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의 「어떤 쓸쓸한 생의」감상 / 허수경
어떤 쓸쓸한 생의
전동균
홍제역에서 깜박
잠들었다가 눈 뜨니 과천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차례 문이 열리고 닫혔을 뿐인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다가 뚝, 끊어진다
사람들이 유령처럼 사라져간
어두운 지하도 저편에서
두두 두두두… 야생의 말들이 커브를 돌며
내달리는 소리 들리고
큰물 지듯
거친 물소리가 쏟아진다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무덤과도 같은 과천역,
지하도 밖 세상은 아침일까 저녁일까
천국일까 폐허일까
나는 어떤 쓸쓸한 생의
부장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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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눈을 뜨자 다른 지하철역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목적지를 놓치고 그렇게 오래 잠이 들었고 눈을 뜨자 형광등 불빛. 그 아래에서 이생에서 사는지 저생에서 사는지 모를 만큼 깊고도 짧은 잠을 자고 난 뒤, 갑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 여기는 어디인가, 아직 꿈인가, 아니면 꿈 저편일까? 그럴 때 밀려오는 쓸쓸함은 밀물이 저녁의 해안을 건드리듯 생을 잔잔하게 하지만 참혹하게 뒤흔든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삶을 싣고 가는 지하철 속에서 갑자기 우리들은 생각에 잠겨든다. 지하철 밖의 세상이 자못 하릴없는 꿈같고 나는 지하철 속에서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언젠가 나는 이 지하철을 나가야 한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깜빡 잠이 든 쓸쓸함의 실뭉치인 나는 누구인가. 시인의 말대로 '쓸쓸한 생의 부장품'일지도 모를 일.
허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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