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추천,당선작

[스크랩] 실천문학 시 부문 심사평 및 수상 소감입니다

시치 2009. 10. 28. 22:59

 시 부문 심사평: 김선우, 박수연, 안도현.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 앞에 놓인 작품은 「때」외 5편, 「그늘을 살해하다」외 9편, 「손의 영정」외 9편, 「서쪽으로의 일출」외 9편, 「밤의 그네」외 19편이다.

「때」외 5편의 응모작 중에서 주목받은 작품은 「몹쓸, 소나타」이다. 이외의 작품들과 함께 이 응모자가 공들인 것은 소재의 병치라는 기법을 활용하여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인데, 「몹쓸, 소나타」에는 그 단면의 실상을 시적으로 승화시키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이 이 작품의 성취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문장이 불안하다는 점이 이 응모자의 결점이다. 문장이 불안할 때 시의 리듬도 소멸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늘을 살해하다」외 9편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물과 사건에 그것들의 잠재되고 은폐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이다. 시적 발견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셈이다. 그러나그 발견을 위한 언어들의 배치가 평이하다 보니 발견의 노력 자체가 설명적이다. 문제는 발견이 아니라 그 발견을 시적으로 가공하는 능력일 것이다. 이것이 언어를 공교하게 꾸미는 능력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발견된 시적 의미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시의 구조로 용해되는가의 문제이다. 「손의 영정」외 9편은 무난한 작품들이다. 언어들이 자연스럽고 시상의 형상화에 무리가 없다. 이는 응모자의 시적 공력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것이다. 그런데 한 편의 시가 최종적으로 완결되기 위해서는 그 자연스러움 못지 않게 결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결기를 시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힘이 시의 언어들에 굴곡을 부여하면서 매듭을 맺어주는 것이다. 이 응모자에게는 그 힘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심사자들은 김은상 씨와 박찬세 씨를 함께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김은상 씨는 무엇보다도 시적안정과 완결성이, 박찬세 씨는 과감한 상상력이 장점이라고 판단되었다. 우선 김은상 씨는 안정적이고 미적인시상 전개와 아울러 결말부를 맺는 능력이 돋보였다 현실인식도 만만치 않다. 갈고 닦은 언어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경우인데, 다만 한 가지 시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해서 상상력을 한정해버릴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기로 한다. 박찬세 씨의 시는 정격과 파격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상상의 내용도 그렇고 형식도 그렇다. 이것은 아직 자기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않은 신인이기 때문일 터인데, 전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못지않게 유행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용기야말로 박찬세 씨의 진정한독특성을 만들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최근의 한국시단은 젊은 상상력의 활기와 소란 그리고 풍문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난 듯 보인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일이야말로 흥미 있는 일인데, 신인의 출현을 경험하는 즐거움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신인들은 한국문학의 새 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가게 될까? 실천문학이 내보이는, 크게 대비되는 두 명의 시인이 그 답을 채워주리라고 생각한다. 당선된 분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끝까지 고려 대상이 되었던 분들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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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 박찬세.

 

나는 천박하다. 다행인 건 내 여러 가지 모습 중에 제일 사랑스러운 것이 천박함이라는 점이다. 주용일 시인의 시 「팔월 연못에서」를 빌려 말하자면 얼마쯤 질척이고 얼마쯤더럽고 얼마쯤 냄새나는 곳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내 시는 천박함 속에서 피어난다. 천박함을 잃는 순간 시 또한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피범벅이 돼 있었다. 무서워서 소리를 한참 지르다 알게 되었다. 아픈 곳이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가족들이 서 있었다. 몸에 상처가 하나씩 있었다. 웃고 있었다. 찬관 형, 우리 집 가장, 나를 좆밥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 형이 없었다면 어떻게 내가 시를 쓸 수 있었겠어. 고마워. 찬재,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선생이 된 셋째, 네가 없었다면 형은 서산에서 알코올중독자가 돼 있었을 거야. 혼자 소주 세 병씩 비우던 나날에서 구해줘서 고맙고 짐을 대신 지게해서 미안하다. 찬부, 귀여운 척하는 게 어색한 막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할 때까지 너랑 말 안 할 거다. 누차 말하지만 난 큰형하고는 다르다. 성유순 여사, 내가 치는 사기에 아직도 속고 있는 울 엄마, 엄마가 매일 정화수 떠놓고 시인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사실은 안 자고 있을 때가 많았어. 미안해서 자는 척 했어. 사랑해. 아빠 닮지 않을게. 또 다른 가족 정진아, 피붙이를 제외하고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건 너뿐이다.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내가 참 답답하다. 규식 형 은강 누나 삐치지 마.

  「부자별곡」을 읽고 그녀가 내게 왔다. 사 년이 지나 「밤의 그네」를 쓰고 그녀와 이별했다. 그녀를 생각하며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썼다. 그녀의 집 앞 골목에서 다섯 시간을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와 술을 먹었다. 두 병에서 세 병 사이에서 기억을 잃었다. 아침에 한글 파일 하나가 새로 생긴 걸 발견하였다. 「골목의 표정」, 많이 울었다. 내피가 더럽다고 생각했다. 불행해지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이 끔찍할 뿐이다.

  아침술에 취해 자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정신차리라고 소리쳤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고마운 이름이었다. 전화를 끊고 술은 안 깨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박명용 교수님이 생각났다. 맥주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시고 닭다리를 뜯어주셨을 텐데. 아직도 귀에 생생한 교수님 목소리. 찬세야, 큰 시인 돼라. 큰 시인! 교수님, 살아 계실 때 시인 된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큰 시인 되겠습니다. 디스플러스와 소주 린에게 고맙다. 술에 취해 늘어놓는 개소리를 받아줬던 사람들, 너무 고마워서 안 쓰기로한다. 그러나 스폰서는 써야 한다. 박동빈, 방근영, 김태영 형, 우상혁 형, 강대묵, 최승현 형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원 부탁드립니다. 태영이 형! 요즘 저한테 소홀한 거 같습니다.

  어제는 종민이와 지구를 지켰다. 지구를 지키는 데 대명이가 왔고 상복이 형한테 전화가 왔다. 예정에 없는 술자리가 생겼다. 성택이는 전날 많이 마셨다고 부르지 않았다. 상현이 형은 대전에 갔다. 종일이는 개고기가 싫다고 오지 않았다. 장균이는 회사에 있었다. 2차까지만 마시고 헤어졌다. 1차에서 너무 많이 마셨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노려보고 있었다. 헬스클럽 빼먹었다고 뒤지게 혼났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 오그라든 손으로 당선소감을 다 썼다.

출처 : ★ 별종 새울★
글쓴이 : 곽태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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