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 / 송찬호
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드디어 장독대 옆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꽃이 바람에 꺾이거나 시들거나 하는 걱정은 겨우 덜게 되었다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백일홍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경북대 독문과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 등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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