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식성
홍일표
거울은 이빨이 없다
연신 몸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우연히 방문하는
길가의 가로수나 구름 한 점도 소화시킬 수 없다
우물거리다가 다 토해내는
거식증 환자다
뼈만 남은
발목 하나 담글 수 없는
겨울하늘,
새들이 일찌감치 발을 뺀 공지다
나, 누구도 담지 못한
꽝꽝 얼어붙은 거울을 깬다
고해하듯
와르르 뒤뜰 담장이 무너져 내리고
조각조각 혓바닥 베인 햇살들
오랜 번민의 발자국을 안고 녹아내리는
눈 속을 뒤적이면
무청 같은 새파란 눈썹 하나 꿈틀댄다
내 안의 퀭한 거울이 배가 고프다
—《문학사상》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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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 1958년 충남 입장 출생, 1988년 《심상》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안개, 그 사랑법』『혼자 가는 길』『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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