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 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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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는 '웹진 시인광장'에서 따옴 |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김선우가 첫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에서 밝힌 시인의 말은 이렇다. '그리고 생각건대 내가 진실로 사랑한 것은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독기였으니. 부디 이 시들이 세상의 소란에 독이 되기를'
목포항의 스산한 풍경이 내 안의 상처가 되어 들어온다.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도 내 몸 속의 상처로 덧난다. 그렇다면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라고 노래한 연유는 어디에 있는가?
시인은 상처가 덧나지 않은, 그래서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푸른 생애의 안뜰이 아니다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적어도 김선우에게는 상처가 두려워 움직이지 않는 것은 푸른 생명이 멈추어서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상처를 향해서 돌진하는 것이 소원인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생명이 품고 있던 독기를 내뱉는다. 그 독기는 대번에 세상의 급소를 공략하고 절창의 가락으로 빛난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덧난 상처로 인해 잠 못이루는 밤이 있으신가? 그러하시다면 심장을 만져보시게. 푸른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네. 상처를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싱싱한 심장의 박동이니, 앞으로도 상처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시게. 상처가 사라진다는 것은 내 푸른 생애의 안뜰이 끝장난다는 소리이니.
떠나간 막배를 그대에게 보내드릴테니, 가슴을 열어두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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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장병훈 |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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