는 출판사라한다. 오늘도 대전에 있는 체육관 리모델링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라며 건설현장의 리모델링 사진과 건설 공법, 설계도면등의 건설 기록을 책으로 내는 일이라 한다. 나는 시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어찌 이리 좋은 시가 탄생되었는지 보다 지금 하는 일이 더 궁금해져서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온 생을 골조를 세우는 일에 메달리다 어느날부터 생의 건물에 시가 스며들었을께다. 그러다 '끈질기게 웅크린' , '플러그'같은 시가 지어졌을께다. 앞으로 얼마나 멋진 詩의 건축물들이 소개가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끈질기게 웅크린 - 한성희

 

 

 

 

물길 끊겨 뱃가죽 훤히 드러난 동강의 자갈바닥

씨암탉만한 돌멩이 하나가 막 산란하고 있다

휘어진 등으로 무수히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내는

반질반질한 등어리, 슬며시 들쳐본다

구석으로 몰린 물구덩이에서 파닥거리는

여남은 마리 물고기와 개구리들

단단한 돌멩이 하나가 날개와 지느러미를 접고

뙤약볕 아래서 강을 품고 있는 것이다

자갈 강바닥을 둥근 몸으로 파내고 물기를 긁어모아

동강의 새끼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제 몸의 무게만큼 물기를 머금고 있는

침묵의 힘

수천 길 직립의 절벽에서 떨어져나와

수만 갈래의 물길에 몸 뒤집다가

거친 물살에 몸 낮추고

강바닥이 훤해지기를 기다렸다니

제 체온으로 강의 명줄을 잇고 있다니

마른 강바닥에 끈질기게 웅크린 돌을

함부로 들춰볼 일은 아니다

 

둥근 등이 단호하게 땡볕을 튕겨내고 있다

 

 

 

 

 

플러그 - 한성희

 

 

 

 

검은 전선 플러그를 콘크리트 벽에 꼽은 뒤에야

겨우 숨 쉬는 노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 벽에게서 듣는다

 

여름휴가 떠나기 전 집안을 살피다가 거실 벽에

두 눈 박고 있는 티브이 플러그를 발견한다

 

종일 수인(囚人) 곁에서 웅웅거리며 바깥세상 얘기를 들려주고 한번도 날선 시선 던지지 않는 낡은 티브이 두대에 연결된 플러그, 번갈아 검버섯 손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넘기는 검은 줄을 생각하면 쉽사리 저 명줄을 뽑는 일, 아니다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은 노인에게 묶인 탯줄을 잘라내는 불충(不忠)한 짓

당신 이름 석자도 놓쳐버린 엄니의 당산나무 뿌리를 끊어내는 일

 

엄니는 내 몸 어딘가에 들숨 날숨의 구멍을 뚫어놓고 시리게 꺾이는 뼈마디소리 흘러들어가는 플러그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을 것이다

 

난, 플러그 가는 뿌리 끝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벽 쪽으로 힘껏 밀어본다

핑, 강한 전류가 심장을 관통한다

 

 

 

 

등단소감

적막, 그 푸른 그늘로부터

 

 

 

 

  흙먼지 쌓인 잃어버린 길을 찾는 일은 장마전선의 장대비를 맞고서야 멈췄다. 나를 찾아가는 일은 결국엔 나를 잊어버리는 일인 것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이미 시를 잃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내 안에서 누군가 끝없이 뱉어내는 어떤 생각들에 대한 출발로부터 어느 길목에 서있는 시의 푸른 그늘을 찾아가는 길은 시작되었다. 지난 몇 해 전 여름날 부석사를 찾았을 때나, 가을 익산의 미륵사 터를 밟았을 때, 무너진 돌 틈 사이 웃자란 풀들을 쓰다듬는 바람들, 하나같이 적막했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 많을수록 홀로이면서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그때의 적막감! 들을 수 엇는 어떤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나같이 모두 적막했으리라. 추천완료를 알리는 연락을 받고 홀로 적막했다. 억새풀 같은 시에 바람이 불 것만 같은 맑게 갠 오늘, 오래도록 푸른 그늘 밖을 서성거리던 내 그림자를 밟고 말았다. 세상 근심을 다 안을 것만 같은 근사한 사원의 그림자로나 또는 대지의 아름다운 꽃의 그림자로 태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묵묵히 끌려다닌 바닥에 납작 붙어 있는 검은 등뼈를 슬며시 일으켜 세운다. 이제 심장이 두근대는 안주머니 속에 그것을 넣고 다니고 싶다. 늦게 시를 쓰면서 고마움을 전해야 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가까이서 묵묵히 지켜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맙다느 말을 전한다.

 

 

 

 

한성희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37-820 서울시 서초구 방배3동 477-1 멤버스뷰 309호 모바일 011-576-8460

 

출처 : 시평
글쓴이 : 종달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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