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유정이
운동화 끈을 고쳐맨다
풀어진 끈에 매달린 불안한 소문의
머리채를 손가락에 걸어 단숨에 잡아당긴다
바닥을 디디자 단단해지는 길
그러나 버스는 오지 않는다
산양 전갈 페가수스의 머리칼을 다 세는 동안
운동화 둥근 코끝으로 바람의 혀가 한 차례 핥고 지나간다
언젠가 한 번은 지나쳤을
녹색 페인트칠 벗겨진 창가에서 마시던 차 한 잔
그러니까 결국 지나온 어디쯤의 금요일 같은
휘어진 길 그 너머의 생처럼
뒤틀린 브래지어 끈이 자꾸 등을 간질이는 동안
나는 수없이 오지 않은 버스를 놓치는 중이다
저녁에 닿기 위하여
죽은 나무가 제 몸을 훑으며 들려주는
휘파람 소리를 듣기 위하여
휘파람 소리 끝에 생겨난다는 우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기 위하여
끝내 결별할 수 없는 것들을 두고
당신이 저물도록 서 있던 마른 강물 끝
오래된 마을로 가기 위하여
둥글게 몸을 숙이고 다시
운동화를 고쳐맨다 오래된 당신이
단단히 묶인다
—《현대시학》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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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 / 1963년 충남 직산 출생. 1986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1997년까지 태광중. 종합고등학교 재직. 1999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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