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스크랩] 2008 <윤동주문학상> 수상작: 상황그릇/ 박라연

시치 2009. 8. 15. 14:02

2008 <윤동주문학상> 수상작: 상황그릇/ 박라연


상황그릇


품이 

간장종지기에 불과한데


항아리에 담을 만큼의 축복이 생긴들

무엇으로 빨아들일까

궁리하다가


추수부터 해보자

넘치면 허공에라도 담아보자 싶어

종지기에 추수한 복을 붓기 시작했다


붓고 또 붓다보니

넘쳐흐르다가

깊고 넓은 가상육체를 만든 양


이미 노쇠한 그릇인데도

상황에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져줄 때의 형상이 가장 맛, 좋았다


허공에도

마음을 바쳐 머무르니

뿌리 깊은 그릇이 되어

눈부셨다


<수상자 신작시>


U턴 


너를 일찍 알았더라면


비단결 같은

내 피 만져볼 수 없었겠다


치명적인 피 안 마셨겠다

첫사랑과 신방 꾸미지 못했겠다


내 피에도

네가 흐른다는 신호 알아챘다면


K대학원도 중도하차 안했겠다

터진 생의 바느질도 못배웠겠다


내 피 너무 심심해서 해파리

석류 오디 사과 고추 맛은

엄두도 못냈겠다


수상시인 약력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우주 돌아가셨다>

 

 

출처 : 파도가 부는 집
글쓴이 : 찬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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