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스크랩] 2008 <백석문학상> 수상작: 승천/ 김해자

시치 2009. 8. 15. 15:08

2008 <백석문학상> 수상작: 승천/ 김해자


승천


한 집 건너 지하공장

미싱 소리 드르륵대던 곳

사철 시꺼먼 하늘만 내려앉던 청천동

십자약국 골목 파란 대문

빨간 닭장집 안 녹색 부엌문

방문 벽에 걸린 푸른 작업복

왼편에 하얀 명찰 생산2과 김정례

앉은뱅이 책상 앞에 「해고무효소송 승소판결문」

옆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재, 안에 쓰다만 편지

“공부 열심히 해. 돈 걱정 말고 누나만 믿어라”

방문턱에 걸린 두 발

부엌 바닥에 늘어뜨린 긴 머리칼

아궁이에 타다 만 연탄

잠긴 문 바라보다 멈춘

반쯤 열린 눈

밖에 하얀 눈


<수상자 신작시>


뜨거운 침묵


영영 빗장을 닫아걸었나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오래 다물어온 듯한

옹이의 단단한 입술을 열지 못한다


새 길을 여는 동안 돌처럼 단단해져버렸나

제 몸 비틀어 새 길을 여는 동안

수직으로 솟구치던 묵은 길 지워가는 동안

상처를 받아안고 뒹구는 동안


천공을 비상하는 날개를 피우고 싶었던 걸까

요지부동 그의 옆얼굴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


오랜 침묵 끝에 받아들인 불길,

속에서 터지는 외마디


새가 연거푸 뜨거운 숨을 내뿜는다

폐부 깊숙이에서 터져나오는 숨결이

아궁이의 안과 밖을 환히 밝힌다

오랜 침묵이 타고 있다

이미 숯이 되어버린 나무들의 전생까지 되살리고 있다


수상시인 약력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출처 : 파도가 부는 집
글쓴이 : 찬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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